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The Great Pumpkin, Charlie Brown
꿈의 세계로 평온하고도 나른하게 인도해 주는 자장가, 그것은 개개인의 은밀한 사적 영역일 것이다. 고요한 울림의 소리가 아니라 따듯한 우유나 카모마일을 우려낸 차 한잔이, 아니면 푹신하고 보드라운 고양이 뱃살 또는 라이너스의 담요가 될 수도 있다.
어렴풋이 아련하게 머릿속에 존재해 오던 피너츠 친구들을 어른이 되고 난 후에 소환해 낸 것은 재즈 뮤지션 Vince Guaraldi 가 찰리 브라운 크리스마스 특집 TV 방송을 위해 만든 크리스마스 앨범, 'Christmas Time is Here'(1965)을 우연히 접하고 난 뒤다. (물론 그전부터 나는 찰리 브라운의 비글, 스누피의 광팬이었다)
트리오 밴드의 잔잔하고 아름다운 크리스마스 선율이 트랙 끝자락에 이를 즈음, Emanuel Klein의 나른한 트럼펫 소리가 왠지 모를 평행우주 세계로 이끈다. 2분 29초라는 순식간의 러닝타임이지만 그 2분 반 시간 동안 몽상가 기질이 다분한 나는 거대한 호박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Great Pumpkin Waltz"
풀린 동공으로 이 세계의 그 어느 것도 응시하고 있지 않은 듯한 시선은 어디로 향하는 것일까. 어린 시절의 추억? 자연스럽게 흐르고 있는 무의식 퍼레이드? 이 전날 정오를 넘어서 마주한 벽돌 사이 갈라진 틈? 태평양을 끼고 있는 바닷가 언덕으로 흐르던 건조한 대기 속 카모마일 향기?
피너츠에도 자주 등장하는 환상의 미장센이 있다. 바로 스누피의 몽상. 세계 대전 중 파일럿이 되어 적군에게 격추당하기도 하고, 자신만의 상상 속에 존재하는 토끼 친구들과 흥겨운 댄스타임 즐기기도 하며.. 언젠가는 훌륭한 작가가 되어 본인의 책이 베스트셀러가 될 것을 확신하는.
왜 그런지는 몰라도 나는 'Christmas Time is Here'의 13번 트랙, Pumpkin Waltz가 귓가에 울리는 순간만큼은 그렇게 동공이 풀려갔다. 어느덧 나만의 자장가가 되어가고 있었는데, 수면에 취할 무렵이면 나는 자연스럽게 찰리 브라운의 '거대 호박' 에피소드 영상을 틀어 놓고 서서히 꿈의 세계로 빠져들곤 했던 것.
"It's the Great Pumpkin, Charlie Brown"
내용은 이렇다. 할로윈을 맞은 우리의 피너츠 친구들. 마음껏 캔디를 먹을 수 있는 기대감에 부풀어 'Trick or Treat'을 외치며 몰려다니는 친구들과 다르게 라이너스는 '거대 호박 요정, The Great Pumpkin'이 호박밭에 나타날 것이라는 터무니없는 희망을 품은 라이너스. 사람들이 산타클로스는 당연하게 믿지만 호박 요정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매우 안타깝게 여기는 또 하나의 몽상가이다. 평소 라이너스를 좋아하는 찰리 브라운의 여동생 샐리는 라이너스 곁에서 든든한 아군이 되어 그렇게 둘은 보름달이 환하게 비추는 할로윈데이에 호박밭을 지키게 된다. 이윽고 서서히 드러나는 거대 호박 요정의 실루엣. 그것은 바로 밝게 빛나는 월광에 취해 파일럿 분장을 하고서 상상 속에서 상공을 활주 하던 사랑스러운 비글, 스누피였던 것.
할로윈이 휩쓸고 간 다음날.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이너스는 찰리 브라운에게 하소연을 늘어놓는다. 돌아오는 할로윈에 반드시 호박 요정이 나타나 자신에게 선물을 안겨다 줄 것이라고..
늦가을 즈음 수확해 손쉽게 저장해 놓고 겨우내 맛볼 수 있는 단호박. 크리스마스 시즌이 다가오면 늘 귓가에 울리던 앨범 속 'Great Pumpkin Waltz'를 떠올리며, 연말 시즌 식탁에 올라올 법한 단호박 요리 하나.
INGREDIANTS
단호박
양파
버터
우유, 물
소금 약간
DIRECTION
_ 스프용 단호박은 반을 갈라 속을 깨끗이 파낸다.(견고한 단호박, 칼질에 매우 매우 주의!)
_ 단단한 겉껍질 손질을 위해 호박이 물러질 정도로 쪄내거나 2-3분 이내로 전자레인지에 돌린다.
_ 뜨거운 단호박에서 올라오는 열기에 주의하며 초록빛이 감도는 겉껍질을 몽땅 벗겨낸다.
_ 예열된 냄비에 적당량 버터를 두르고 슬라이스 양파와 손질한 호박을 넣고 중불과 약불로 푹 익힌다.
_ 냄비가 눌어붙지 않도록 물을 적당량 첨가해 가며 뭉근히 졸여낸다.
_ 호박이 부드럽게 으깨어질 정도로 푹 익으면 블랜더를 사용해 부드럽게 갈아준다.
_ 기호에 따라 소금과 우유로 농도와 간을 맞추어 가며 마무리한다.
_ 그릇용 호박은 호박의 윗둥을 약 1/4로 잘라낸다.
_ 속을 깨끗이 파내고 호박의 밑동이 위로 향하게 찜기에 놓고 속이 포슬포슬하게 익을 때까지 쪄준다.
_ 맛있게 익은 호박을 꺼내 꿀을 한 바퀴 둘러 준 뒤 냄비의 호박 스프를 담아낸다.
_ 아몬드와 파슬리가루 등으로 토핑 한 뒤 겨울 열매나 낙엽 등으로 장식해 준다.
눅진한 황금빛 호박 속을 파내고. 반 정도 익힌 호박 겉껍질을 정성스레 손질.
약불로 예열된 냄비 속의 버터. 언제나 좋은 냄새.
양파와 버터, 단호박의 맛있는 변신을 기대하며.
뭉근하게 졸여진 냄비 속.
목 넘김이 부드럽도록 내용물을 곱게 갈아 주고, 우유를 더해 농도를 조절해 준다.
완성 직전의 호박스프.
찜솥에 쪄낸 단호박 그릇 속으로 꿀 한 바퀴 두르고, 집중력을 발휘해 솥단지 안의 호박 스프를 담아낸다(접시 위로 스프가 방울지지 않도록). 아몬드와 파슬리 토핑, 겨울 속에서 빛나는 상록수 남천의 붉은 열매.
나는 스누피의 열렬한 팬이다. 찰스 M. 슐츠가 그리는 앳되고 풋풋하며 어리석은 동심의 세계 속 인물들. 사랑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노인이 된 작가가 암에 걸려 죽음을 앞두고 눈물을 흘리며 피너츠와 작별을 고하던 인터뷰가 잊히지 않는다. "How Can I Forget Them?" 그렇게 작가는 떠났지만, 보석 같은 피너츠의 친구들은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적어도 내 영원의 기간 동안은). 크리스마스가 다시 돌아오고 있다. Christmas Time is H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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