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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만의 등산

by 한언철

설악산의 새벽 공기가 싸늘했다. 9월이라 아직 가을이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여름이 세를 과시하고 있었지만, 설악산에서는 예외로 이미 여름은 힘을 빼고 가을에게 자리를 넘겨주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해가 뜨기 전이 가장 어둡다는 그 말을 내 눈으로 확인을 하며 머리 위의 전등 불빛에 의지해 한 걸음 한걸음 걷기 시작했다. 한계령까지 가는 오르막은 가팔랐다. 한걸음에 큰 한숨을 필요로 하는 구불구불한 길을 아버지를 앞세우고 천천히 올랐다.


나는 어린 시절 아버지와 등산을 매우 무척 많이 했다. 초등학생 때부터 내가 사춘기 접어들어 더 이상 아버지를 따라다니지 않기 전까지였다. 아버지와 차를 타고 어디든 가다 보면 많이 듣는 말이 있다. “너랑 저 산 갔었는데 기억나는지 모르겠다.” 나는 아마 기억나지 않는 전국의 수많은 산을 올랐던 것 같다. 지금처럼 사진을 찍는 것이 쉽지 않았으니 그 사실을 입증할 수 있는 건 오직 아버지의 기억에 의존할 수밖에 없어 가끔은 내가 저 많은 산을 가봤다는 사실이 의심스러웠다. 그 기억에 따르면 믿기지 않을 정도로 꽤 높고 험한 산부터 동네 뒤산까지 다양한 산을 올랐다. 등산할 때 아버지는 나를 앞세우고 뒤에서 정말 많은 이야기를 해 주셨다. 그 시절 갔던 산은 기억에 남지 않지만 아버지가 나에게 해 줬던 등산에 관한 이야기는 잊히지 않는다. 그 이야기는 등산 짐을 싸면서 시작된다. ” 등산을 가면 산은 기상이 언제 바뀔지 모르니까 여벌의 옷은 항상 챙겨야 하고 비가 올지도 모르니 우의도 챙겨야 된다.“ 출발점에 도착해서 등산을 시작하기 전에 항상 하시던 말은 ”등산을 시작하고 땀이 나기 시작하면 겉옷을 벗어서 체온 유지를 잘 해야 된다. 나중에 정상에 올라가서 땀이 식으면 몸이 나빠질 수 있단다.“였다. 등산을 시작하고서는 등산을 하는 요령에 대한 이야기를 끊임없이 반복해서 들었던 기억이 있다. ”발을 내디딜 때는 반드시 평편한 바닥에 놓도록 하고 움직이는 바위는 뒤 사람이나 밟은 사람이 다칠 수 있으니 피해야 한다.“ , ”발바닥이 바닥에 넓게 닿도록 해서 올라야 수월하게 갈 수 있다“, ” 나무를 잡을 때는 가지를 잡지 마라. 가지를 잡다가 가지가 끊어지면 다칠 수 있으니 가급적 큰 나무의 줄기를 잡는 게 좋다.“, ”숨은 거칠게 내쉬는 게 아니라 가급적 입을 닫고 코로 숨을 쉬는 게 좋다.“, ”올라갈 때보다는 내려갈 때 더 많이 다치니까 정신 차려서 조심히 내려가야 한다.“ 와 같은 아버지의 말들이 등산을 갈 때면 아직도 기억이 난다. 그리고 등산을 가면 아버지는 아들에게 어떤 교훈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하셨는지 매번 진부한(?) 인생 이야기를 하시곤 했다. ”인생이란 게 등산이랑 너무 똑 닮았어. 오르막이 있고 내리막이 있잖아.“, ”인생도 등산과 같이 오르는 건 힘들지만 내려가는 건 순식간이다. 그리고 언제나 정상에만 있을 수는 없고 인생의 순리대로 올라가면 내려와야 되는 것이란다.“, ”언제 정상에 도착하냐고 안달하면 할수록 힘이 더 드는데 지금 네가 할 수 있는 건 한발 한발 내딛는 거야. 언제 도착하냐고 보채지 말고 차라리 한 발을 더 내 디디렴." 지금 돌이켜보면 아버지의 그 말들이 나는 귀찮았고 듣기 싫었고 나를 위한 말이 아니라 잔소리처럼 들렸다. 키가 크고 몸도 커지니 이제는 아버지와 속도를 맞춰서 올라가지 않아도 되는 순간이 왔다. 등산을 시작하면 빨리 집에 가고 싶어 출발하자마자 거의 정상까지 뛰다시피 쉼 없이 혼자 올라갔다 내려오기도 했다. 중학생이 되고 시험공부를 핑계로, 친구들과의 약속을 핑계로 힘들기만 하고 아버지 잔소리만 듣는 등산을 피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는 등산과 멀어졌고 그 이후로 난 등산을 20년 넘게 자의로 간 적이 없다. 오히려 등산을 싫다고 이야기하고 다녔고 실제로 산 근처에도 가지 않는 것으로 나의 말을 충실히 실천했다. 일상에 여유가 생기고도 나는 등산을 가지 않았다. 그러다 시간이 흘러 아내의 등쌀에 등산을 어쩔 수 없이 가게 되었다. 거의 25년만 이었다. 아내 손에 이끌려 어쩔 수 없이 갔던 그 산에는 맑은 공기가 있었고 거친 숨과 함께 흘린 땀방울이 있었고 정상에서 볼 수 있는 가슴이 뻥 뚫리는 풍경이 있었다. 어릴 적 힘들기만 했던 중력을 거슬러 올라가는 이해할 수 없는 행위가 나이가 들고 보니 아버지가 이야기하셨던 진정한 의미의 등산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었다. 지금 그때의 아버지 나이가 되고 보니 아버지가 나에게 해주셨던 모든 이야기, 모든 것이 옳았다는 것을 이제는 알고 있다. 등산과 관련해서도, 인생에 대해서도…


