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사에 Feb 03. 2021

아주 거대한 허무

그리고 아주 거대한 방어기제

2021.02.03

너는 방어하는 사람을 성숙하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총구를 겨눈 사람에게 나를 쏘라고 말하는 이는 진정으로 성숙한가. 단지 삶에 대한 의욕이 적을 뿐 아닌가. 이렇든 저렇든 상관없다는 태도는 방어적이다. 너는 안 풀리는 삶을 방어하기 위해 죽음을 긍정하기까지 이르렀다. 이것은 구석에 몰린 너를 동정하면서도 탓하는 이야기이다. -2019, 김사에


 유리 멘탈, 개복치라는 단어가 유행하던 시절, 그것이 그저 웃긴 비유가 아니라 나를 설명하는 적절한 단어라 느껴져 상처 받은 적이 있다. 금방 죽어버리는 개복치를 유머로 소비하다가도 '쉽게 충격받고 죽음'은 아주 슬프고 기괴한 일이란 생각을 곧잘 했다. 생명의 죽음 앞에서도 나약함을 비웃으며 유머를 찾는 사람들(나포함)의 사고 회로가 이 세상의 생리를 대변하는 것 같았다. 사실 개복치 게임은 하이퍼 리얼리즘이었던 것이다. (궁금해서 조사해본 결과 개복치는 그렇게 쉽게 죽지 않는다고 한다) "나는 개복치야.." 하면서 자조 섞인 웃음을 짓던 나는 어느새 시간이 지나 "아님 말고."를 입에 달고 사는 무심한 사람이 되어있었다. 단단해진 건가하고 생각했는데 글쎄, 그건 아주 큰 허무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길다면 긴 시간 동안 이력서를 내면서 가장 두려웠던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붙으면 어떡하지?'였다. 항상 입에 달고 살던 말들. "붙어도 문제야." 실제로 한 콘텐츠 회사에 최종 합격을 하고서 침대에 누워서 든 감정은 아주 커다란 허무였다. 그것은 죽음을 생각하게 했다기 보단, 항상 느껴오던 삶의 허무함에 대해 바닥까지 들여다보게 했다.

홍보실에 들어가서 전자제품 홍보를 하는 사람이 되면, 그다음엔? 콘텐츠를 만들게되면 그다음엔? 영화사에 들어가서 배급을 하면 그다음엔? 결혼을 하고 나이가 들면 그다음엔? 나는 누구지.

 

 합격 전화가 오기 전, 나는 인터네셔널 잡 사이트를 보고 있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여기서 일을 하고 싶다면 워킹비자 정도는 알아서 준비해 와. 이런류의 공고가 많았다. 그중, 숙식을 제공해주는 대신 저널리즘 포토그래피를 찍어줄 사람을 찾는 봉사 공고가 눈에 띄었다. 워킹 비자도 필요 없었다. 자세한 것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아마 네팔로 갈 수도 있었고 아프리카로 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태생이 의심 많은 나는 우선 봉사라는 것이 미심쩍었고 숙식도 불안했으며 모든 것을 버리고 대자연의 나라들로 떠나기엔 큰 두려움이 따랐다.

 

 그리고 그다음 날, 면접을 본 회사로부터 전화가 왔다. 아주 불친절하고 퉁명스럽게 월요일부터 출근하라는 말을 전했다. 자려고 누우니 잠이 오질 않았다.

'나는 이제 나를 소개할 때, 유튜브 편집자가 되는 걸까? 그것도 사람들이 잘 모르는 채널의.'

내가 무언가를 만든답시고,  내 자아를 너무 크게 부풀리기만 했을까. 왜 이리 허무하고 슬플까.

 (*유튜브 콘텐츠 만드는 회사들, 크리에이터들은 엄청 대단한 사람들이다. 아주 가까이서 지켜봤고 콘텐츠 제작 과정을 꿰고 있는 나는 그 노고와 창의성의 대단함을 잘 안다. 그들의 업과 노력을 비하하고자 하는 뜻이 아님을 밝힌다. )


싱숭생숭 이상한 기분에 연봉을 다시 확인하러 회사 이름을 쳐보니 그땐 보이지 않았던 부도 기사를 발견할 수 있었고, 내부 사정이 심각함을 알게 되었다. 그다음 날 나는 회사에 출근하지 않겠다고 통보했다. 부도날 회사가 아니면 나를 뽑지 않는 걸까? 괜히 자존감에 스크레치가 그어져 그날은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있었다. 출근이 예정됐던 날 눈을 뜨니, 내가 네팔로 떠날 수도 있고 사촌이 있는 뉴질랜드에 몇 달을 가있거나, 아주 새로운 뜬금없는 것들을 시작할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기뻐 말 그대로 침대 위에서 방방 뛰었다.


