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사에 Aug 30. 2021

간사한 나를 구하기 위한 기록

저의 일기 쓰는 방법을 소개합니다

 나는 간사하다. 내 삶은 덕분에 극단적이다. 아니 사실, 극단적인 삶 때문에 나는 간사해졌다.


졸업 영화 워크샵을 듣고 있는데, 한 명이 감독님께 질문을 했다.

"감독님은 글을 어떻게 쓰세요?"


그에게 그런 질문을 던진 천진한 그녀가 신기하면서도 딱히 이렇다 할 대답을 얻을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의 대답은 졸업을 한 지금까지도 나에게 큰 도움이 되고 있다.


그는 예전에 하던 훈련이라고 말하며 자기 전에 침대 옆에 연필과 수첩을 놓아두라고 했다. 그리고 아침에 눈을 뜨면


'ㅊ..ㅣㅁ...ㄷ....ㅏ..ㅣ....... 아....ㅊ..ㅣ...ㅁ......'

부터 시작해서 무의식적으로 떠오르는 생각을 적어보라고 했다.


 딱 10분 동안만.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그리고 일주일 뒤에 그 글을 읽어보면 나도 모르는 나를 발견할 수 있다했다. 그때 마음에 박히는 말들에 동그라미를 쳐보라고.

"와.. 그럼 감독님도 그렇게 글을 쓰세요?"
"ㅎ.. 나는 이제 그럴 필요 없지.."

-네.. 사실.. 뭐 그렇긴 합니다..


그 이야기가 며칠을 맴돌았지만 아침형 인간과는 거리가 멀어 실행하진 않았다. 대신, 방법을 변형해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본래 일기 쓰기란 나에겐 성찰에 가까워서 전형적인 N형처럼(mbti- entp인간) 글을 쓴다. 아이유형 일기랄까. ‘오늘~를 했다’ ‘오늘 ~를 갔다’ 보다는 '오늘~를 해서 이런 감정과 의문이 생겼다.' 라는 기록을 한다.

아이유의 일기 <매거진 데이즈드>

 그러니 어떠한 깨달음 없이는 쉬이 글을 쓸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것이 넘쳐흐르는 감정에 의한 글쓰기여도 항상 끝에는 '그래, ~해보자.' 로 끝을 맺기 마련이었다. 일기에도 주제가 필요했던 것이다. 일련의 얕은 교훈이라도. 하지만 그의 말을 듣고 처음으로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 때의 일기를 들춰본다. 졸업 워크샵을 듣고 쓴 감상인 듯싶다.


2019.03.29

학교에 가기 싫다. 의미 없어서. 의미 없지만 다시 선택하래도 대학이다. 그럼 입 다물어야지. 부품이 되고 노예 되는 거야. 언제 잘릴지도 모르는 그런 직업을 왜 탐내?  70,80이 넘어서도 내 걸 할 수 있거든. 주인공 되고.냄새 안 나는 걸 원해야지 왜 그런 걸, 돈, 벌써부터, 이 젊은 사람들이, 도대체 왜, 그런 걸 탐내는 거야?

아. 또 낚일 뻔했다. 영화를 택해도 부품 되긴 마찬가지야. 감독님, 감독님은 1명이잖아요. 월급 받는 부장님, 팀장님 수보다 자기 것하는 감독수가 더 적어요. 내거 하기 전엔 영화판에선 더 큰 부품이에요. 나를 잃어버리는 일은 사회에 속하는 일. 우리는 왜 톱니바퀴가 되려 그렇게 애쓸까.

얕고 넓은 지식을 가진 너를 혐오해. 가까워질수록 지치는 건 필연일까.

인구절벽. 절벽 나타날 때 62세가 되는 지금 10살 길동 어린이. 62세되어서도 청년이 될 것이다. 내가 100대 시대 존나 잔인한 거라고 말했지. 동의하는 점, 창작하면서 얻는 기쁨 희열은 다른 걸로는 절대 못 채워. 존나저주.

월 200에 내 영혼을 파는 일. 그렇게 생각하면 200은 정말 푼돈이야. 일학 천금이 필요해. 인생이 30까지 라면 나는 지금 더 열심히 살 수 있을 거야. 희망을 가지고. 60살 넘어서도 젊은이인 이 사회가 더럽게 싫다.



