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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stain Life Aug 23. 2023

어느 멋진 일요일

스마클릭




도로 위의 자동차는 느릿느릿 움직이고 거리의 사람들은 할 일을 잊었다. 첨탑 아래 둔탁한 무쇠 종이 운하가 흐르는 작은 도시를 가른다. 청아한 울림이 번진다.


모든 게 평화롭기 만한 일요일이었다. 여독을 풀 새도 없이 우리는 겐트에서 새로 돌아온 한 주를 맞이했다. 정오가 되어갈 무렵 애진은 우리를 작업실로 안내했다. 집으로부터 운하를 가로질러 도보로 10분 남짓한 곳에 자리한 코웍킹 스페이스 Coworking Space 였다. 한 때 섬유 공장이었던 부지라 했다.


유럽의 현대식 공동체 문화를 엿볼 수 있다는 기대감이 앞섰으나 휴일을 맞이한 그곳은 한산하기만 했다. 흡사 폐공장의 아우라를 풍기는 것도 같았다. 그도 잠시, 적막을 비집고 성가대의 우렁찬 가스펠이 적당히 건조하고 적당히 습한 유월의 공기를 가로질렀다. 일요일이 돌아오면 이곳은 아프리칸 커뮤니티가 모이는 예배당으로 변모한다고.



책 작업에 앞서 남편은 애진의 작업실에 깃든 자연광에 적응하기 위해 카메라를 꺼내 들었다. 플래시가 번쩍번쩍 터지자 우르르 창가로 몰린 아이들이 턱을 추켜올리고 손가락을 구부러뜨리며 팔짱을 낀 채 포즈를 취했다. 남편은 그 모습이 익숙한지 웃으며 연신 셔터를 눌렀다. 인도를 여행하며 손에 익은 습관이라 했다. 카메라만 보면 무턱대고 렌즈 앞으로 모여드는 사람들의 눈을 하나씩 맞추다 보면 잃어버린 세계를 들여다보는 것만 같아 마음이 풀어진다 했다. 그렇게 일요일의 아이들은 아무런 대가도, 조건도 없이 마구 다가섰다 불현듯 사라졌다.



그 길로 우리는 겐트 시내로 향했다. 역시나 걷는 편을 택한 것은 겐트에서 수십 년 간 적응해 온 애진의 익숙한 발걸음 때문이다. 이 아름답고 작은 소도시에서 서울의 대중교통을 떠올려선 안된다. 택시는 터무니없이 비싸고 구부정 늘어진 트램과 버스 노선은 비효율적이다. 중심지에서 도시 외곽까지 아우르는 길은 걷는 편이나 버스나 트램을 타고 가는 편이나 별 차이가 없다. 물론 걸어가는 쪽이 칼로리 소모는 크겠지만. 만약 인내심을 타고났다면 트램의 느린 속도감을 즐기는 것도 좋을 것이다.



무엇보다 이방인에게는 걷는 속도를 따라 흐르는 길 위의 풍경이 새롭기만 할 것이다. 울퉁불퉁하고도 닳고 닳은 돌바닥 속에 발자국을 새기며 이따금 자전거가 몰고 오는 미풍을 스쳐간다. 새로 태어난 아이마냥 모든 것이 낯설고 새롭기만 했던 어느 멋진 일요일, 그토록 거리에 자전거 탄 사람들이 많았는지, 자전거 도로가 자동차 도로만큼이나 발달했는지, 매일같이 중심가를 오간 이야기는 차차 풀어나갈 것이다. 이곳의 자전거는 왜 그토록 견고한지도.