 하지만 코로나가 없었던 시대였음에도 불구하고 난 어디로도 떠나지 않았다. (바보)


내가 오래전 연출한 마지막 영화에서 나는 아직도 벗어나지 못한 기분이다.

 미군과 결혼한 이모가 있는 지희. 하지만 이모와 엄마는 사이가 좋지 않아 소식을 모르고 산지 오래다. 미대생인 지희는 졸업작품 준비에 큰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작년에 졸업했어야 했지만, 졸업작품 대행을 맡긴 것이 들통나 대내외적으로 큰 이슈가 되고 졸업이 유예됐기 때문.
 
하지만 취업준비에 바쁜 지희는 그림을 그릴 자신이 없다. 어느 날 지희에게 이모의 음성 메세지가 날라온다. 엄마에게 전화했지만 받지 않아 지희에게 메시지를 남긴다는 내용.

 미군부대의 간부가 된 이모부의 이야기에 따르면 며칠 뒤 북한과의 큰 전쟁이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한국에 있던 이모도 식구를 데리고 다시 미국에 돌아간다고 한다. 지희는 이 이야기를 가족들에게 전하지만 모두가 허무한 농담이라고 생각하고 만다. 하지만 지희만은 묘한 희망을 느끼고 그 날을 기다린다.

 아이러니하고 복잡한 지희를 그리고 공감할 때가 까마득히  시절의 이야기라고 느낄 때가 있었다. 하지만 나는 요즘 그녀로 다시 살아가는  같다. 지희는 사실 대충 그려내면  작품을 제대로 그리고 싶어 졸업 유예마저 당했다. 그러고도 그녀는  그리고 싶기에 그림을 그리고 싶지 않다. 그래서 자꾸만 이상한 일들을 행한다.


 나도 어느 회사든 이력서를  내보면  텐데 그렇게 내고 나면  면접에 가서 죽을 상이 된다. 어제도 광화문 한복판에서 추운 날씨에 살색 스타킹을 신고 미용실에서  올림머리에, 컴싸 양복을 입은 여자를 보았다. 그녀가 평소에 구두를  신지 않는 것이 표가 났다. 가만히 서있는 발이  때문에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금세 숨이 막혀 울고 싶은 기분이 되었다.

 

나의 첫 컴싸 양복 체험기
https://brunch.co.kr/@sa00ehkim/10

 
 코로나가 가져온 불확실의 시대가 마치 이모의 메시지라도 된 듯, 일자리를 구하기도 힘들고 언제 잘릴지도 모르는 시대에 내가 하고 싶은 것 조금 더 해보면 되지 않을까?라며 묘한 희망을 갖는다. (그것은 현재의 묘한 절망에서 비롯된 것이다)


현재


 지희는 결국 대행을 맡기지 못해 다른 학교 사람들의 작품을 베껴 아이디어를 도용하기로 마음먹는다. 지금의 나는 아주 커다란 위험을 감수하고 아무런 결과도 보장되지 않지만, 그냥 그리고 싶은 그림을 그릴까. 아니면 할 수 없을 것 같은 일에 정성을 쏟고 싶지 않아, 그런 마음들을 피하는 데에 정성을 쏟을까 고민 한다.


  저 영화를 찍던 시절 상담을 받았던 상담사는 내가 종말을 생각하는 것이 앞으로 다가올 미래를 모른다는 데에서 오는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래서 그 시절 나는 그나마 확실한 종말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저는 제가 그린 데까지는  살았거든요? 고등학교 졸업하고 원하던 대학에 왔고. 하고 싶은  쫓으면서 왔는데 그다음은 뭔지 모르겠어요."


 작년   내가 그렸던 플랜들은 해야 하는     있는 것을  해보는 것들이었다. 그래서 플랜이 F까지 있었다. F까지 끝나고 나니 나는 그들  내가 하고 싶었던 것들은 아무것도 없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자신을 지우고 세상에 보여줄  있는 것들만 찾았더니 그게 F까지 내려갔다는  새삼 놀랍다.



 상담이 끝나고 한동안 무능하다고 원망했던 내 상담사는 언젠가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사에씨는 자꾸 자기가 꾸는 꿈이 유치하다고 생각하는데, 생각보다 드레스를 입고 시상식에 가고 싶은 사람들은 많이 없어요. 항상 멋진 사람이 되고 싶었잖아요. 그걸 외면하지 않았음 해."

이전 07화 연애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