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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랩 Jul 13. 2023

장마철, 당신을 불쾌하게 만들 출근길 상상

출근은 언제든 싫다 하지만 비 올 땐 더 싫다




장마가 시작됐다.


마침 장마가 시작되어 글을 읽는 당신도 어두운 하늘 아래, 습하고 불쾌한 기분으로 이 글을 보고 있을 수 있겠다.


안 그래도 불쾌한 당신을 더 불쾌하게 하는 상상을 해보고자 한다.


어떻게? 장마철 출근길을 상상하면서 말이다.


내 글을 보고 아니 겨우 그 정도로 불쾌하다고? 오늘 내 출근길은 말이야, 작년 대폭우 속에서 난 말이야…라는 반응이 터진다면 난 꽤 행복할 것 같다.


날씨에 따라 기분이 오락가락하는 나는 지금 상당히 센티해 있어서 평소의 긍정성을 꽤 많이 잃고, 남의 불행을 보며 방구석인 나의 상황을 안도하고 싶은 심정이니까.


일단, 요즘은 꽤 많은 회사들이 복장 자율화가 되어 정장, 준정장을 입지 않고 출근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나의 유니폼은 하의가 베이지색을 띠는 정장 치마, 혹은 정장 바지로 되어있고 이는 기호에 따라 마음대로 선택해 입을 수 있다.


나는 80% 바지를 입고 출근을 하는데, 비가 오는 날엔 그럴 수가 없다.


발목까지 오는 길고 하얀 바지에 빗물이 튀면 출근 전부터 난감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르는 차선책인 치마는..?


일단 이 더위와 습기에 스타킹을 신는다는 것 자체가…..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화들짝 놀라며 미간을 찌푸렸길 바란다. 나는 오늘 글을 읽는 사람들이  내 불쾌함에 공감해 주길 바란다.)


통풍이 잘 안 되는 스타킹 위에 가죽 구두를 신고 빗길을 걷다가 물구덩이를 밟아 발이라도 젖으면 당장 출근을 포기하고 싶다.


심지어, 나는 캐리어를 끌며 우산을 써야 한다. (자자, 점점 버티기 힘들 것이다…. 괴로울 것이라 믿는다.)


이 모든 과정이 절망적인 날엔 지하주차장으로 택시를 불러 지하철 역까지 간다.


여기까지는 어찌어찌 당신의 출근길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시는 분에게,


내가 비 오는 날이 평소의 출근 날보다 더더욱 싫은 이유를 덧붙이자면 나에겐  ‘스카프’가 있다.


자, 일단 여름철은 설사 정장을 입는 회사들도 하절기에 ‘노타이 기간’을 가지는 걸로 알고 있다.


넥타이의 유무에 따라 신체 온도 차이가 크게 나기 때문이다. (복장 자율화 전 우리 회사도 그러했다. 사무실 직원들은 노타이로 다니고 우리는 겨우 유니폼 재킷을 벗는 것이 그 기간에만 허용됐었지만, 지금은 복장 자율화에 걸맞게 재킷을 본인이 원할 때만 입어도 된다.)


하지만, 나는 목의 중반부까지 단추를 꼼꼼히 채운 셔츠 위에 스카프를 한 번 더 감아야 한다.


‘스카프 이슈’는 여름철에 가장 나를 화나게 하는 것인데, 일단 덥고 조이고 불편한 것은 물론이고, 모두가 보기 좋게 “그 스카프는 어떻게 그렇게 빳빳해요? 안에 철사가 들어있나요?”라고 간혹 손님들이 물으시는 것처럼 빳빳이 세우는 것은 장마철엔 아주 힘든 일이다.


‘자존심’이라 칭하는 그 빳빳함은, 물기를 머금으면 점점 아래로 축 처져서 어느샌가 어깨에 힘없이 매달려 있을 때가 있다.


늘 고개를 돌려 잘 버티고 있나 살펴봐야 하고 축 쳐져 있으면 새 스카프로 교체하거나 헤어스프레이를 가장자리에 뿌려 말려서 뻣뻣하게 한 뒤 반대로 묶어 보는 등, 다양한 복구 시스템과 꿀팁이 존재하지만 모든 것은 장마 앞에 무용지물이다.


“아유, 왜 꼭 비행 가는 날은 날이 이렇게 화창해. 가기 싫게.”라고 입버릇처럼 말하지만, 하늘만이 무사 비행의 운명을 아는 장마, 태풍, 폭설 때는 누구보다도 날씨에 예민하다.


눈이 펑펑 오는 날을 좋아했던 나는 사라졌고, ‘아 또 지연되겠구나.’라는 맘이 먼저 들기 일쑤고,


태풍이 온다는 소식을 들으면 재빨리 스케줄표를 열어 그날 내가 어디에 있는지, 과연 영향을 받을지를 가늠해보곤 한다.


운 좋게 순환 근무 때에 장마철, 폭설철을 잘 피해 갔던 작년이었는데,  올해는 꼼짝없이 모든 달 근무를 하게 되었으니, 마음이 쳐지는 오늘 같은 날이면 괜히 닥치지도 않은 수많은 일들이 미리 걱정된다.


끌어당김의 법칙을 나에게 적용하면서 ‘나 날씨 요정이야’ ‘내가 출근하는 날엔 기상 이변이 잘 없어’라고 확언하며 살아야겠다.


집에 있는 동안 멍-하니 창을 보며 비는 비대로 눈은 눈대로 감상하며,  오늘은 집이어서 참 다행이다라고 생각하는 매일이고 싶다. 궂은날 이륙하는 비행기를 보며, 에효 오늘도 힘내세요.라고 응원만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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