 이 일기 쓰기의 특이한 점은, 의식의 흐름대로 왔다 갔다 글을 써도 나에겐 그 심리와 배경이 읽힌다는 것이다. 저 글은 4학년 2학기 예대생의 고뇌가 고스란히 담긴 글이다


필수 교양을 미뤄둬서 막 학기에 3개나 듣는 한심한 4학년이 내가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학점에 쫄려 열심히는 하지만 이 모든 것을 금세 잊게 되리란 것을 알고 있었다.


그 와중에 감독님은 "그래.. 너희 모두... 4학년이지...? 끝나고도 영화할 사람 손 들어봐..... hmm..."라는 대사를 치셨고, 세네명 정도만 손을 들었다. 그래서 약간은 화난 목소리로 저런 말들을 쏟아내셨다. 사이사이 저 많은 쉼표가 그의 짜증을 대변한다. 하지만 그런 관경은 딱히 내가 4학년일 때뿐만 아니라 매년 계속 되는 것이었다. 거의 모든 대학의 모든 과가 그렇듯.


"아 영화 안 할 거라 하니까  차별해. 학점은 잘 주려나. 너는 무조건 계속할 거라고 해."

- 나보다 먼저 졸업한 기억 안나는 누군가에게 들었던 말

 

누군가는 계속하라는 말에 그럼 내 인생 책임져줄 거냐며 화를 냈지만, 나는 마음이 흔들려서 화가 났다. 구구절절 맞는 말 같은 그의 말은 내 마음속에 남아있는 잘 정리해 담아둔 미련을 자꾸만 헤집었다. 하지만 의식의 흐름대로 글을 정리하다 보니.' 또 낚일 뻔했다.'라는 성찰에 이르렀다.

또 낚일뻔

 뭘 해 먹고살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나의 시선이 사회를 바라보게 만들었다. 평생직장은 사라졌다는데, 이 일도 하다 그만두고, 어차피 다른 일을 하게 되리라면 지금 어떤 일을 시작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아니 그리고, 이런 고뇌를 62세가 되어서도 계속해야 된다고?


그 와중에 만난 사람은 재능 없는 예술가는 다리 다친 새라며 자기가 재능이 없는데도 무언가를 계속하는 것은 저주와 같다고 이야기했다. 얕고 넓은 지식을 가지려 애쓰던 그 는 대화를 위한 대화를 위해 깊이 없이 아무 말이나 내뱉는 것 같았다. 듣고 있는 예술 전공자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 그에 대해선 딱 한 줄만 저곳에 써놨고 그 후로 그와 만난 적이 없는데도, 이렇게 기억이 나는 것을 보면 기록이란 참 신기하면서도 신중히 남겨야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대학은 싫어도 가긴 했겠지에서 인구절벽 창작욕 존나저주로 튀어버리는 생각의 기록들을 읽고 있자면 저 모든 것들이 말이 안 되게 말이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제 일기 쓰기는, 인생에 꾸준한 것이 별로 없는 나에게 자발적으로 꾸준한 것이 되어가고 있다.


 '가장 확실한 구원'이 되어준 일기는 대부분 극단적으로 바뀌는 결심과 심리상태에 대한 기록이다. 복잡한 상황 속 급변하는 마음을 지켜줄 이정표이기도 하다. ' 너 이거 간절히 원한다며.' '너 이 사람 좋다면서.' '이런 직업을 가지고 싶다더니.' ' 또 이런 삶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고?'


 그 글을 읽고 있자면 나의 간사함에 감탄하게 된다. 예전의 나였다면 이 모든 기록의 과정을 놓치고 어떤 것을 좋아하겠다고 마음먹은 후 글을 썼을 테고, 옅은 교훈을 담은 글을 썼기에 남들에게 선포했을 테고, 저기가 목적지라며 깃발을 꽂고 번복하고 싶지 않아 달려갔을 것이다. 그리고 결국 매번 번복하면서 굳이 겪지 않아도 될 창피함과 좌절을 경험했겠지.


 이 글쓰기 방식은 도무지 답이 나지 않는 나에게 자유를 허락했고, 간사한 나를 알게 했다. 나는 예전만큼 나의 번복과 포기에 좌절을 느끼지 않는다. 다만 간사한 나를 지키기 위해 '갈팡질팡'을 기록한다. 그리고 이해하게 됐다. 너의 삶이 극단적이고 왔다 갔다 하는 이유는 원래 무엇하나 명확할 게 없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네가 명확하게 세상을 보던 시절은 단지 명확히 보고 싶어 시야를 좁혔을 뿐이다.그러니 간사해도 된다. 달리 어쩌겠니.


e-mail: kimsa00eh@gmail.com



작가의 이전글 며칠 전의 꿈과 요즘 눈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