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해듬 Oct 24. 2023

즐겁고 아름다운 SNS 유토피아

아름답지 않은 건 존재할 수 없는 환상의 나라


인스타그램을 지우고 난 뒤 변한 게 있다. 평가에서 멀어졌다는 것이다. 기존의 나는 사람들의 기준을 토대로 ’아름다움‘을 평가했다. 미디어에서 예쁘다고 말하는 하얀 피부가 좋았고, 마른 몸이 좋았고, 긴 속눈썹이 좋았다. 그 외의 것들은 아름답지 않다고 여겼다. 그런 잣대에서 멀어지고 나서야 비로소 나의 취향을 심도 있게 탐색할 수 있게 되었다. 다양한 외형이 주는 다채로운 매력을 온전히 느낄 수 있게 된 것이다.


서로 다른 외형을 가진 연예인들을 보며 누가 더 예쁘니 마니 씨름하는 건 이제 우습지도 않다. 미의 기준이라는 건 결코 수치화할 수 없는 불명확한 개인의 취향에 불과하다. 어떤 무리에 속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기도, 국가나 시대에 따라 달라지기도 한다. 그런 유동적인 기준을 강요받는 건 불쾌하기만 하다.


정말 솔직히 얘기해 보자. 우리가 누군가를 좋아하고 사랑할 때 그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예쁘고 잘생겨서 사랑하는 걸까? 그 외의 요소들은 외모 뒤에 가려져 아무것도 아닌 게 되는 걸까? 우리는 사람을 구성하는 수많은 특징들을 결코 무시할 수 없으며, 그것들이 한데 모여 인간의 정체성을 만들어낸다는 것을 안다. 그렇기에 외모로 내리는 판단은 지극히 얕고 가볍기만 한 것이다. 선입견은 타인뿐 아니라 자신마저도 울타리 안에 가두는 무지함이다. 나는 그 뒤에 가려진 무한한 가능성을 더 많이 보기를 원한다.


어떤 사람들은 아름다움에 환호하고 열광하면서도 결점을 보완하려는 시도는 ‘가짜라며 헐뜯는다. 못생겨서도 안되고(지극히 개인적인 기준에서), 성형도 안되고, 보정도 안된다. 오직 태어날 때부터 완벽하게 아름다운 사람만이 그들에게 인정받을  있다.(이런 인정이 대체 누구에게 필요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생각에 그들은 자신의 인정을 인정받고 싶어 하는  같다. 평가가 권력이라도 되는  마냥 타인을 두를 수 있도 자신의 말에 힘이 실리길 원하는 것이다. 본인의 인생에서 인정받을만한 가치는 오직 그것뿐일 테니 말이다.


얼마 전 유튜브에서 흑인 여자아이가 자신의 피부가 예쁘지 않다고 말하는 영상을 봤다. 면전에 대고 무례한 평가를 하지 않으려 노력하는 다른 국가에도 미의 기준만큼은 존재한다는 거다. 아이는 태어났을 때부터 자신의 피부색을 싫어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니, 자신의 피부가 무슨 색인지조차 몰랐을 것이다. 좁디좁은 사회적 기준 안에 들어가지 못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아이처럼 자신의 외모를 싫어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그렇게 어린 시절부터 기준에 맞지 않는 자신의 외모를 혐오하게 된다. 그 기준에 정확히 부합하는 사람을 찾는 게 더 어려울 텐데 말이다. 현대 사회에 계급은 사라졌다지만, 잔재하는 고정관념과 차별은 이렇게나 교묘하고 은밀해졌다.


거리를 걷다 보면 똑같이 생긴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렇게나 가지각색이기에 조화롭고 아름다운 것을 왜 좁은 기준안에 욱여넣어야 하며, 기준에 맞지 않는 사람은 조롱받아야 하나. 모두가 똑같이 생겼다면 취향이나 개성이라는 단어는 역사 속에서나 존재하는 것이 돼버릴 텐데.



sns를 비극의 원흉이라 여기는 시각도 있지만, 나는 모든 것이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된 후에 따라온 부차적인 문제라고 생각한다. sns가 존재하기 전부터 평가는 만연했다. 그저 이를 조금 더 적나라하게 드러내줄 도구가 등장했을 뿐이다. 피드 속에서 화려한 삶을 전시하는 건 죄가 아니다. 누구에게나 타인에게 잘 보이고 싶은 욕망이 있다. 문제는 우리가 타인의 ‘다른’ 모습을 지적하는 것에 익숙하다는 점이다.


나는 학창 시절 내내 고쳐지지 않는 피부 트러블로 고생했던 기억이 있다. 아이 어른 할 거 없이 아무렇지 않게 한 마디씩 던지는 덕분에 상처도 많이 받았다. sns에 사진을 올릴 때면 피부를 전부 가리거나 사진 보정 어플을 이용해서 트러블을 지웠다. 그런 식으로 sns에 공유하기 위해 만들어낸 사진은 대부분 내가 원하는, 혹은 사람들이 원하는 모습을 가진 사진이었다. 그때의 나는 휘몰아치는 평가에 정신이 너덜너덜해져 내 피부가 문제라고만 생각했지 내 피부를 지적하는 사람들의 말이 문제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sns에는 그렇게 보기 좋은 사진만 올라간다. 내가 인생에서 겪은 비극적인 부분과 결점, 혹은 치부들은 오직 나만이 알 수 있다. 그러니까 매일 좋은 일로 가득한 인생은 sns 밖에서는 결코 존재할 수 없다는 거다. 모두가 그렇게 살 수도, 살 필요도 없는데 그래야만 하는 것처럼 서로 자극하기만 한다. 인정받기 쉽고 보기 좋은 것만을 선망하게 되고, 보이는 것 외의 가치들은 중요도에 관계없이 쉽게 무시당하기도 한다. 계속해서 피드를 꾸미고 다른 사람의 피드를 더 많이 볼 수록 현실과의 간극 속에서 공허함을 느끼게 된다. 특정 기준이 생기고 행복의 역치가 높아지다 보면 평범한 일상은 그저 아무것도 아닌 게 돼버린다.


그러나 타인이 만들어놓은 기준을 내려놓고 평가를 잠시 멈춰보면 그제야 보이는 가치들이 있다. 이건 전부 유토피아 같은 sns 세상에서 한 발자국 멀어지고 나서야 볼 수 있는 것들이다. 더 넓은 세상, 진짜는 전부 그 밖에 있었다. 리얼 월드는 아름답지만은 않기에 더 재밌는 것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