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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칭푸르 Nov 10. 2023

33화. 우의정 김태균의 음모

조선분식집4

한편, 환과 선주 남매가 서로 부둥켜안고 우는 모습을 보고 놀라 발길을 돌린 지혜는, 그 후로 줄곧 방에 틀어박혀 있었다.


"아씨! 아씨! 이렇게 누워만 계실거에요?"


지혜가 많이 걱정되는 사월. 

하지만 지혜는 사월의 걱정에도 전혀 움직일 생각이 없는 듯 보였다.


"사월아, 그냥 나 좀 가만히 내버려두면 안될까? 내가 지금은 좀 혼자 있고 싶어서..."


"아씨! 아무리 그래도, 식사를 거르시면 어떻게 하십니까?"

"어제 박주모네 분식집에 다녀오신 뒤로 아무것도 안드셨잖아요? 이러다 진짜 병 나세요!"


"하지만, 배가 안 고픈걸... 그렇다고 뭘 먹고싶지도 않고..."


"아씨... 혹시 환도령 때문에 그러십니까?"


이대로는 안되겠다고 생각한 사월이 조심스레 환의 이름을 말했다.

그러자 정곡을 찔린 듯 바로 반응하는 지혜.


".........."


"아씨?"


".........."


"아씨?"


".........."


'이건 확실하네 확실해! 우리 아씨가 상사병에 아주 단단히 걸리셨네...'

'아니, 대체 그런 주막집에서 음식이나 만드는 사내가 뭐가 좋다고 그러실까? 집안이 좋은 것도 아니고 말이지... 통 이해가 안간다니까...'


이때 지혜의 부친인 서대감이 요란스럽게 지혜가 있는 별당으로 들어왔다.

서대감은 딸바보로 소문난 인물로, 첫째 딸인 지혜에 대한 애정이 특히 남달랐다.


"아니! 이게 무슨 일이야? 우리 지혜가 끼니를 거르고 있다니?"


"대감마님 오셨습니까?"


"아... 아버님..."


지혜는 몸을 추스리며 일어났다.


"아니다. 그냥 누워 있거라!"


"아닙니다. 아버님."


"아니... 대체 어디가 아픈게야? 어제까지도 건강하던 아이가...? 의원한테 진찰은 받아봤고?"


"어디가 특별히 아프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그냥... 입맛이 없고 기운이 없어서 그런 것이니 너무 걱정하시 마셔요."


"무슨 소리! 그런걸 두고 아프다고 하는거야!" 

"그렇게 먹는 것을 좋아하는 네가 아니더냐? 그런 네가 끼니를 거르다니? 이건 필시 무슨 큰 병이 아니고서야..."


"아버님, 정말 괜찮습니다. 곧 잘 챙겨먹을테니 걱정하지 마셔요."


"흠... 정말 괜찮겠느냐?"


"예..."


"건강에 각별히 신경을 써야 할 것이야! 사월이 너도 아씨를 더욱 정성껏 뫼시거라!" 


"예, 대감마님!"


"그건 그렇고 말이다..."


사월에게 분부를 내린 서대감은 갑자기 무언가 말하려는 듯 분위기를 바꿔 밝은 웃음을 지으며 지혜를 바라보았다.


"네가 이리도 기운이 없으니, 이 애비가 널 위해 기운을 차릴만한 좋은 소식을 알려주마!"


"예? 무슨...?"


"너도 알고 있으리라 생각되는데... 그, 최판서댁의 장남 있지 않느냐?"


"예..."


"그 집 장남이 아무래도 널 마음에 두고 있는것 같더구나! 허허..." 

"그 집 아들이 대체 어디에서 너를 보았는지 모르겠으나, 너와 혼담을 진행해달라고 제 부모님한테 그렇게 적극적으로 청을 했다더구나! 허허... 보는 눈이 있는 아주 기특한 녀석이야..."  


"예? 혼담... 이라니요?"


서대감의 갑작스러운 이야기에 지혜는 깜짝 놀라 되물었다.


"네 어머니로부터 듣지 못했느냐?"


"얼핏... 듣긴 했습니다만, 조금 갑작스러운듯 해서요..."


"갑작스러운 일이 아니다! 내 그집 장남을 여러번 보았는데, 예의도 바르고, 아주 마음에 쏙 들더구나! 그래서 나 또한 이 혼담이 들어왔을 때 아주 기분이 좋았다! 그리 훌륭한 집안의 아들이라니... 허허허!"


"하지만 전 아직 마음의 준비가..."


"너무 신경쓰지 말거라! 나도 그렇게 쉽게 수락할 생각은 없으니까!"


"그 말씀은...?"


"아무리 그래도 우리가 덥썩 수락하면 안되지! 이런건 뜸을 들이면서 진행해야, 네게도 좋은 법이야!"


"마침 그집 장남이 우리집에 한번 온다고 하니, 그 때 서로 인사라도 하면서 친해져보도록 하거라!"


"아버님 그건..."


"괜찮다! 이 애비가 다 알아서할테니, 넌 걱정하지 말고..."


"그런게 아니라..."


