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인 산업디자인을 살려 취직한 기간은 짧았고 이후 전기와 관련된 설계사무실에 취직했다. 1993년 전기설계사무실 근무하며 고등학교 전기과를 졸업한 신입사원도 도면을 그리고 있는데, 나는 계속 상세도와 상사가 그려준 걸 그대로 CAD 도면화하고 있었다. 전기에 관해 모르고 CAD로 단순한 업무만을 하는 것에 한계를 느끼고 있던 차에 오빠로부터 전기자격증 학원을 다니면서 공부하고 자격증까지 따는 게 어떠냐는 말을 들었다. 전기를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기기사 자격증이 대여하면 이중으로 돈을 벌 수 있다는 말도 작용했다. 우선 전기에 대해 알아야겠다는 생각에 학원등록부터 했다.
고등학교도 문과였던 나에게 전기관련 과목들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이상하게 재미있었다. 수학2에 해당하는 라플라스변환도 어렵지 않았다. 직장생활하며 퇴근하고 공부하니 시간이 부족했다. 같은 직장 상사가 지금 당장 수입이 없어지겠지만 회사를 그만두고 자격증 공부에 전념해서 빨리 취득하는데 후엔 훨씬 잘한 결정이란 걸 알게 될 거라며 조언을 했었다. 그 조언을 받아들여 회사를 그만두었다. 이를 두고 다른 직장상사는 “네가 어떻게 그 자격증을 따냐. 만약 네가 자격증을 타면 내 손에 장을 지진다.”라고도 했다. 그 말이 내가 더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을 수도 있다.
학원에는 지방에서 전기를 전공한 남자분들이 고시원을 빌려 몇 달을 공부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분들이 나를 신기해했었다. 어렵지 않냐는 물음에 난 재미있다고 대답했었다. 정규과정 3개월과 특강 1개월을 수강하고 필기는 한 번에 실기는 두 번 만에 통과했다. 1993년 겨울에 전기공사기사 2급을, 1994년에 전기공사기사 1급을 취득했다. 이후 자격증이 있으니 취직은 더욱 잘됐으면 전문가로 인정도 받았다. 전기를 전공한 사람들도 어렵다는 자격증을 취득해서인지, 주위에서 자격증 합격할 사람이 됐다고 당연하다며 인정하는 것 때문인지, 그 어느 것보다 성취욕이 컸고 그 후론 ‘뭐든 하면 되지 안 될 게 있겠어’ 라는 자신감도 생겼다.
산업디자인이란 전공을 살리지도 못하고 위축되어있던 당시 전기기사 자격증 취득을 위한 공부는 새로운 도전이었다. 원래 경쟁을 즐기지도 않았고 존재감도 크지 않았는데 자격증 공부는 남자들만 있는 곳에 유일한 여학생으로 한 번에 필기를 붙어 학원에서 화재가 되었다. 나 역시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다른 일은 전혀 안 하고 자격증 공부만 했고 그것도 과년도 기출문제만 계속 풀었으니 당연한 결과였을 수도 있다.
사람이란 외적보상으로 성취감을 느끼면 이것이 다시 내적동기로도 작동한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어렵기만 한 내용이 재미있었다. 지금 다시 공부하라고 하면 하고 싶지 않다. 전기기사 자격증은 나에게 하면 된다는 자신감과 ‘나도 주목받을 수 있구나’ 하는 존재감을 느끼게 된 경험이었다. 이후 근거 없는 자신감 일명 근자감이 긍정적 사고로까지 확대되었다.
자격증은 이후에도 많이 취득했지만 전기공사기사 자격증과 같진 않았다. 나에게 또 다른 세계를 여는 열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