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만 나이로 47세에 은퇴를 했습니다. 약간 빠른 편인 것 같아요. 그럴 수 있었던 것은 아내도 이미 맞벌이로 일을 하고 있었기에 최소한 한쪽에서는 계속 월급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내에게 감사하지요. 하긴, 아내가 대신 그만뒀으면 제가 계속 일하고 있었을 테니 피장파장이긴 하지만요.
우리 막내딸은 상시적인 케어가 필요한 장애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잠시라도 혼자 둘 수가 없어요. 너무나 어여쁘고 사랑스러운 아이라서 매일 보고 있어야만 하는 천사랍니다. 그래서 둘 중에 한 명은 회사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지요.
그렇게 은퇴를 하고, 가정주부가 된 아빠는 당황합니다. 아니. 은퇴인 줄 알았는데 이건 풀타임 잡인데???
일단 학교에 다니는 자녀가 있는 가정에서는 진정한 의미의 은퇴를 할 수가 없습니다. 은퇴는 나를 살피고 돌보는 일이 되어야 하는데 나보다 더 우선해서 살펴야 할 자녀 또는 나이 든 부모님이 계시면 나만의 은퇴를 실제 실행 할 수는 없기 때문이죠.
자녀의 식사를 챙기고, 비누부터 물티슈에 이르기까지 집안에 소모된 생활용품을 채워 넣고, 식자재와 간식과 음료수를 구매하고, 청소와 빨래와 설거지와 재활용 쓰레기를 정리해서 버리고, 음식물 쓰레기와 일반 쓰레기를 정리해 꾹꾹 눌러 담아 버리는 일.
나만의 독서를 하고 나만의 글쓰기를 하기는 하지만 참 여러모로 가정주부의 삶은 정말 간단하진 않습니다.
은퇴 후에 솔직히 가장 우려스러웠던 것은 돈입니다. 매달 꼬박꼬박 나오는 월급을 23년간 받다가 갑자기 입금되는 돈이 제로가 된다면 정말 당황할 수 있죠. 그래서 충분한 자산을 쌓아두고 매달 현금이 들어오도록 세팅을 해두어야만 심리적인 안정을 유지할 수 있어요.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자산 변경은 아무래도 더 저렴한 주거형태로 변경하는 것이겠지요. 그리고 남는 현금을 ETF나 다른 수익형 자산에 투자를 해야 정기적인 수입이 생깁니다. 다만 상가 투자는 절대 안 하시길 권합니다. 요즘 거의 모든 것을 온라인으로 구매 가능하니 상가에 들어올 가게들이 거의 없는 듯합니다.
소소한 취미나 자투리 잡으로 용돈을 챙길 수 있다면 그것도 나쁘지는 않겠지요. 글로 돈을 버는 것은 모든 글쟁이들의 로망이지 않을까요?
하지만 은퇴의 가장 큰 장점은 아무래도 홀로 생각하는 시간이 회사 다닐 때보다 훨씬 깊어지고 많아진다는 점인 것 같습니다. 정말 힐링의 시간이죠. 아무리 가정일로 바빠도 회사일만큼 바쁘지는 않고, 특히나 출퇴근 시간 자체가 없어지니 시간 확보가 더 쉬워지거든요.
짬짬이 내가 하고 싶었던 것을 하고, 읽고 싶었던 책을 읽고, 듣고 싶던 음악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은 진정한 자유인의 삶이라 할 수 있습니다. 내 시간을 내가 원하는 대로 쓰는 것이 참 부자라고 전에도 말했던 것 같기는 한데요. 그래서 지금 저는 부자입니다 ^^
상상 속의 이야기지만, 솔직히 아이들이 다 큰 다음에는 어디 시골에서 농막치고 개와 고양이 키우면서 앞 뜰에서 직접 야채를 가꾸어 먹고사는 삶이 진짜 은퇴가 아닐까 합니다. 상상 속에서 말이죠. 지금은 열심히 아이들 등하교 도우미 역할과 가정주부 역할에 바쁘게 지내는 게 현실의 은퇴랍니다.
오늘의 질문: 은퇴하신다면 무엇부터 하고 싶으신가요?
나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당신도 그러하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