북해로 흘러 나가는 운하의 잔잔한 물결이 오래된 이야기를 속삭인다. 용이 입가로 불을 내뿜고 유니콘이 천사의 날개를 펄럭인다. 철갑으로 무장한 기사는 첨탑에 갇힌 공주를 구하기 위해 늙은 나귀와 기약 없는 여정에 오르고, 키가 너무 자라 버렸거나 일찌감치 성장이 멈춰버린 사람들은 곡예사가 되어 팽팽한 밧줄을 아슬아슬 타고 돈다. 운하를 따라 난 저잣거리에선 돼지와 소, 닭이 신선한 고기와 우유, 달걀을 내어주고 어두침침한 귀퉁이에선 반짝이는 소시지가 허공에 대롱대롱 매달려 하루종일 춤을 춘다. 여전히 말이 없는 운하는 맥주 거품 같은 기포를 일렁이며 도시를 감싸 안는다.



시간은 흐르고 공간도 흐른다. 중세를 고스란히 간직한 겐트에선 시간이 멈춰 선 듯한 환상이 종종 발목을 잡아챈다. 그도 잠시, 얼기설기 얽힌 현대 문명이 일상의 감각을 코앞으로 되돌려 놓는다.



어딜 가나 우뚝 솟은 첨탑은 중세의 번영을 기억한다. 그날따라 하늘이 높았던지 첨탑이 닿기엔 터무니없이 낮아 보인다. 첨탑 끝 십자가의 반짝임만이 천국에 도달하겠지.



어느 멋진 일요일에는 온화한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진다. 휴일 탓일까? 햇볕 때문일까? 보탤 것도  것도 없는 온도일까, 습도일까? 아니면 바람일까? 카페 점원은 구슬 같은 땀을 흘리고 사람들은 늘을 찾아 헤맨다. 우리에겐 아직 그럴 여유가 없다. 아마도 중심가에 발길이 서너  닿은 뒤면 어딘지 익숙한 안식처를 찾아 일요일의 사람들처럼 한없이 늘어질 것이다.



쇼윈도 너머의 풍경은 방직기가 쉴 새 없이 돌아가고 온갖 섬유 조직이 기다랗게 늘어진 도시의 번영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 세련된 인테리어와 통통 튀는 패션이 도시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길을 따라 걷기만 해도 아름다운 생활 방식이 몸에 밸 것만 같다.



시간은 오후 네 시를 향해가는 중이다. 어느덧 광장에 다다랐다. 왁자지껄한 군중 틈바구니로 맛있는 연기가 피어오른다. 끼니도 잊은 채 걷기만했더니 허기가 밀려온다.




겐트의 여름 축제가 우리의 여정과 겹쳤다. 여름의 세 번째 절기인 망종 무렵부터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되는 하지까지, 약 2주 동안이다. 일 년 중 낮이 가장 길다는 하지가 도래하면 낮이 밤을 집어삼킬 정도로 환한 대낮이 이어진다. 축제가 종료되는 하지를 기점으로 유럽인들은 산으로 들로 바다로 여름잠을 자러 떠날 것이다.



푸드 트럭을 타고 광장으로 나온 요리사들의 손끝이 분주하다. 단숨에 정성스러운 한 접시가 탄생한다. 모든 것이 초록으로 빛나는 시절. 루꼴라, 강낭콩 줄기, 처빌 등 예쁜 연둣빛이 요리의 화색을 띠게 한다. 모던 퀴진을 표방한 플레이팅이 돋보인다. 재료의 맛과 향이 조화롭다. 자연이 내어주는 본연의 맛으로 회귀하고자 하는 철학은 동시대 식문화를 관통하는 화두임에 틀림없다.



겐트에서 맛본 수많은 음식의 맛과 향이 기억에서 사라진 지금, 바닐라 아이스크림과 지천에 널려있던 딸기, 민트가 담긴  그릇 속에서 그날의 공기와 햇살을 들춘다. 손바닥만  종이 그릇을 이리저리 돌려가며 아이스크림에 파묻힌  조각의 스푼으로    나누어 먹던 다정하고도 달콤한 기억은 시간이 아무리 흐른다 해도 혀끝에 맴돌 것이다.



