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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사에 Oct 17. 2019

이젠 나를 뭐라고 소개해야 될지 모르겠는데

2019.10.17

카페에 가서 무엇을 먹을까 고민하게 되는 때가 있다. 평소 같으면 아이스 아메리카노일 텐데 오늘따라 커피도 많이 마셨고, 신메뉴는 많은데 이름을 아무리 봐도 저 메뉴가 뭔지 감이 확 오지 않는다.

화장실 한번 다녀오니 내가 뭘 시켰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럴 땐 진동벨만 쳐다보고 있을 수밖에 없다. '뭘 시켰더라..'  또는 '아.. 설마 그거 시켰었나? 다른 거 먹고 싶은데..' 하는 약간의 조바심으로.

그러니까 요지는 지금의 내가 처한 시기는 진동벨을 쳐다보고 있는 시간과 같다는 것이다. 살짝 두근거리면서도 살짝 걱정스러운 그런. 무엇을 봐도 확 와 닿지 않는 메뉴판들은 지금 뒤적거리고 있는 구직 사이트와도 같다. 무슨 일을 해야 할지도 무슨 일이 하고 싶은지도 확신이 서질 않는다.


하지만 금방 이런 붕 뜬 시기도 지나고 현실에 의해 조금씩 결정이란 걸 내리지 않으면 안 되는 시기가 오겠지. 나온 커피가 아메리카노건 뭔지 모르겠는 메뉴건 진동벨이 울린 이상 받아온 나는

'아 이거였구나..' 하고 대충 만족하며 마실 테니까.

기다리는 시간

 "이젠 나를 누구라고 소개할지 모르겠어."


20 초반에 나는 영화학과 학생이라는 것이 정말이지 싫었다.'평범한 대학 생활 나도 하고 싶어...'  평범함이라는 단어의 실체 없음을 알았더라면 내가 가진 것에 더 감사할 수 있었을까.


 20 초반의 나는 고등학교 동창과 만나 술을 마실 때면, 처음 만난 사람과 전혀 다른 사람인  스스로를 소개하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나는 갓 대학에 입학한, 음악교육학을 전공하고 피아노를 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다. 거친 일 하나 없이 자란 청순하고 바른 이미지의 여자가 되고 싶다고 이야기했다.(혹시라도 음악교육학을 전공하고 피아노를 치시는 전공을 가지신 분들에게 20 초반의 저의 일반화를 진심으로 진지하게 사과드립니다)


 친구는 쿨한 외국파 요가 선생님이라고 자기를 소개하고 싶다길래 제니퍼 강이라고 이름을 붙여주고 서로 깔깔대며 놀았다. 지금 글로 옮기니 하나도 재미없다만. 다른 사람이 되고 싶다며 웃던 우리가 설정한 다른 자아는 우리 안의 부족을 보여주는 것이었겠지.


그때 한동안 건축학 개론의 수지가 뜨던 시기라 더더욱 생머리에 품에 책을 안고 다니는 그런 여대생이 되고 싶었던  같기도 하고. (어린 시절의 일반화 죄송합니다) 이렇게나 일반화 일반화에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하고 괄호 속에서 고개를 숙이는 것은 나도 전공 덕에 듣는 일반화에 입각한 개소리가 많았기 때문이다. 누구나 이런 비애는 있다. 심리학과 나오면 점집 차리는 거냐고 묻고 국어국문학과를 나오면 시를 써달라하는 그런.


요즘 20 초반의 친구와 나눴던 이야기를 생각하곤 한다. 지금 내가 누구든   있다면 나를 누구라고 소개하고 싶은 걸까. 해외파 요가 선생님 제니퍼 ? 첫사랑 수지를 닮은  머리 여대생?


내가 진로를 두고 고민할 때마다 이상하게 반복해서 듣게 되는 충고가 있는데 그중 몇몇 사람의 입을 빌리자면 

"그럴 때 일 수록 더 어깨를 펴고 네가 전문가 된 것처럼 1-2년만 살아보는 거야. 오히려 더."  
-먹여주고 재워주는 언니
"저는 졸업을 하자마자 스스로를 영화감독이라고 소개했어요."-스승님
"네가 아무것도 아니라니, 그냥 감독이라고 소개하면  되는 거야?  찍고 있잖아? 감독이  대단한  해야 감독인  아니잖아." -요술공주


 친구가 제니퍼 강이 되고  시절의 내가 피아노 수지가   있다면 지금의 나는 나를 누구라고 소개하고 싶은 것일까.


스스로의 것으로 뭔가를 해내고 마무리짓고 인정받은 사람이 되고 싶다. 어릴 때부터  변하지 않는 꿈이 있다. 드레스를 입는 사람이 되는 . 사람들에게 환하게 인사하는 . 진정으로 감사를 표하는 . 조금 추앙받는 . 유치하다.


결국 아이돌이 되고 싶은  아닌가. 이런 생각으로 그런 꿈을  밖에 내지도 않고 자세한 꿈을 꾸지도 않았다. 그러다 보니 꿈은 계속 맴도는데 방법을 전혀 생각하지 않은 채로 수많은 시간이 지나버렸다.


 누군가 나에게 "사에 씨는 어릴 적부터 멋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이젠 그걸 부정하지 않았으면 좋겠어."라고 이야기했다.  말이 그렇게 아프고 감동적일  없었다.


지금 누군가 묻는다면 "저는 멋있고 실력 있는 내 것을 하는 사람입니다." 이렇게 소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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