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9.02 발췌
어린 시절에 내가 지켜본 이웃 상점 주인들의 삶은 근면하다거나 성실하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민망할 정도였다. 그들이 아침에 가게 문을 여는 광경은 일출처럼 당연했다. 그러니 어머니가 평생 만든 단팥죽과 팥빙수의 양이 얼마나 될지는 상상조차 못하겠다. 그 그릇들을 쌓는다면, 아마도 꽤 높은 탑이 되리라. 내가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 된다고 한들, 그 탑 아래에서는 고개를 숙여야만 하겠지. (P.17)
“베로니카의 이메일을 알려주지. 하지만 내가 알려줬다는 걸 말해서는 안돼. 뒷수습하느라 생고생하게 될 거야. 지혜로운 세 마리 원숭이의 교훈을 기억하라고. 눈을 감고, 귀를 막고, 입을 다물어라.”,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세상의 지혜란 마음의 평온을 찾게 하고 삶의 진실을 직시하게 만드는 데 목적이 있을 것이다. 그렇긴 해도 피할 수 있는 생고생을 미연에 방지하게 만드는 데에도 어느 정도 목적은 있을 것이다. 피할 수 있는 생고생의 본질을 가장 잘 설명하는 사자성어는 ‘견물생심’이다. (P.39)
(보고 듣고 느끼는 사람 + 그에게 없는 것) / 세상의 갖은 방해 =생고생(하는 이야기)
어쨌든 결말은 해피엔딩이 아니면 새드엔딩이다. 원하는 걸 가지거나, 가지지 못하거나. 그게 해피엔딩이든 새드엔딩이든 엔딩이 찾아오면 이야기는 완성된다. 이야기는 등장인물이 원하는 걸 얻는지 얻지 않는지에 대해선 신경 쓰지 않는다. 인생 역시 이야기라면 마찬가지리라. 이 인생은 나의 성공과 실패에는 관심이 없다. 대신에 얼마나 대단한 걸 원했는가, 그래서 얼마만큼 자신의 삶을 생생하게 느꼈으며 또 무엇을 배웠는가, 그래서 거기에는 어떤 이야기가 담겼는가, 다만 그런 질문만이 중요할 것이다. (P.41)
나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것이 나를 가장 힘들게 한다는 진리를 깨닫게 됐다. (P.45)
이 모든 생고생이 내게 없는 것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니라 나의 장점, 내가 사랑하는 것들 때문에 생긴다는 걸 아는 순간, 구멍에 불과했던 단순한 욕망은 아름다운 고리의 모양을 지닌 복잡한 동기가 된다. 내가 사랑하는 것이 이 인생을 이끌 때, 이야기는 정교해지고 깊어진다. (P.47)
마흔 살이 넘어도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고, 또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건 무슨 바람이나 신념 같은 게 아니라 과학적 사실에서 나오는 말이다. 뇌과학에는 반복된 경험이 뇌의 구조를 바꾼다는 사실을 가리키는 ‘신경가소성’이라는 용어가 있다. 반복하면 할수록 뇌의 구조가 바뀌기 때문에 어떤 일을 계속 연습하면 사람이 달라진다는 사실은 20세기 후반에야 비로소 과학적으로 확인됐다. (P.119)
현실에서도 마찬가지다. 나이가 만든 적든 그 사람이 하는 말과 행동과 표정과 몸짓이 바로 그의 세계관이다. 다시 말해서 말과 행동과 표정과 몸짓이 바뀌면 그의 세계관도 바뀐다. ‘신경가소성’이 뜻하는 게 바로 이것이다. 생각만 바뀌는 건 무의미 하다. 말과 행동과 표정과 몸짓이 바뀌어야 한다. (P.121)
2012년 여름에 펴낸 산문집 『지지 않는다는 말』 에서 나는 ‘가장 건강한 마음이란 쉽게 상처받는 마음’이라고 썼다. (P.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