이제는 시간이 많이 흘러 30년 만에 아버지와의 등산이다. 너무 긴 시간이 흘러버렸다. 이제는 아버지가 내 앞에서 걷고 있다. 어릴 적 나와 자리를 바꾼 셈이다. 하지만 난 뒤에서 예전의 아버지처럼 많은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묵묵히 서로 걷기만 할 뿐이다. 뒤에서 바라보는 아버지의 발걸음은 예전과 같지 않다. 무릎이 좋지 않으셔서 힘들어하는 게 보였고 가끔은 걸음이 위태로워 보였다. 너무 많은 시간이 흘렀다는 것을 체감하는 순간이었다. 그래도 아버지의 발걸음은 무심히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무심히 한 걸음, 무심히 또 한 걸음. 무심히 내 딛는 한 걸음을 터벅터벅 쌓아가다 보면 우리가 원하는 곳으로 이끌어 준다. 그 깨달음도 아버지에게 들었던 이야기다. 산을 오를 때는 욕심을 내서는 안되고 무심히 그냥 한 발자국, 한 발자국 올라야 힘이 들지 않는다는 이야기였다. 그렇게 나도 힘을 빼고 무심히 한 걸음씩 떼어서 걸었다.


한계령을 거쳐 대청봉을 향해가는 길은 능선을 따라 걸어가는 길이라 위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이 무척 아름다웠다. 한쪽에는 한편의 수묵화처럼 멀리까지 뻗어있는 산 능선이 있었고 반대쪽에는 푸르른 속초 바다가 보였다. 빠른 걸음을 재촉하는 운무를 마주치기도 했고 나무의 우듬지 사이로 따스하지만 아직은 여름을 머금은 햇살을 맞기도 했다. 이제는 가을이라고 색깔로 이야기하는 높고 깊은 파란색의 하늘도 볼 수 있었다. 아직 각자의 색을 다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수줍게 노랗고 붉은 잎으로 옷을 갈아입는 나무들을 만나기도 했으며 지독히 외로워 보이는 고사목들이 여기가 고산임을 보여주고 있었다. 부지런히 걸어 대청봉에 도착했을 때는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제일 먼저 바람이 아버지와 나를 맞아주었다. 바람이 우리에게 내밀었던 손길은 따스한 환대는 아니었고 왜 이제야 왔냐고 질책하는 손길의 매서운 바람이었다. 바람을 맞으며 ‘그러게 30년 만에 아버지와의 등산이라니’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정상임을 표시하는 대청봉 표지석에서 둘이 나란히 사진을 찍고서 잠시 주변 경치를 둘러보며 숨을 골랐다. 시원한 오이를 먹으며 약간의 휴식 후 천천히 하산길에 나섰다. 오래전 아버지의 말씀처럼 정상에 올라섰으니 이제는 내려가야 할 때이다. 매서운 바람이 등 떠밀었다. 내려가는 길이 쉽지 만은 않았다. 경사가 급한 곳도, 미끄러운 곳도, 노면이 고르지 않은 곳도 있었다. 또다시 예전의 아버지 말씀을 되새기며 천천히 한 걸음 한 걸음 내려간다. 