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지원 Jan 11. 2019

05. 그대 이름은 둘보

 할머니는 1929년 생이다. 처음 할머니의 주민등록증을 보고는 빵 터졌는데, 하나는 지옥의 문지기 같은 증명사진 때문이었고 다른 하나는 너무 생소한 할머니의 주민등록번호였다. 1920년대라니 말로만 듣던 일제강점기 치하 아닌가. 그러고 보니 엄마 또한 1948년생이셔서 그러니까 대한 광복 전에 태어난 세대인 것이다. 때때로 할머니의 생년월일을 떠올리면 산역사와 함께하는 기분이 들었다. 내 기억 속의 할머니는, 유년시절에는 몸집이 크셨다. 실제 돌사진 때 사진을 보면 아줌마 파마를 한 쇼트커트의 할머니가 나의 오른쪽에서 내 손을 잡고 웃고 계시는데, 사진 속의 할머니는 풍채가 좋으시다. 사진 속 할머니의 웃는 표정은 짐짓 어색하기 짝이 없는데, 활짝 웃는 표정이 아니라 아마 사진기사가 강요하다시피 권한     


“할머니, 웃으세요 치즈 치이즈”     


의 강권에 못 이겨 억지로 웃은 표정이 틀림이 없다. 음과 웃의 어느 한가운데 애매한 겸연쩍은 모습이 카메라 앞이 낯설지 않은 지금의 우리 세대와 많이 다른 것 같아 이질감이 느껴질 정도이다. 그 어색한 표정에서도 나의 손을 꼭 잡고, 그의 입가 주름에 번진 미소에서 아마 그때 우리는 행복했었던 것 같다-라고 짐작된다. 


  할머니의 생년월일만큼 잊을 수 없는 건 할머니의 이름인데, 할머니는 4녀 2남 중 둘째 딸이었다. 왜인지 아직 할머니 위로 한 명의 딸밖에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할머니의 할머니가 연속으로 딸을 낳았던 할머니의 엄마가 탐탁지 않으셨던 모양인지 할머니의 이름은 둘러서 낳으라는 의미의 둘보가 되었다. 둘보. 어렸을 때는 둘보가 뭐냐고 둘리도 아니고 할머니 이름 너무 웃겨라고 했는데. 시간이 지나니 여전히 둘보란 이름은 재밌다. 둘러서라도 꼭 낳으라는 그 끝에는 낳으라는 목적어가 아마 아들이었을 것이다. 그 시대 때는 아들을 낳아야 아내이자 며느리의 소임을 다한다고 여겨지던 때였으니. 무튼 연거푸 네 명의 딸을 낳았던 할머니의 엄마는 다행히 다섯째와 여섯째에 아들 출산을 연거푸 성공하셨고 총 6명의 자녀를 낳아 자신의 주어진 책임을 다하셨다. '


  할머니는 그리 썩 미인은 아니셨다고 한다. 내 기억 속에서도 할머니는 미인은 아니셨다. 친근한 느낌이지만, 가끔씩 입을 꼭 다물고 있으면 무섭기도 하고 무튼 남자에게 썩 호감을 주는 얼굴은 아니었다고 한다. 하지만 생활력은 무척 강해 집안이 어려워졌을 때 악착같이 버텨 엄마를 포함한 2남 2녀를 잘 키워내셨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그 시대 누구나 그렇듯 집안에서 정해준 사람과 혼인을 하게 됐는데, 할머니는 시댁의 시어머니께 무척 이쁨을 받았다고 했다. 꼼꼼하고 야무지고 일 잘하고 웃어른을 잘 모시고 공경하는 인품 때문이었다. 시어머니는 그런 할머니를 늘 칭찬하고 아꼈다고 한다. 하지만 시어른의 사랑만큼 정작 남편의 사랑은 많이 받지 못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성격이 맞지 않아 자주 말싸움을 하기도 했으며, 자식을 낳고 정으로 사는 와중에도 할아버지는 자주 집을 겉돌고 할머니에게 정을 붙이지 못했다고 했다. 그러한 관계의 마지막에는 첩질, 지금의 외도라는 말과 같은 행태로 관계를 파장했으며 할머니에게 많은 상처를 주었다. 


  어렸을 때 외할아버지를 딱 한번 본 적이 있었다. 유치원 겨울 방학이었는데, 늘 그렇듯 할머니 집에 장기체류를 하러 가려고 준비하던 중 대뜸 엄마가 ‘외할아버지’가 와계시다고 하는 것이다. 그때가 약 6-7세 정도였는데, 외할아버지라는 단어가 너무 낯설어서     


 “외할아버지이이?”    


라고 괴성과 입술을 씰룩거리는 기이한 표정을 동시에 구사하며 ‘대체 그게 뭔데’라는 질문을 돌려 표현했다. 엄마는 내 질문에는 답하지 않고, 내 코트를 잠그고 여며주며, 가서 인사 잘하라는 말을 덧붙였다. 하지만 함께 가서 할아버지를 뵌 엄마도 할아버지에게 제대로 인사를 하지 않았다. 아마 내 기억이 맞다면, 왔.어.요. 세 글자였던 것 같다. 


  햇볕이 잘 들던 작은 방에 문을 열고 들어가자, 체크남방을 입은 야윈 노인이 앉아 있었다. 방에 들어가서 낯선 노인을 마주하고 나니 생전 대해 본적 없었던 할아버지라는 존재가 버거워 아무 말도 못 하고 눈만 껌뻑거리며 방바닥에 털썩 앉았다. 문 밖에서 코를 대고 듣고 있었는지 엄마의      


“인사해야지, 안녕하세요”


라는 도치법을 가장한 어색한 인사말을 듣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안녕하세요 라고 인사를 했다. 내 떨떠름한 인사가 성에 차지 않았는지 할아버지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나는 그게 더 무서워 얼른 방에서 뛰쳐나왔다. 새우깡을 사달라고 엄마를 졸라대고는 잔돈을 받아 집을 빠져나왔다. 삼촌이 쫓아 나와 같이 슈퍼를 가지 않았다면 새우깡을 사러가는 길이 너무 무서웠을 것이다. 그게 내가 외할아버지를 만난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얼마 뒤 병으로 돌아가셨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아무런 감정이 생기지 않았다. 물론 그 배경에는 할아버지의 평가를 박하게 하는 할머니와 엄마의 평가가 한몫했지만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04.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