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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사에 Jun 10. 2020

Man in the Arena

그래도 좋아서 네가 선택한 거잖아

2020.06.10

더 알고싶다면 ted의  man in the arena 에피소드를 보시길

 아레나 안에서 목숨을 걸고 경기를 하는 사람을 보면서 사람들은 원형 경기장 안에 둘러앉아 환호한다. 그리고 평론가들은 그 사람이 어떻게 걸려 넘어졌는지, 어떻게 하면 더 나았을지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런 말들은 유효하지 않다. 피와 땀이 범벅되어 실수와 수많은 결점들을 가지고 아레나 안에 서있는 사람에게 모든 공은 돌아간다.

 


밥먹듯이 하던 말, 영화는 타의다. 누군가 시켜줘야 할 수 있어. 투자해줘야, 이 개인적인 마음들을 이해해줘야..

스태프들이 모여줘야, 관객들이 좋아해 줘야.

결국 돈이 되어야.

그것이 결국 내 인생에까지 적용되었다.


 큰 외국계 홍보팀의 최종면접까지 간 적 있다. 처음으로 컴싸 양복을 빌려 입고 문과생들과 다대다 면접을 봤다. 나는 정말이지 감탄했다. 이런 교과서 같은 스펙과 답변 방식을 가진 사람들이 실존하는구나. 문과가 쌓을 수 있는 모든 스펙을 쌓아온 면접자들을 보자니 내가 한심해 보이면서도 나중엔 그냥 대견하다 해주기로 했다.

 ‘도대체 나 여기 어떻게 온 거지? 장.. 하네’

그들이 존경스러웠다. h라인 치마에 꼬질꼬질한 슈퍼스타를 꾸겨신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나의 쪼개진 자아를 보며 생각했다. 예전엔 진짜 나라고 생각하는 내 모습을 숨기고 사회에 적응하려고 하는 것이 슬펐다. 하지만 이제는 슬퍼할 여유도 없었다.


이와 같은 맥락으로 하고 싶은 일과 할 수 있는 일 사이의 괴리가 너무 커서 고민이라고 이야기하자 내 친구는 내게 말했다.

“나는 네가 너를 돌봐주고 있는 거라고 생각해. 하고 싶은 것이 있는 너를 사회에서 멀어지지 않고 어떻게든 먹여 살리려고 하는 거라고 생각해.”


 내가 생각한 나의 아레나는 이런 곳이 아니었다. 열심히 영화 찍던 시절의 나는 아레나에 있었다. 지금은 모두가 긴 싸움에 질리고 지쳐서 관객들이 반쯤 빠져나가버린 경기장에서 전투도, 콩트도 아닌 그 중간쯤의 허술한 것을 팔고 있는 느낌이다. 피 냄새 땀냄새와 죽을지도 모른다는 그런 두려움이 닥칠 때는 그것을 피하고 싶다 그것을 피하는 것이 오롯한 목표가 된다. 그것이 사라지자 나는 내가 누구인지 모르겠다고 생각한다. 요즘 나는 남이 싸우는 전투에 몇 마디 혀만 얹는 그런 평론가까지 되려고한다. 정신 차리자는 의미로 Arena가 들어가는 문구를 타투로 세길까 정말 고민한다.



 수도 없이 고민한다 수도 없이 억울하고 수도 없이 즐겁다가 슬퍼 미칠 것 같고 이런 생각을 계속하는 일이 이기적인 것 같고 열심히 창의적인 일을 하는 것이 창피하다. 그렇게 살던 와중에 요전에도 들었다.

“그래도 네가 좋아서 선택한거잖아? 이럴 줄 몰랐던 것 아니잖아.”

“통폐합을 당했든 아니든 나였다면 그냥 내 갈 길 갔을 것 같은데?”

“예전엔 영화가 그냥 좋아서 만들었다면 이젠 공모전에 내든지 눈에 보이는 결과를 만들어야되는거 아니야?”

-내 싸움도 존중해줘.


 친한 언니가 오랫동안 프리랜서로 일한 작가를 만났다고 했다. 그가 불안한 삶에 대해 이야기하자 언니는 ‘그래도 선택하신 거잖아요?’라고 이야기했다고 한다. 그러자 그는 얼굴이 질려버리더니 곧 자리를 나가버렸다고 한다.


 나도 20대가 지나고 나서도 얼굴이 질려버릴까. 작가나 감독이 아니고서야 나를 설명할 말이 없을 때에도 나를 소개하고 불편해할까. 좋아서 한 선택이라는 말은 괴롭고 불안해하는 나를 탓하게 만든다. 조금은 이기적인 일 그리고 조금은 이타적인 일을 하는 사람. 숨쉬 듯, 어쩔 수 없어서 하는 창작이라는 활동. 선택이라면 선택이지만 선택이 아니라면 또 선택이 아닌 일.

내 싸움도 존중해줘!!

 박신양의 배우 학교라는 프로그램을 보면 여러 사람들을 모아놓고 신체훈련을 시킨다. 말도 안 되는 운동량에 다들 아휴 아오! 하면서 힘들어하자 트레이너가 말한다. “아.. 힘들다 힘들다 하시는데 (머쓱 이걸 머라고 하지 왜 이걸 모르지? 하는 톤으로) 힘든 건 당연한 거거든요? 뛰세요!” 그 말이 그렇게 위로가 됐다. 내가 나라서, 이런저런 길을 밟아와서 힘든 것이 아니다. 누구의 싸움이든간에 그것은 힘들다. 그것이 당연하다. 뛰자.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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