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부터는 디테일한 부분을 살려서 완성도를 높여나가면 된다. 심사위원의 자리에서 너무 높지 않은 눈높이를 유지하고, 거울을 등지고 서서 춤을 추고 있다. 항상 보던 거울이 사라지니 눈동자가 갈피를 잃었다. 작은 차이라도 평소와 달라지면 몸이 긴장해 버린다.
이번 달 새롭게 시작한 특훈은 모래주머니이다. 발목에 2개, 손목에 2개의 주머니를 차기 시작했다. 하나에 약 1kg이니까 총 4kg를 들고 춤을 추는 셈이다. 이 훈련이 필요한 이유는 시험을 볼 때 몸이 굳어버리는 것까지 감안해서 힘을 기를 수 있어서이다. 그러다가 다시 모래주머니를 떼어내면 상대적으로 가벼워져서 훨씬 수월하게 춤을 추는 기분이다.
약 한 달이라는 디데이를 앞두고 해야 할 일이 있다. 첫 번째는 자다가도 음악을 들으면 출 수 있을 만큼 익숙해지는 것이고, 두 번째는 잘 안 되는 부분을 집중적으로 연습하는 것이다. 지금 가장 애를 먹고 있는 부분은 작품의 초입 파트다. 작품의 첫인상인 만큼 임팩트를 전달해야 하는데 생각만큼 나오지 않아 수업에서 몇 번이고 지적을 받았다.
"지금은 3단계 정도만 표현하고 있는데, 5단계까지 더 할 수 있을 거 같아요. 조금만 더 끌어올려봐요. 이 부분만 100번 하기 숙제! "
선생님이 보기엔, 지금은 내가 딱 할 수 있는 만큼만 보여준단다. 그게 안전하고 편하니까. 그런데 지금보다 20% 정도는 더 표현할 수 있을 거 같은데, 그게 아쉬운 부분이라고 했다. 몸으로 배우는 게 한번 터득하면 쉬운데 아직 감을 잡지 못해 나도 신경이 쓰인다. '이제 됐다'라고 느낄 때까지 이것저것 시도해 보면서 지금보다 풍부한 동작을 해 내는 것이 숙제로 주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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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 수업은 철저하게 도제식이다. 책이 아니라 사람에게서 배운다. 먼저 선생님의 자세를 따라 하고, 교정이 필요한 부분은 직접 손으로 바로 잡아 주신다. 전체의 음악과 동작이 몸에 익을 때까지 시범을 보여주고, 손으로 자세를 잡아주고, 반복할 시간을 주는 것이 선생님의 역할이다.
어른이 되어서 오랜만에 옆에서 봐주고 지적하는 사람을 만났다. 수업시간에 '이거 고치세요', '이건 틀렸어요', '다시-'를 외치며 호되게 혼낸다. 처음엔 너무 지적을 받아서 정신을 못 차리기도 했지만 그 덕에 구부정했던 허리도 펴지고, 잘 안되던 동작들이 나아지고 있었다. '지금은 나에게 배우지만, 언젠간 나를 또 뛰어넘어야죠~'라며 격려의 말도 건네곤 한다. 연습실에서는 온통 고칠 점뿐이니 때로는 기운이 빠지기도 하지만, 덕분에 피드백을 받는 것에 마음이 많이 유연해졌다.
누군가 나를 지켜보고, 좀 더 잘할 수 있도록 끌어주는 사람이 있어 어린 시절의 학교로 돌아간 기분이 들었다. 무용의 세계는 나에게 생소한 분야라 연습슬에서만큼은 학생 모드로 설정되어 있다. 수업이 끝나면 노트에 그날의 연습을 기록하고, 연습 영상을 다시 보기를 하며 머릿속으로 고쳐야 할 것들을 시뮬레이션해 본다. 수업의 마지막에는 언제나 영상을 찍는데 이렇게 수련하는 과정이 설렌다. 사회에 나와서는 오직 결과로만 평가를 받는데, 수업에서는 내가 노력한 과정까지 인정받는 기분이 들어서이다.
사람은 평생 성장할 수 있는 존재라고 하지만 가끔 그것을 잊을 때가 있는데, 오랜만에 이런 기대(혹은 지적)를 받아서 잘해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