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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사에 Oct 30. 2019

야 그 이상한 선배가 시집을 냈대.

하는 사람이 이기는 법이다. 그래서 이기기 어렵다.

2019.10.30


첫인상은 좋았는데 두번째 인상부터 지금까지 인상이 쭉 안좋은 선배가 있었다. 그 선배를 피하고 싶은 데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었는데, 아무튼 피하고 싶어서 피했더니 쭉 피해졌다. 정말 다행이다.


나에게 그 선배와의 기억은 1학년 때 머물러 있는데, 어느덧 시간이 흘러 내가 졸업을 하고 나서 얼마전 그 분이 시집을 냈다는 소식을 들었다. 내 머릿속에는 조금 마초적인 이미지로 남아있는 그분이 전혀 쌩뚱맞게 시를 쓰셔서 책으로 내셨다는 소식에 나는 마시고 있던 커피를 내려놓고 한참을 웃었다.


하는 사람이 이기는 법이다.
그래서 이기기 어렵다.


취향이 밥먹여주지 않는다는 것을 어떨 땐 지독히도 모른다. 어떤 감독이 좋아서, 어떤 가수가 좋아서 어떤 작품이 나를 대변해주는 것 처럼 살아질 때가 있다.


결국 시간이 지나서도 창작을 하고 싶다면  누구에게도  어떤 취향에도 기대지 않고, 내가 무엇을 말하고 썼는지가 중요한 것이라는 사실이 무섭게 뒷통수를 때릴 때가 온다.


그래서 넌 뭘 했는데? 너 그사람 알아? 아니, 그사람도 널 알아?


좋은 취향을 가지고 있는 것이 커다란 장점이라고 생각했던 나는 짜치는 것과 짜치지 않는것, 뻔한 것과 뻔하지 않은 것을 구분하면서 내가 뭐라도 된 것처럼 내심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남들의 시나리오를 봐줄 때마다 누구보다 열심히 뜯어보고 조언해줬다.


내가 좋은 취향을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 한들 그것이 무슨 소용이랴. 좋은 취향을 가지고 무엇이 짜치고 무엇을 바꾸면 나아질지 안다고 한들 자기 것을 하지 않으면. 남이 차려놓은 상이 아무리 부실하다해도 상 주인은 칼같이 겸상을 허락하지 않는다. 오직 자기 상에만 감놔라 대추놔라 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 선배가 시집을 낸 것을 가지고 웃던 나는 학생일 때와는 달리  금세 비참해졌다.

그 사람이 자비를 들여 시집을 계속내고 시를 계속 쓰다보면 시인이 되는거야.
적어도 어디가서 시인입니다. 하고 시집을 들이밀 순 있겠지.
그런 사람을 비웃는 나는 나를 누구라고 소개할 수 있는데?

 

계속 만들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서 가끔 비참해지고 가끔  취향 얘기에 들뜨다가 또 다시 비참해지고 다급해진다면 만드는 것 외에는 그 감정에서 벗어날 길은 없다. 하는 사람은 결국 만드는 사람이 되는 법이기에.


내가 가진 무기는 도대체 무엇일까

어렵다. 이기기.


I think Meredith and Christina, they are doers.  They do, we watch. We are watc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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