"허허... 녀석, 부끄러워하긴... 내 다 알아서할테니, 넌 어서 뭐라도 챙겨먹고, 기운을 차리거라!"


"네가 날 닮아서 낯도 가리고, 마음 속에 있는 말도 잘 못하는 것 잘 안다! 하지만 이번 만큼은 이 애비를 믿고 편하게 만나보거라! 분명 네 마음에도 쏙 들거라고 생각한다."


"예..."


"사월이 너는, 어서 가서 아씨께 드릴 음식을 가지고 오거라!"


"예, 대감마님!"


"하하하하하하! 날씨 참 좋구나! 하하하하하하"


딸의 혼담으로 기분이 좋아진 서대감은 화통하게 웃으며 별당을 빠져나갔다.

하지만, 그와 달리 지혜의 머리속은 복잡하기만 했다.


"하... 아버님은 어찌 저리도 날 모르시는지... 대체 어떻게해야 하나...?"


"뭘 고민하십니까. 아씨? 최판서댁 도련님에 대해서는 저도 소문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렇게 잘 생기셨다는데..."


"나도 안다... 나라고 본 적이 없겠느냐?"


"그런데, 뭐가 문제이십니까? 그렇게 잘생긴 분이 아씨와 혼담을 진행하고 싶다는데...?"


"그게... 소문 만큼 좋은 사람이 아닌 듯 해서... 난 느낌이 별로 좋지만은 않더라고..."


"예?"


순간 최판서댁 장남과의 지난 기억을 떠올리는 지혜...


"아니... 아니다!"


사월은 괜한 고민을 하는듯한 지혜가 답답하기만 하다.


"아씨! 환도령도 대낮부터 어떤 여인네를 끌어안고 그러는데... 아씨도 보란듯이 좋은 분을 만나 연분을 맺으셔야죠!"


지혜는 사월의 입에서 나온 환의 이야기에 마음이 크게 흔들렸다.


"하..."


"그러게... 한번 만나나볼까?"


깊은 한숨을 내쉰 지혜는 사월을 보며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예! 아씨! 잘 생각하셨어요! 꼭 그러셔요!"


"그래..."


순간 환의 웃는 모습이 머릿속에 또 떠올랐지만, 지혜는 고개를 흔들며 마음을 잡았다.


**********


한편 지혜와 혼담이 오가고 있는 최영익 판서의 집에서는, 그를 방문한 우의정 김태균과 측근들이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김태균은 현빈 김씨의 아버지로 자신의 외손자인 성원군을 장차 조선의 왕으로 만들기 위해 계략을 꾸미는 자였다.


"듣자 하니, 세자의 용태가 많이 안 좋다고 하던데... 만약 이대로 세자가 일어나지 못하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최영익이 김태균에게 물었다.


"그럼, 당연히 장성대군이 세자에 책봉되겠지?"


"허나 장성대군은 요즘 주색에 빠져 지낸다는 소문도 있고... 평소에도 행실이 영 좋지 않아서 주상이 그다지 신뢰하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만..."


"어리석은 소리! 아무리 그래도, 제 친자식을 진심으로 싫어할 아비가 있겠는가?"


"그럴까요?"


"그렇지... 게다가..."


"게다가?"


"난 그 장성대군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아! 평소에 행실이 나쁜 척하고는 있지만... 대체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영 알 수가 없거든!"


"지나친 걱정이 아니신가 싶습니다만... 제가 보기엔 그냥 시정잡배로만 보이던데요?"


"아니야... 아무리 그래도, 어렸을 때는 그렇게 영특하던 자였어! 절대로 만만하게 생각해서는 안될 것이야!"


"우상께서 그리 말씀하신다면..."


"만약, 장성대군이 세자가 되면 어떻게 합니까?"


"어떻게 하긴? 제놈이 그렇게나 좋아하는 형의 뒤를 따르게 해 줘야지... 그게 인지상정 아니겠나? 흐흐흐흐!"

최영익의 질문에 김태균은 음흉하게 웃으며 답했다.


"사실, 우리가 세자보다 더 신경 썼던 것은 장성대군이 아니었나?"


"분명... 그랬었지요..."


"용하기로 소문난 점술가인 홍창욱도, 세자가 태어날 때는 왕이 되지 못한 채 단명할 것이라고 했었는데, 장성대군이 태어날 때는 조선의 강력한 왕이 될 거라는 점괘를 내놓았었으니까요..."


"그래서, 큰 화근이 되기 전에 처리하려고 한 건데..."


"그... 그랬었지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거사를 치르기 전 홍창욱을 찾았을 때는, 장성대군의 운명이 바뀌었다고 했단 말이지...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다면서..."


"어째서 갑자기 그렇게 되었을까? 난 그게 계속 마음에 걸린단 말이야... 역시 그때 주저하지 말고 처리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


"홍창욱도 자신의 점괘가 틀린 것 같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뭐...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지는 법이니까요!" 


"장성대군도 지금은 총기를 잃고 주색에 빠져 지내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 것이라면 좋겠지만..."


"어쨌거나, 끝까지 방심하지 말고, 우선 세자의 용태를 잘 살펴보도록 하세!"


"예, 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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