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빈 옆자리에 앉아주던
2021.01.13
2020은 여러모로 불안으로 요동쳤지만 그와는 반대로 잔인하리만치 변화없는 하루의 패턴 속에 살았다. 하지만 그와중에 여러가지 변화를 맞이하는 복잡한 해였다. 조금 특이한 점은 조급한 일이 있을 때 마다 꿈을 꾸었다는 점인데, 그 꿈에서 보는 세계가 마치 전에 꾸었던 세계와 이어지는 듯한 느낌을 준다는 것이다.
꿈 속에서 어떤 골목을 돌아서면 마주하는 동네가 전에 꿈에서 봤던 동네일 때가 많았는데 그 동네는 한옥이 많고 벽돌들이 아주 짙은 붉은색이다. 항상 어느 높은 골짜기를 넘어서야 내가 가야할 곳에 도착했고 그 골짜기는 너무 멀고 높았지만 그 길이 힘들지 알면서도 나는 항상 길을 떠났다.
어느 날은 비가 오고 난 뒤 처마 밑으로 물방울이 뚝뚝 떨어지는 어둡고 습한 학교에서 누군가에게 쫓기며 뛰어다녀야 했다. 꿈들의 공통점은 그 속에서 아무리 걸어도 걸어도 뛰어도 뛰어도 거리가 좁혀지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내가 목표한 곳에 가는 결말을 보지 못하고 깨버린다는 점도. 항상 공사중이거나 눈이 많이 와 버스가 가지않는다거나 그런 식이었다.
어제도 학교가 꿈에 등장했다. 길을 헤매다가 친구들에게 뒤쳐진 나는 아무리 달려도 가까워지지 않는 복도를 뛰듯이 걷다가 마침내 친구들을 발견했다. 친구들은 복도에 모여서 무언가를 골똘히 토론하고 있었다. 드디어 따라잡았다는 안도감과 반가운 마음에 어색하게 안녕이라고 인사를 건넸지만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았다.
누가 저 안에 들어갈까, 그러니 누구와 함께 놀까를 정하는 토론이었는데, 인사도 받아주지 않는 친구들이라니..나는 저 안에 들어가긴 글렀네 라고 생각하고 가만히 그 대화가 끝나길 기다리기로 했다.
내 이름이 불리지 않아도 조금 덜 민망하고 덜 속상하게 지금부터 존재를 지우고 그림자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익숙하지 이런 상황..상..처..받지 ㅁrㄹ..ㅈr... 가만히 듣고 있자니 그들은 나름대로 결론에 도달한 것 같았다. 이케아에서 산 아이 장난감 같은 화이트보드에 사람들 이름이 적혀있었는데 놀랍게도 거기에 내 이름이 써있었다. 유난떨지 않아도 당연히 거기에 있을 사람이었다는 듯이.
첫화부터 이 시리즈를 읽었을 사람이 몇이나 될지는 모르겠지만, 졸업하고 방황하는 과정을 그리며 시작한 나의 이야기에 이제는 어느정도 결말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2021이 되었으니 글을 쓰자고 다짐한 것도 그덕이다. 생각보다 취직의 과정이 암울하진 않았다. 걱정했던 대기업은 서류통과가 어렵지 않았고(코시국 전에는 말이다. 그 후로는 내가 공백기간이 길어져서인지 미디어를 포함한 모든 계열의 취업문이 바늘구멍보다 작아져서인지는 알 수 없다. 그 알 수 없음이 정말 힘들다.)
유튜브를 운영하는 그래도 이름을 한번 쯤 들어본 기업들에서는 몇번 합격 통보를 받았다. 하지만 그들은 대부분 1인이 기획 부터 촬영 편집까지 도맡길 바라는 (말도 안되지만 그들에겐 말이 되는 그런 )곳들이었고 주말 출근, 야근 필수가 당연한 업계였다.
