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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하게 짜증이 없는 요즘

더 너그러워졌습니다

by 김영무
getty-images-be2pW63aazM-unsplash.jpg Unsplash+ In collaboration with Getty Images


어제 아침부터 헛걸음을 크게 했습니다. 아버지께서 주민센터에서 어떤 서류를 떼와 달라고 요청하셨어요. 그래서 주민센터를 방문했습니다. 설명을 하니 그 서류는 부동산의 주소지 주민센터에서만 발급 가능하다는 거예요. 가야 하는 주민센터는 지도앱을 켜니 1.1km라고 나옵니다.


아직 9시 반이라 그냥 걷기로 했습니다. 그래도 여름이라 땀이 삐질삐질 나더군요. 새로운 주민센터에 도착했습니다. 신청 서류를 요청했습니다. 아. 그런데 이건 아버지 본인이 직접 와야 한다네요. 결국 두 개의 주민센터를 들르고 서류 대기하는 한 시간가량의 수고가 헛된 것이 되고 말았습니다.


아버지에게 전화해서 상황을 설명해 드렸습니다. 그런데 신기한 건 화가 나지는 않았어요. 짜증 나지도 않았습니다. 예전 같았으면 절대 이렇게 마음이 담담하지 않았을 거예요. 게다가 여름이라 짜증이 더 났을 수도. 시간이 아깝다며 하루 종일 투덜거렸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아침 운동한 셈 치자는 생각이 절로 나왔습니다.


신기했죠. 제 자신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언제 이렇게 변했지?


매일 운동을 해서 그런가? 아니면 은퇴를 하고 좀 더 너그러워졌나? 매일 글을 쓰면서 생각을 풀어내려서 그런가? 솔직히 원인은 잘 모르겠습니다. 시간에 대한 강박은 아직 남아 있지만 많이 완화되었어요. 이제 10분 늦는다고 큰일 생기지 않는다는 걸 알아요.


회사 생활을 할 때는 항상 시간에 대해 민감했습니다. 5분 늦으면 큰일 나는 줄 아는 삶을 회사에서도, 집에서도 유지했죠. 그럼 집에서 소소한 갈등이 많아집니다. 왜 준비하는데 이렇게 오래 시간이 걸리냐는 소리가 왕왕 나오게 되죠. 지금은 재촉하지 않아요. 조금 늦어져도 큰일 나는 게 없다는 걸 이해하거든요.


방학이라 청소년 둘이 집에 있습니다. 점심을 준비할 때마다 갈등이 있어요. 매일 뭘 배달시켜 먹을 수도 없고. 돈도 많이 들고. 그렇다고 내가 간편식을 준비해 준다고 하면 그건 또 먹기 싫다고 하고. 만두라도 튀겨 준다고 하면 그 메뉴는 싫다고 하고. 게다가 두 녀석의 입맛도 다른 문제까지 있습니다.


저번 방학 때는 짜증을 내는 경우가 더러 있었습니다. 그냥 주는 대로 먹으라고 짜증을 내는 일 같은 거 말이죠. 하지만 올 방학 동안에는 그냥 먹고 싶은 거 먹으라고 합니다. 대신 배달 음식은 일주일에 3번 수준으로 제한하기만 합니다. 이거 제한하는 거 생각보다 어려워요. 애들이 다들 원하는 메뉴가 다르니 더욱더 선택할 때 조심스럽죠.


방금 녀석들이 그냥 만두 먹고 라면 추가로 끓여 먹자고 합의를 하네요. 확실히 그냥 두면 배가 고프니 어떻게든 서로 합의를 하는군요. 크크크. 그나마 막내가 돌봄 교실에 방학 동안 등교해서 다행이지 셋 모두 있었으면 식사 시간 어쩔 뻔! 돌봄 교실의 교사님들께 무한한 감사를!


오늘의 질문: 요즘 더 너그러워진 구석이 있으신가요?


나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당신도 그러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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