겐트에 온 지 이틀째 되는 날이었다. 겐트에서 인테리어 감각을 섣불리 뽐내선 안된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 시원한 물이 간절해 한숨 쉬어간 카페에선 무심한 듯 당연하게 놓인 사물들이 모두 제 말을 하고 있었다. 눈에 거슬리는 색이나 불편한 점거가 없다고 할까. 다만 물을 요청했을 때 수돗물을 일상적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 또한 알게 되었다. 겐트 사람들은 페트병의 존재를 다소 불편하게 여기는 듯했다.



배도 두둑해졌고 목도 축였으니 다시 길을 나설 차례다. 도처에 설치된 공공미술은 일상을 환기하는 훌륭한 피사체다. 도시와 공공미술이 이토록 합치된 본보기가 있을까? 누가 만들었는지, 그 의미도 모르겠지만 일단 눈도장을 찍고 본다. 그러면 된 것 아닌가?



광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겐트의 수퍼스타가 있다. 플랑드르의 심장처럼 겐트의 중앙부에 자리한 성 바프 대성당 Sint. Baafs Kathedraal 이다. 제단화를 보기 위해 관광객의 발길이 가장 많이 머무른 공간일 것이다. 성당 뒷편엔 제단화를 그린 반 에이크 형제 Jan Van Eyck 의 청동상이 여름볕을 쬐고 있다. 반 에이크라면 섬세한 필치와 심미안으로 중세 미술에 획을 그은 세밀화의 거장이자 플랑드르 예술의 싹을 틔운 선구자가 아니었던가! 만약 우리가 관광객이었다면 지도앱을 켜고 앞만 바라본 채 대성당을 찾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날은 그저 멋진 일요일이었다. 우리는 스쳐간 곳이 바프 대성당과 반 에이크 형제의 청동상인 줄도 몰랐다. 그저 풍기는 아우라에 뒷걸음치며 셔터를 눌렀을 따름. 데자뷔의 현현은 3년 뒤 다시 겐트를 찾았을 때 이루어진다.  



자꾸만 눈을 끄는 플랑드르의 전통 가옥 파사드, 나른한 테라스와 느지막이 만개한 장미가 여름의 태양 속에 머무른다. 테라스에 앉으면 오래된 벽돌처럼, 희붓해진 테이블 나뭇결처럼, 살갗이 벌겋게 부풀어 오를 것이다. 그러면 나는 한 꺼풀 벗겨진 채 이 오래된 도시처럼 중후한 멋을 풍길 수 있을까?



운하를 따라 집으로 돌아가는 길, 애진의 오랜 친구가 운영하는 키오스크에 들러 목을 축이기로 했다.



내추럴 와인과 진저비어를 사이에 두고 서로에게 조금 더 다가선 시간들.



해가 제법 뉘였 해 질 시간이지만 하지를 향해가는 여름은 물러날 기색이 없다. 태양은 여전히 중천이나 구름이 제법 몰려들었다. 플랑드르의 명물을 들라면 나는 단연코 구름을 꼽을 것이다. 그리고 들풀. 그다음은 조금 더 생각을 이어간 뒤에 정리해 보도록 하자.



어느덧 도착한 애진과 시오엔의 .  2 동안 우리 집이기도 하다. 집주인이 "Mi Casa es Su Casa" 환영의 인사를 건네주었으니. 애진의 주방 벽에 매달린 오징어마름모꼴로 조각난 빛이 들면 으레 저녁을 차린다.



애진은 신경성 위염으로 꽉 막힌 나날을 인내 중인 나를 위해 채소 요리를 준비했다. 유럽의 신선한 제철 식재료를 다듬고 굽고 접시에 담으며 밥상머리를 나누던 순간의 시작.



호시절을 타고 가만히 아름다운 뒷마당이 우리의 식탁이다. 우리는 애진을 향해 외쳤다. 잘 먹겠습니다! 일요일이 저물고 있었다.


스마클릭, smakelijk!





- 'Mi Casa es Su Casa' , 스페인어로 직역하면 '나의 집은 너의 집' 이라는 뜻이다. 자신의 집에 머무르는 손님에게 편히 머무르라는 관용적 표현이다. 흔히 하는 말로 '내 집 처럼 편하게 머물다 가세요' 정도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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