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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stain Life Mar 31. 2019

작가의 아뜰리에 II

SUSTAIN-WORKS




 해가 바뀌기도 훨씬 전의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아마도 지금 앉아 글을 쓰고 있는 이 공간을 처음 방문한 지 꼬박 한 해가 흘렀기에 문득 정리를 하고픈 생각이 들었는지도요! 한옥집을 중심으로 꾸려가던 일상이 양분화되기 시작한 것도 아마 그때부터였을 겁니다. 꽃은 지고 신록이 제법 짙어 갈 무렵, 집에서 차로 10분이 채 되지 않는 거리에 있던 어느 작가의 아뜰리에를 방문하게 된 거예요. 


 

  수 년째 작업실을 찾고 있던 김포토의 열망과 화실을 정리하게 된 작가의 상황이 우연히 맞아떨어진 게 발단이지만, 선듯 차를 내어주며 호의를 베풀던 작가와 대화를 나누던 중 그녀와 저는 같은 학교를 다녔던 사실을 알게 된 거죠. 흐리고도 퍽 우울한 날씨였음에도 태양이 말간 얼굴을 비추기만 한다면 아름다운 자연광이 쏟아질 것이 틀림없을 2층 작업실이 매우 마음에 들었던 우리는 희미하게 이어진 인연의 연결고리를 운명으로 해석했습니다. 화실을 스튜디오로 개조하기 위한 노고가 주마등처럼 스쳐갔지만, 작은 한옥집 마당 한 편에 쌓여만 가는 장비들이 숨 쉴 공간이 필요한 것 또한 사실이었죠. 



 입주일에 맞춰 텅 빈 화실은 그동안 공간을 채우고 있던 작가의 영혼으로 충만했습니다. 사물들이 떠난 빈 자리, 비로소 드러난 공백과 갈라진 틈 사이로 화창한 초여름 햇살이 들이치고 있었죠. 텅 빈 공간은 우리에게 아쉬운 듯 사뭇 반가운 내색을 비추기도 했어요. 우리는 이 공간을 채우기보다 우선 비워내기로 했으니까요.  


Under Construction, 2018. 06.xx.


 프레임 밖, 보이지 않는 미장센은 벌써 엉망진창이 되었어요. 각목과 판재, 석고보드, 못과 철근 등 연거푸 지속되는 철거 작업에 심신은 지쳐가고 때마침 장마가 북상하기 시작해 조바심마저 들었으니까요. 무엇보다 기본적인 공사를 마무리 지은 뒤 그저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가장 컸습니다. 고양이의 촉감마저 아련할 지경이었으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늑한 한옥집은 공사에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주는 훌륭한 안식처가 되어 주었죠.



미셸/꼬망의 시간과 공간은 집사들과의 간극을 더욱 벌려나갔고, 간편식과 외식으로 엥겔지수를 높이던 시기였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전진기지로 삼았던 콘셉트룸의 기초 공사가 마무리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초저녁 시작한 플로어링 작업은 다음날 새벽 첫 버스가 운행을 개시할 무렵까지 쉬지 않고 이어졌죠. 창 밖으로는 새벽녘 텅 빈 도로를 고속으로 주행하는 자동차의 도플러-이펙트 소음과 만취한 밤손님의 고성방가가 배경음악으로 깔렸습니다.



 물건을 들이는 것은 퍽 재미있고도 신나는 일이죠. 욕망과 취향이 뒤섞여 춤을 추는 연극을 관람할 수 있으니까요. 사물들이 제자리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성취감과 희열을 맛볼 수도 있고요.



 응접실 용도의 공간은 어쩌다 보니 저의 두 번째 주방이 되었습니다. 한옥집 공사 때 쓰다 남은 벽타일이 약속이나 한 듯 정확히 12장이었지 뭐에요. 그것도 자로 잰 듯 싱크대 길이와 꼭 맞는 길이로요. 덕분에 불행인지 다행인지 하나둘씩 늘어나는 공구 목록에 타일 절단기는 제외되었지만요.   



 한옥집에서 잘 쓰고 있던 커피 머신을 부랴부랴 스튜디오로 옮겨온 날이었을 거예요. 단지, 스튜디오에서 에스프레소를 마시기 위한 단순하고도 맹목적인 이유에서요. 마지막으로 조명을 달고 공사를 일단락시켰던 초여름이었습니다. 크루아상에 에스프레소 한 잔 곁들이는 여유도 생겼고요.




 흘러넘칠 듯 찰방이는 태양광에 여름의 스튜디오는 온실을 방불케 합니다. 차가운 커피를 마시며 서산에 걸친 태양빛을 기다리죠, 곧 소멸되기 직전의 오늘의 태양을요. 매직-아워의 황금빛으로 물든 찰나의 시간에 블라인드 너머로 비춘 플라타너스의 실루엣을 찬미합니다.  



 공간과 교감하는 방법이라 하면, 그건 빛을 쫓는 거예요. 계절과 시간에 따라 빛의 방향과 각도가 조금씩 틀어지는 것을 기억하면서요. 오른쪽으로 조각난 무지개 빛의 형상이 보이나요? 벽을 타고 시계방향으로 선회하는 저 빛은 늦여름, 초가을의 해 질 녘을 기억하는 감각으로 각인될 것입니다.



그러다 밤이 내리면 우수에 젖어  베토벤과 브람스, 쇼팽의 악상을 떠올리기도 하고요.




 그 넓은 잎을 바스락이며 푸른 춤을 추던 플라타너스는 농후한 향을 풍기며 시들어갑니다. 가을의 끝자락 무렵이었고, 서점엔 2019년 달력이 나오기 시작했죠. 겨울 코트를 꺼내 입고 차가운 음료수를 마시기에 입안이 살짝 얼얼하다 느껴지는 연말이었습니다.




 어느 날 불현듯 눈이 내렸습니다. 11월이 채 가기도 전이었어요. 플라타너스의 잎이 채 떨어지기도 전 동화 속 풍경을 선사하던 늦가을의 눈. 웬일인지 이른 아침부터 부산을 떨며 스튜디오로 곧장 달려간 아침이었죠.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새해를 맞이했죠.  인쇄된 숫자의 하루 하루를 퍽 희망차게 보낼 수 있을 것만 같던, 장밋빛으로 가득한 새해였다고나 할까요.



 그러는 사이, 아뜰리에는 오고 가는 사람들로 분주합니다. 비록 친애하는 우리의 어시스턴트 미셸과 꼬망은 한옥집을 지키느라 곁에 없지만 열린 방향으로 다양한 작업을 차근차근 쌓기 위한 장場 으로써의 공간이 되었으면 해서요.


2019. 03.31. about 4:35 p.m @SUSTAIN-WORKS


그러는 사이, 아뜰리에는 오고 가는 사람들로 분주합니다. 비록 친애하는 우리의 어시스턴트 미셸과 꼬망은 한옥집을 지키느라 곁에 없지만 열린 방향으로 다양한 작업을 차근차근 쌓기 위한 장場 으로써의 공간이 되었으면 해서요. 



Conceptroom #1


 작업실은 전시 준비로 약간 분주해요. 프린트와 프레임 등을 고심하며 이렇게도 놓아 보고, 저렇게도 바라보느라 말예요. 아! 전시에 대한 이야기는 조만간 소식 드릴게요. 그럼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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