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어린 시절로 갈수만 있다면
얼마 전 종영한 드라마 ‘히어로는 아닙니다만’이라는 드라마를 재밌게 봤다. 극 중 남자 주인공은 타임슬립 능력이 있다. 자신이 가진 특별한 능력으로 사람을 구하고 싶어 하지만 결국 아무도 구하지 못한다. 그러다 운명의 여자를 만나 결국 그녀를 구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그가 타임슬립한 과거에서는 유일하게 여자 주인공과만 만나거나 접촉할 수 있다. 여자는 어린 시절 고아로 쓸쓸하게 자란다. 우연히 재밌게 보던 드라마 속 한 장면에서 나는 엄마가 떠올랐다.
어린 시절 여자 아이가 홀로 자전거를 타고 있다. 고아인 아이는 자전거를 가르쳐줄 어른이 없어 혼자서 자전거를 탄다. 남자는 여자의 어린 시절로 가서 여자의 자전거를 뒤에서 잡아주며 웃는다. 그 밖에도 여러 장면에서 남자는 과거 여자의 외로운 순간에 등장해 그녀의 결핍을 채워준다. 드라마 속 여자가 환하게 웃는 모습에 치유를 느낀다.
내게도 그런 특별한 능력이 있다면 어땠을지 상상해 봤다. 엄마의 어린 시절 외로웠던 순간에 지금의 내가 아주 잠시라도 머물 수 있다면 좋겠다. 엄마의 결핍과 상처를 조금이나마 감싸 안아주고 싶다.
엄마는 5남매 중 넷째로 자랐다. 큰 외삼촌, 큰 이모, 작은 외삼촌, 엄마 그리고 막내이모가 있다.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는 얼굴도 못 보고 결혼을 하셨다고 한다. 어린 시절 기억 속 할아버지는 할머니를 무척 싫어하셨다. 내가 기억하는 할아버지는 딱히 잘못한 것도 없는 할머니에게 늘 호통을 치고 화를 냈다. 엄마는 애정 없는 부모님과 가부장적인 집안 분위기에서 자랐다. 대부분 엄마 세대가 그렇듯 아들만 위하고 딸은 뒷전인 그런 가정이었다.
엄마는 어릴 때 공부를 잘했다고 한다. 할아버지는 무서운 분이었지만 그래도 엄마는 예뻐했다. 어린 엄마를 자전거에 태우고 여기저기 자랑하러 다녔다는 이야기를 하는 엄마의 표정에서 할아버지에게만큼은 사랑받았음을 느꼈다. 할아버지는 결혼생활 내내 할머니를 못마땅해하셨다. 젊은 시절에는 매일 도시에 나가 시간을 보내는 일이 허다했고 그러다 똑똑하고 예쁜 분과 바람을 폈다고 한다. 한글도 모르는 할머니랑은 말도 안 통하는데 그분과는 말이 잘 통해 사랑에 빠졌다나. 할머니는 고된 시집살이와 할아버지의 바람을 견디다 못해 집을 나갔다 몇 년 후에 돌아오셨다. 그런데 하필 할머니가 집을 나간 시기가 엄마가 중학교 진학을 앞둔 때였다. 당시 큰 이모는 큰 도시에 나가 돈을 벌고 있었고 외삼촌들은 아들이라 극진한 대접을 받고 있었으니 집안 살림을 도맡아 할 사람은 엄마뿐이었다. 엄마는 증조할머니, 증조할아버지의 세끼 밥을 차려야 해서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했다. 고작 밥을 차려야 해서 중학교를 가지 못했다니 이야기를 전해 듣는 것만으로도 너무 억울해서 화가 났다.
엄마는 학벌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었다. 우리에게도 줄곧 쉬쉬하던 이야기를 내가 중학교 때 야학에 다니게 되면서 털어놓았다.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는 야학에 다니며 검정고시를 패스했다. 그리고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 대학을 졸업했다. 엄마는 학교를 다니지 못해 교복을 입어보지 못한 것에 내내 미련이 남는다고 한다. 내가 결혼하고 얼마뒤 남편과 함께 교복을 입고 한옥마을을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은 적이 있었다. 엄마는 ”평생 교복을 입어보는 게 소원이었어”라며 울듯 말듯한 표정으로 말했었다. 그때 나도 표현은 못했지만 차오르는 눈물을 몰래 삼켰다. 엄마가 놓쳐버린 수많은 순간과 되돌아갈 수 없는 과거는 한이 되어 엄마의 가슴에 콕 박혔다.
과거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엄마의 손을 잡고 중학교 등록금을 내러 함께 가고 싶다. 할머니가 집을 나간 상황이었지만 그래도 할아버지는 엄마의 등록금을 큰 외삼촌에게 쥐어주며 학교에 등록해 줘라 당부했다고 한다. 그런데 큰 외삼촌은 무슨 이유였는지 등록금을 내주지 않았다. 엄마는 그때 너무 어렸기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저 시키는 대로 증조할머니, 증조할아버지의 밥상을 차렸고 몇 년 뒤 외할머니가 다시 집에 돌아올 때까지 쭉 그렇게 지냈다고 한다. 할머니가 집에 돌아오고 나서 엄마도 큰 이모처럼 큰 도시로 나가 돈을 벌기 시작했다. 그렇게 엄마의 시간은 아무 의미 없이 흘러갔다. 사무치게 억울하고 화가 나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무력하게 주저앉았을 엄마를 상상하면 너무 마음이 아프다. 그런 순간에 엄마에게는 아무도 없었다. 고아는 아니었지만 고아였다.
엄마가 외로웠던 순간, 서러웠던 순간, 죽고 싶었던 순간에 내가 짠 하고 나타나 안아주고 싶다. 나는 엄마의 결핍을 절대로 채워줄 수 없다. 할머니는 엄마에게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하고 미안했다는 사과도 전하지 못한 채 일찍 돌아가셨다. 할아버지는 죽는 날까지 자식들 중 엄마에게만 의지하셨다. 엄마의 부모는 엄마에게 사랑을 주는 방법을 가르쳐주지도 사랑을 주지도 않았다. 하지만 나는 엄마에게 사랑을 받았다. 엄마는 부모에게 받은 사랑이 거의 없었지만 우리에게는 사랑을 주려고 노력했다. 내가 우리 아이들에게 엄마에게 받은 사랑과는 다른 사랑을 주려고 하는 것처럼 말이다.
내가 가진 결핍은 글을 쓰며 해소한다. 엄마가 그랬듯 나의 결핍을 대물림하지 않으려 한다. 우리 아이들에게는 온전히 엄마인 나 자신을 사랑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건강한 방법으로 사랑을 주고받는 법을 가르쳐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