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나에게 결핍이었다. 내가 국민학교에 입학한 1970년대, 그때는 경제적으로 부유한 사람보다 어려운 사람이 더 많았다. 그래서 책이 귀했다. 지금처럼 학교도서관이 있지 않았고 공공도서관도 많지 않았던 시절에 돈을 주고 책을 산다는 것은 우리 집 형편엔 사치였다. 매달 내는 육성회비조차 제때 내지 못했으니 당연했다. 그래서였을까, 친척에게 국민학교 입학선물로 받은 옛날이야기 책 한 권이 내겐 정말 소중했다. 읽고 또 읽었다.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었다.
이후에도 책을 보는 나에게 아버지는 책볼 시간 있으면 영어단어 외우라고 했었다. 아마 나에겐 책에 대한 결핍, 허기가 오래도록 있었나 보다. 학창시절 권장도서는 어려워서 흥미위주의 책들이나 관심분야를 편독 했었다. 아이를 낳고도 책을 우선하게 된 것도 그런 이유였을 수도 있다. 나이 마흔을 앞두고 아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입학하기 전에 시작한 학습지를 오히려 입학을 앞두고 그만뒀다. 사교육에 들어가는 비용을 차라리 책에 들이는 게 남는 것 같았다. 나의 막연한 이 생각은 내게 있는 책의 허기에서 기인한 것일 수도 있다. 또한 사회적인 분위기도 무시하지 못했다.
아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한 2008년은 독서열기의 최정점에 있었다. 다독을 강조하고 도서관을 건립하고 독서의 장점에 열광했다. 책은 좋은 것이며 책을 읽어야 한다는 것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 나의 책에 대한 허기는 아들의 책 사재기에 몰두하게 만들었다. 그 당시엔 푸름이닷컴을 맹신하고 있었다. 다행인 것은 그곳에서 제시하는 것에 대해 의구심이 들면서 책값도 무시하지 못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가 사들이는 책이 읽는 책보다 많아지고 있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도서관 교육을 주장하는 도서관옆신호등을 알게 되었다. 책을 소유하는 것이 아닌 책의 내용을 소유하는, 내가 낸 세금으로 만든 도서관을 이용할 권리가 나에게 있다는 것을, 그동안 나의 책에 대한 허기를 잘못 채우고 있었음을 알게 했다. 하지만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아 책 구입을 단번에 끊지는 못했다. 직장맘이고 도서관을 이용하기 쉽지 않다는 이유를 대며 스스로에게 책 구입에 대한 정당성을 주었다.
과하면 부족함보다 못하다는 것을 알면서 책에 대한 소유욕은 쉽게 떨쳐지지가 않았다. 그 책들은 아들의 잠자리 독서로 활용되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아들은 그 시간을 책 읽는 시간이 아니라 하루 종일 떨어져있던 엄마와 교감하는 시간이었다. 그래서 좋아했던 것 같다. 나 역시 졸린 눈을 부비고 졸면서 책을 읽어줬었다. 지인에게 선물 받은 ‘~에서 살아남기 시리즈’를 같이 보며 웃다가 눈물까지 흘렸다. 아들은 지금도 가장 재미있는 책을 고르라고 하면 그 책을 집어 든다. 초등 고학년 땐, 잠자리 독서로 읽어줬던 [전태일]을 들으며 소리죽여 눈물 흘리고 아빠가 나빴다며 흥분하기도 했었다.
아들에게 책의 허기를 느끼게 해줬어야 했을까. 그럼 나처럼 책을 손에 쥐고 놓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을 한때 했었다. 물론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아들은 책보다 밖에서 친구들과 직접 부딪히며 즐거워했다. 책은 직접 경험할 수 없기에 간접 경험을 하는 것도 있다. 하지만 직접 경험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걸 안다. 자동차를 좋아하니 자동차 잡지를 사주는 엄마의 한계를 아들은 자동차 동영상을 보며 앞서간다. 그래서 여행 책을 보지 않지만 친구들과 직접 여행을 하는 아들의 방식을 인정한다.
난 여전히 아들의 관심거리가 될 만한 책을 은근실적 권한다. 좀 자극적이라 혹 할 수 있는 것들이 있으면 더 좋다. 고등학교 때 권한 책은 [슈퍼괴짜경제학]이었다. 아들이 학교에 가져가 봤다. 하지만 아들은 역시 나와 달랐다. 졸업하며 그 책을 가져오지 않았다. 책이 본인에게 중요하지 않았나보다.
일본에서 가족과 여행하며 사진과 함께 영어로 글을 짧게 쓴 책을 보여줬다. 여행 좋아하니 이렇게 써보는 건 어떠냐며 사진이 들어가니 글을 많이 써야 하는 부담도 없고 영어로 쓰니 모든 나라에서 볼 수 있고 좋은 컨셉이라고 말이다. 그러네 하며 흥미를 보였다. 하루는 그 책이 책상에 있어 “읽어봤어?” 물었더니 “아니, 라면 냄비 받쳤는데... 책 표지가 코팅이 안 돼서 딱이더라고.”했다.
나의 결핍이 아들의 결핍은 아니었다. 사람은 각자의 결핍이 동기가 되어 작용한다. 결핍을 해소하기 위한 방법도 사람마다 다르다. 어떤 사람은 종교에서 찾고, 어떤 사람은 심리를 공부하고, 어떤 사람은 스승을 찾기도 한다. 나에겐 책이었다. 책의 결핍이 동기가 되어 책을 읽고 싶었다. 프로 N잡러의 터닝포인트에서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결핍을 회피하지 말고 들어다보면 좋은 동기로 작용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