새벽부터 산행을 시작해서 하행 길에 대피소에서 점심을 맞았다. 집에서 싸온 도시락을 나눠 먹으며 아버지는 젊었을 적 설악산 이곳저곳을 산행한 이야기를 해주셨고 나는 별다른 대꾸 없이 묵묵히 듣고 있었다. 아버지의 등산 이야기를 듣고 있자면 젊었을 때부터 취미였던 등산에 대한 열정과 애정이 느껴진다. 그리고 지금은 그때처럼 자유롭지 못한 관절 상태에 아쉬움이 묻어나기도 했다. 그 이야기 속에 아버지가 살아오신 시간이 응축되어 있음을 느낀다. 시간이 많이 흘렀다.


정상과 멀어지며 내가 발을 딛고 사는 속세의 세상과 가까워질수록 조금은 수월한 길이 나오기 마련인데 설악산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내리막과 오르막이 번갈아 가며 나왔고 또 그 길은 길었다. 포장된 길을 만나기까지 매우 오래 걸어야 했다. 하지만 힘든 걸음걸이에 위안을 주는 건 계곡에서 흘러내리는 시원한 물소리였다. 다양한 모양으로 깎여있는 계곡과 그 사이로 시원하게 흐르는 물을 가만히 서서 바라보니 비현실적인 풍경에 신선이 내려와서 바둑을 두고 있을 듯한 상상을 하게 만들었다. 아름다운 계곡 사이에 아버지를 세워 사진을 찍어드리고 둘이 같이 찍기도 했다. 찍은 사진을 보다 보니 나와 아버지가 많이 닮았음을 느낀다. 그리고 사진에 찍힌 아버지의 쳐져 있는 눈꺼풀도 주름도 흰머리도 이미 시간이 많이 흘러버렸음을 알게 해주었고 같은 시간이 지나면 나도 비슷한 모습으로 늙어가리라는 것을 알게 해주었다. 거의 다 내려와서 포장된 길이 나왔고 아버지와 둘이 나란히 걸어내려왔다. 여전히 긴 대화는 없었지만 원래 아버지와 아들 간의 관계는 그런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그리 긴 대화는 없어도 오래전 아버지가 가던 비슷한 길을 따라가다 보면 이제서야 이해가 되는 아버지의 말과 행동들이 있다. 너무 긴 시간 아버지와 함께하지 못한 등산을 이제서야 같이 하며 많은 생각이 내 머릿속을 오갔다.


어찌 보면 등산은 나에게 멀고도 가까운 당신 정도의 관계가 아닐까? 그리고 닮아가는 외모와 달리 공통점이 별로 없을 거 같은 아버지와 나를 이어주는 관계의 끈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 모든 것을 알게 해준 곳이 설악산이 되었다. 아마 언젠가 다시 설악산을 찾는다면 아버지와 걸었던 그 순간이 떠오르겠지? 어린 시절 기억나지 않는 수많은 순간이 있었지만 이제 다 커버린 지금은 30년 만에 아버지와 같이 등산을 했던 지금 이 순간을 잊지 못할 것 같다. 아름다운 설악산의 풍광도 싸늘하고 맑았던 공기도 길고 길었던 등산길도 아버지와 무심히 내디뎠던 그 한걸음 한 걸음도 모두 생생하게 기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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