또 한곳은 출근 전날 갑질 논란과 임금체불로 부도에 직면한 곳이었다는 것을 우연한 기회에 알게되었다. 그 과정을 겪다보니 애초에 영상을 업으로 삼고 싶지 않았던 나는 좌절에 빠졌다. 연락 오는 곳은 영상업계인데 그 실상이 너무해서 영상을 하고싶지 않다. 하지만 그렇지 않고선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그 부도가 난 회사의 출근을 하지 않기로 결정하고 난 다음날 아침에 침대에서 일어나는데, 너무 상쾌한 기분이 들었다. 지금 당장 나는 워홀을 떠날 수도 있고 봉사를 가거나 여행을 떠나 사진을 찍고 돌아올 수도 있으며 뜬금없는 다른 무언가를 시작할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행복해서 가슴이 마구마구 뛰었다. 하지만 그 설렘들을 다 뒤로 하고 꽤나 오랜 시간동안 대기업 서류를 몇번 내고 떨어졌으며, 취소된 전형들은 다시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음에도 스펙과 자격증을 띄엄띄엄 준비하다보니 새해가 되었다.
누가 봐준다고 생각할 때 더 열심히 뭔가를 하고 싶다. 그래서 내가 세상에 내놓을 무언가를 더 윤이 나도록 닦는다. 한동안 영화를 보여주고 싶어 미친 듯이 나를 갈아넣으며 영화를 찍다가 보여주고 싶은 사람이 사라지자 나는 갈 길을 잃었다. 시간이 지나 도대체 그 사람들은 나에게 무엇이었는지에 대해 고민했다. 더 많은 시간이 지나고 나자 그들은 내가 인정받고 싶으며 사실은 이기고 싶은 존재들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런 대상들의 허황됨을 깨닫고 나니 공허했다. 나를 위해 만드는 작품들은 재미있었지만 그렇기에 어떠한 코멘트도 필요없었고 인정이나 칭찬도 공감에 대한 감사라기 보단 (개같이) 힘든 과정에 대한 보상으로 다가왔다. 그 보상이 잘 주어지지 않으니 뭐를 만든다는 것은 가성비 떨어지는 일이었다. 나를 위해 찍는다더니 나를 갉아내면서 가성비 마저없는 것은 도대체 무슨 모순인가.
학교를 졸업하고 나니 나의 관객들은 전혀 다른 사람들이 되었다. 생면부지 나를 모르는 사람들이 나를 찾아와주는 것이 소수일지라도 깜짝깜짝 놀랄 정도로 나를 행복하게 했다. 인정받기 위해, 누군가를 짓누르기 위해 꾸며대던 알량한 자존심과 도발심이 없어지고 나니 이야기하고 싶은 것들이 달라졌다. 감추고 싶은 나나 드러내고 싶은 나로 인해 시작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닌, 지금 두발로 혼자 서있는 나로부터 시작되는 이야기를 하고싶어졌다.
코시국이 계획들을 꺾어버리고 안겨준 기나긴 시간들이 무언가를 쌓긴 쌓았다 그런 생각을 한다. 사람은 간사하다. 나는 간사하다. 보여주고 싶고 인정받고 싶은 사람들이 사라져 영화를 잠시 그만두겠다고 마음 먹고선 다음에도 그 다음에도 울면서 영화를 찍었던 그 시절처럼 며칠 뒤, 칠판에 내 이름이 없다해도 간사한 나는 시간이 지나 또 무언가를 만들고 쓸 궁리를 할 것이다.
진심을 발견하기 어려운 세상에서, 그리고 이 정보의 바다 인터넷에 떠돌고 있는 나의 글에서 당신에게 와닿는 어떤 진심을 발견했다면 그건 우연이 아닐 것이다. 그러니 앞으로의 내 이야기에서도 무언가를 발견하게 하기 위해 노력하겠다. 2021의 추상적이지만 견고한 다짐이다.
끝까지 읽어주신 분, 다 표현하지 못하지만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