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에 광주 민주항쟁이 벌어졌을 때, 전국의 다른 지역에서는 그것이 민주 항쟁이라는 것을 몰랐습니다. 정부의 방침에 어깃장을 든 민란이라고 알고 있었죠. 당연히 당시의 미디어와 신문의 영향력 때문이었을 겁니다. 그 잘못 알고 있던 사람은 무슨 죄입니까?
신안의 섬노예 사건은 설마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어 싶은 우리의 생각을 완전히 깨부수는 사건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일은 수십 년간 되풀이되어 왔습니다. 현지인들과 경찰들도 모두 한통속이라 이 사태를 끝장내려면 군대를 투입해서 섬을 모조리 싹 훑어야 하는 게 그게 가능한 일입니까? 지역감정을 도리어 폭발시키겠죠.
미국에서는 아직도 지구가 평평하다는 것을 믿고 지지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일본에서 관동 대지진으로 수십만 명이 사망하자 조선인들이 폭동을 일으키려 한다는 거짓 소문을 퍼트려 결국 한국인 수천 명이 학살당했습니다. 이건 무슨 1923년, 근대에 일어난 일이라고 믿을 수가 없습니다.
유럽의 마녀 사냥은 아주 유명하죠. 마녀가 있을 리가 없잖아요? 그런데 수천 명의 여성이 마녀로 지목되어 처형되었습니다. 그것도 사랑이 충만해야 할 가톨릭과 개신교의 강경파에 의해 주로 심판되었지요. 그걸 지적한 사람이나 형을 집행한 사람들은 아마도 굳건하게 그녀들이 마녀라고 믿었을 겁니다. 누구의 탓일까요?
히틀러는 유대인들을 악마에 비유했습니다. 그리고 독일 국민들은 그것을 믿었습니다. 그러니 그 수많은 독일 사람들이 인종청소 하듯이 한 인종을 죽여 없애는데 힘껏 힘을 모은 거죠. 최대한 효율적으로 죽이기 위한 연구, 최대한 가성비 있게 죽이는 연구가 이뤄진 것은 누구 때문일까요?
1980년대 소련 KGB는 에이즈라는 병은 미국 정부의 생물병기 제조로 생겼다는 거짓정보를 퍼트립니다. 인도의 작은 신문사에 기사를 싣고 이를 세계 각국의 미디어에 의도적으로 퍼 날랐습니다. 결국 미국의 평판은 심각하게 훼손 되었고, 2005년까지 에이즈를 인공 바이러스로 믿는 사람이 50%에 달했다고 합니다.
지금의 나는 과거를 돌아보면 과거의 내가 얼마나 많은 잘못과 실수를 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미래의 나는 훗날 뒤를 돌아보고 지금의 내가 얼마나 많은 것을 잘못 알고 있었는지 비슷하게 깨닫고 놀랄 겁니다. 지금부터 100년이 흐른 뒤 미래 세대는 과거의 우리 세대를 향해 놀랄 만큼 바보 같은 결정을 했다고 역사에 기록할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실패를 계속할수록 더 나은 사람이 됩니다. 또한 내가 자주 잘못된 선택을 할수록 우리는 결국 조금씩 더 나아지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모르니까 실수할 수 있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잘못을 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 하는 것이 아니라 혹시 지금 내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은 아닐지 스스로를 지속해서 살펴야 하는 것입니다.
지식이란, 영원히 반복해서 향상되어야 하는 영역입니다. 우리는 틀림에서 옳음으로 한 번에 옮겨가지 않습니다. 더 정확하게는 약간 잘못된 지식에서 조금 덜 잘못된 지식으로, 그리고 다음에는 더욱 덜 잘못된 지식으로 계속해서 발전해 나가는 것이죠. 우리는 진실에 매 순간 더 가까이 가지만 그것이 영원한 확정적 진실이라는 것은 확실하지 않습니다.
몇백 년 뒤에 그것이 그 미래의 지식을 기준으로 잘못된 것이라는 것이 드러날 수도 있거든요. 그러나 지금 우리는 그걸 알 수가 없죠. 우리 뇌는 생각보다 합리적이거나 이성적이지 않습니다. 지각과 주의력도 단편적이고 불완전합니다.
'거짓의 프레임'을 쓴 샌더 밴 데어 린덴은 "인간의 뇌는 궁극적인 팩트체크보다 직관에 의존해 자신에게 익숙한 것, 언뜻 보기에 그럴듯한 것, 평소 선호하는 것, 반복해 들은 것을 진실이라 여긴다"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나의 세계관과 부합하는 증거를 더 빨리 알아채고 수용하도록 설계되었기 때문이며, 그것이 바로 확증 편향이죠.
진실은 자주 착시를 일으킵니다. 미디어와 정보가 넘쳐나고 순식간에 퍼지는 요즘은 더 그렇죠. 가짜에 속지 않으려면, 정보의 출처가 믿을만한지, 그가 주장하는 근거를 비판적으로 검토해 보고, 반대편의 주장도 들어보고, 객관적으로 살펴봐야 합니다. 갈등의 격화는 결코 대한민국에 좋은 것이 아닙니다.
오늘의 질문: 오늘 혹시 내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을 정정할 기회가 있을까요?
나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당신도 그러하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