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제형 엄마와 통제불가 딸
나는 엄마 뜻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는 딸이었다. 엄마는 자신이 만든 틀 안에서 벗어나는 것을 힘들어한다. 엄마에게 변수는 스트레스다. 나는 엄마에게 엄청난 변수다.
"왜 그래야 하는데?"
"그냥 그런 거야. 받아들여."
내 사전에 '그냥'은 없다. 납득이 되어야 행동하고 납득이 될 때까지 묻는다. 엄마의 철학이 이해가 안 되면 이해가 될 때까지 물었다. 엄마의 말에 군말 없이 "네. 알겠어요"라고 대답한 적이 거의 없다. 통제형 엄마에게 통제불능인 딸이 태어난 것이다. 엄마가 통제를 하려고 하면 더욱더 반대로 튀어나갔다. 내가 생각해도 나 같은 아이를 엄마 같은 엄마가 키우는 일은 많이 버겁고 힘들었을 것이다. 통제가 안될 때마다 엄마는 남몰래 많이 울었고 나 역시 엄마의 우는 모습을 몰래 지켜보았다. 엄마도 나도 서로가 힘들었다.
엄마와 나는 성향이 아주 많이 달랐다. 심리상담을 하기 전 몇 가지 심리검사를 받았다. 그중 기질검사에서 자극추구가 98%로 나왔다. 불안과 걱정이 많은 엄마에게 자극추구형 아이는 온갖 걱정거리를 긁어 모아다 준 셈이다. 어릴 때 엄마에게 "덤벙대지 마"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실수가 잦고 크고 작은 사고가 많아 엄마의 마음을 졸이게 했다.
“네가 그럼 그렇지 뭐”
내가 실수라도 하면 엄마는 한심하다는 듯 말했다. 엄마의 말은 나를 무가치하고 쓸모없는 사람으로 느껴지게 만든다. 한없이 무기력해지고 앞으로 나아갈 힘이 푹 꺾인다. 부정적 인식은 뭐든 금방 포기하게 한다.
맞아. 내가 그렇지 뭐.
생각은 곧 행동이 되고 내가 된다. 나는 그런 사람이 되어버린다.
항상 가슴속에 물음표를 품고 살았다. 나는 이해가 되어야 실행이 가능한 사람이다. 고분고분하지 않고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것을 잘하지 못한다. 그런 점이 엄마와 자주 부딪히는 지점이다. 반면 엄마는 잘 받아들인다. 어른들이 하는 말이 곧 법이고 관습은 따라야 한다. 그런 엄마에게 고분고분하지 않은 딸은 이해불가다. 가끔 나를 향한 엄마의 답답함이 느껴지는데 나 역시 답답해 미칠 노릇이다.
“너도 너랑 똑같은 딸 낳아 키워봐. 그럼 내 맘 알 거야”
엄마의 말은 여전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나랑 똑같은 딸을 낳아도 엄마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둘째인 딸은 아직 어려 성향을 잘 모르겠지만 첫째는 아이러니하게도 통제형이다.
4세 첫째는 자신이 계획한 대로 하지 않으면 곧바로 짜증을 낸다. 오늘 아침에 있었던 일이다. 어린이집에 등원하기 전에 장난감을 정리하고 있었다. 내가 자동차 장난감들을 바구니에 와르르 쏟아 넣었더니 그때부터 첫째의 짜증이 시작됐다. 자기만의 규칙으로 정리를 하고 있었는데 엄마가 규칙을 깨버린 것이다. 첫째는 짜증을 내며 바구니의 장난감을 다 쏟아버렸다.
"아니야! 이거 아니라고! 엄마 옆에 앉아. 나랑 같이 하나씩 정리해!"
자기가 정한 규칙대로 함께 정리하기를 원한다. '첫째가 나를 통제하려고 한다'라고 느끼면 가만히 멈추고 진정될 때까지 기다린다. 첫째의 짜증을 가장 빨리 달래주는 방법은 첫째가 원하는 대로 정리의 규칙을 배우고 함께 앉아 정리를 마치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내 아이에게도 통제당하는 것이 싫다. 내 의사를 명확하게 표현하고 기다린다.
"다 울 때까지 기다려줄게. 네가 정리하는 방식을 엄마는 몰라. 다 울고 나서 정리하는 방식을 알려주면 엄마가 도와줄 수는 있어"
첫째가 짜증을 바로 멈추지는 않는다. 그래도 계속해서 연습하게 도와준다. 모든 일이 네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도 알려준다. 오래 걸리더라도 아이가 스스로 진정할 수 있게 기다려준다. 둘째가 옆에서 칭얼대고 등원시간이 다가와 마음이 바빠지지만 침착하려고 노력한다. 첫째에게 통제가 안 되는 상황에서도 괜찮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
첫째는 나와 다른 성향이지만 다르다고 해서 이해가 안 되거나 힘들지는 않다. 아이 그 자체로 예쁘고 사랑스럽다. 아이의 성향을 있는 그대로 봐주고 아이가 적응적으로 살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엄마가 떠오를 때가 있다. 엄마도 나를 있는 그대로 바라봐줬다면 어땠을까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