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자아도취 Apr 22. 2020

흰머리가 어때서?!

나를 사랑하는 방법, 둘


새치가 나기 시작한 건 꽤 오래전부터의 일이다.

삼십 대에 들어서면서부터, 아주 드문드문 발견되었었다.


나는 머리가 아주 천천히 세는 아버지 쪽 피를 이어받았으면 했지만,

(우리 할아버지는 일흔셋에 돌아가실 때까지 염색 한번 안 하시고도 검은 머리에 가까운 회색 머리 소유자셨다.

아버지도 평생 염색을 안 하시고도 검은 머리에 가까운 회색 머리를 유지 중이시다.)


머리가 빨리 세어 버리고 마는 어머니 쪽의 피를 이어받았나 보다.

(외할머니도, 엄마와 이모들도 모두 머리가 빨리 세셨다)


본격적으로 흰머리가 나기 시작한 건 아이를 낳고 육아 휴직 후 복직하고 나서부터였다.

아이를 낳고도 머리가 세는 줄을 모르겠더니, 복직을 하고 나서 새치가 폭발적으로 늘었다.

육아와 일과 인생을 병행하는 일이 꽤나 고됐던 모양이다.


뒷머리 쪽이면 내 눈에 안보이니 신경이 덜 쓰일 텐데,

나의 흰머리들은 나의 이마 라인 가까운 앞 쪽에 포진해 있다.

특히 한 놈은 이마라인 가장 앞줄 정 중앙에 자리 잡고 있다.

처음 내 눈에 띈 이 하얀 머리카락은 정 가운데에서 너무 눈에 띄어서, 처음에는 뽑아주었다.

하지만 뽑고 나서 다시 그 자리에 혼자 뿔난 모양으로 삐죽 올라오는 새싹 같은 흰머리카락을 보고 있자니, 자꾸만 더 신경이 쓰였다. 몇 번 더 뽑아도 보고, 미용실에서 알려준 대로 바짝 잘라도 보았다.


그 머리카락은 밟히면 밟힐수록 무성히 자라는 잡초;;처럼,

뽑고 난 후에는 같은 자리에서 더 기세 등등하게 존재감을 과시하며 다시 올라왔다.

앞 쪽에 하나였던 흰머리카락이 두 개, 세 개...로 늘어나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거울을 볼 때마다 염색을 해, 말아, 하며 스트레스를 적잖게 받고 있었다.

젊은 시절부터 지금까지 평생을 머리 염색을 해 오신 엄마께서 지금 시작하면 그만 둘 수가 없다고, 아직은 괜찮으니 염색을 하지 말라 하신다.


염색을 하지 말아야지 마음을 먹었다가도 거울을 볼 때면 형광등이라도 켜 놓은 듯, 흰머리만 눈에 들어왔다.

미용실을 갈 때마다 염색을 권유받았고, 백만 번 고민하다가 안 하고 돌아오는 날은 거울을 하염없이 들여다보며 이 흰머리를 어쩌지,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한숨이 나왔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이 모습도 나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는 나의 모든 면을 사랑하기로 하였다.

한 순간에 마음의 평화가 찾아왔다.


사람들이 나를 볼 때면 저마다 입을 댔다. "어휴 @@@도 이제 흰머리 나네~ 염색해야겠다~"

그러면 나는 당당하게 "저는 늙어가는 제 모습도 사랑해주기로 했어요. 저는 제 흰머리도 사랑해요."라고 대답한다. 그런 나를 희한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나를 지지해주는 사람도 있다.

이젠 거울을 보며 불편했던 마음은 온데간데없고, 흰머리도 소중히 하는 나의 모습만이 남았다.


얼마 전 흰머리 때문에 스트레스받는 지인에게 이 이야기를 했더니 나의 멘탈력에 감탄했다고 하셨다.

사실 그리 거창 한 건 아니다.


모든 문제가 그러하듯이 생각의 전환, 고정관념 타파가 관건인데, 그 당시 강경화 장관님이 카리스마 뿜 뿜 하며 은발을 고수하시는 것과 더불어, 세계적으로 #goinggray #grombre 해쉬태그가 한참 유행하던 찰나여서 생각의 전환이 좀 더 쉬웠을 수도 있겠다.


나를 사랑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나는 나의 흰머리를 소중히 하기로 하면서 조금 더 나를 사랑하게 됐다.

나이가 들어가고 있는 지금의 내 모습 그대로를 아껴 주기로 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40대가 더 이상 두렵지 않다.


Bravo, my 40s.


Embrace yourself.Photo by Tim Mossholderon Unsplash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