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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사에 Aug 28. 2020

사에에게

너는 누구

2020.8.28

아이돌을 좋아하지 못하던 십대


 내가 한창 사춘기를 지나며 나뿐만 아니고 모두가 예민하고 한편으론 해맑던 시절 나는 하필 여중을 다녔다.

그땐 빅뱅이 한창 난리였는데 빅뱅을 좋아하지 않으면 대화에 끼기 어려울 때도 많았다. 나도 지드래곤을 좋아했다. 하지만 팬클럽에 가입하거나 하지는 않았고 가끔 앨범을 사거나 그가 나온 프로그램을 챙겨보는 정도였다.연예인마저도 티 내면서 좋아하지 못하고 마음에 꽁꽁 숨겨놓았다. 무언가를 좋아한다는 것은 여전히 나에겐 자존심 문제로 귀결된다



 공책을 빽빽하게 채우며 아이돌의 이름으로 깜지를 쓰거나 그의 생일을 축하한다고 사부작 거리면서 무언가를 만드는 정성을 이해할  없었다. 사랑한다는 말을 하기에는 무대 뒤의 그들을 너무 모른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고, 무엇보다 그들이 나를 모른다는 사실이 가장 마음에 걸렸다. 상상 속에서 너무 멋진 그들이 나라는 사람을 좋아해 주는 것이 주된 판타지였는데 그것은 현실 가능성이 없어 어린 감성으로 유지되다가도 시들해지기 마련이었다.



  영화를 만들면서 사람들이 내 영화를 보고 나의 감성, 나의 생각에 공감하며 나를 정말 좋고 멋진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만들고 싶었다. 그리고 내가 잘 만들기만 하면 그렇게 되리라 생각해서 나를 갈아 넣었다. 하지만 머릿속에 있는 것을 현실로 꺼낸다는 것은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지 간에 살면서 자주 이뤄낼 수 없는 것이다. 사람들이 내 생각에 공감하고 그렇기 때문에 나를 그들의 아이돌로 생각하게 만들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그것을 꽤나 긴 시간 동안 몰랐던 내가 신기하다. 어디서 그런 자신감이 나온 거지. 세상이 내 편으로 돌아가고 노력하면 보상받으리란 생각이 있었던 시기의 나는 낯설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다.


 

 칭찬을  받아들이지 않고 누군가 나에게 공감할 것이라는 확신을 버리면서 나는 시무룩해져 갔다. 멀리서 보면 드라이한 인간처럼 보이고 실제로 그렇기도 하지만 결국 나는 내가 시무룩해진 것일 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무언가에 진지한 내가 너무 싫다. 신변잡기적인 이야기를 하다가도 예술 이야기만 나오면 눈을 빛내면서 글을 보여주고 싶어 하고 뭔가를 만들고 싶어 하는 나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러면 사람들은 나의 이야기만 듣고 내가 뭐라도  해낼 사람처럼 생각한다. 나는 결국 입만 터는 인간이 아닌가 하고 자괴감을 느낀다.  사람들이 나의 빛나는 눈을 보고 같이 반짝반짝 눈에 빛을 내면 나는 절대 그들에게  작품을 보여줄  없으리라 은연중에 생각하곤 한다. 사에는 그러니까 나는 가끔은 정말이지 속이  강정이라는 생각을 떨칠  없다.



 요즘 나는 사에에게 차분차분 따스한 위로를 건네야 할지 조금 더 매서운 목소리로 잘 해왔으니 그대로 가라고 다그쳐야 할지, 아니면 가고 싶은 대학을 갈 수 없다는 이야기를 꺼내는 담임 선생님처럼 차분한 목소리로 네가 하는 것을 보면 아이돌은 될 수 없다고 일러줘야 하는지 알 수가 없다.

 

'사에는 아이돌이 될 수 있을까. 사에가 꼭 그렇게 될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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