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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언철 Mar 26. 2021

난제 (難題)

해결이 어려운 문제

한 동안 조용하더니 응급실에서 전화가 왔다.

"우리 병원에서 직장암으로 오래전에 항암 방사선 치료하고 수술 안 하시겠다고 해서 경과 관찰하시다 전이가 생겨서 항암 치료하시던 중 항암 중단하셨던 분인데 직장암이 심해지면서 항문 주위 농양으로 오신 거 같은데 좀 와서 보셔야 할거 같아요."


 전화 내용만 들어도 대략 감이 온다.

암이 진행되다가 종양이 커지다 터졌을 테고 터진 자리로 대변이 나오기 시작하니 염증이 생겼을 것이고 염증이 생기니 몸에서 정상적인 면역반응으로 농양을 만들기 시작했으리라. 농양이 진행되니 항문 통증이 생겼을 것이고 그와 더불어 항문 옆으로 농양이 터져 나왔으리라. 그랬다면 답은 항문 주위에 생긴 농양은 배농 해야 하고 터진 부위로 대변이 지나다니지 않게 장루를 만들어서 대변이 지나다니지 않게 해야 염증 조절이 된다.

머릿속으로 그렇게 정리를 한 후 응급실로 내려갔다.


 응급실에 가니 통증으로 일그러진 얼굴을 하고 계신 환자 분과 아주 걱정스러운 얼굴을 하고 계신 보호자가 같이 있었다. 우선 환부를 확인하였다. 내가 생각한 것이 거의 맞았다. 하나 빗나간 건 심한 정도가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많이 심했다. 오랫동안 참으셨는지 범위가 상당히 넓고 깊었다.

"왜 이렇게 오래 참으셨어요. 진작부터 통증도 있고 문제가 있었을 텐데요."

"병원 오기가 너무 싫었어요. 통증이 심하니 빨리 어떻게 좀 해주세요."


환자와 보호자에게 내가 생각했던 치료 방법에 대해서 설명하였고 응급으로 대장루를 만들고 농양 배액술을 시행하였다. 농양이 생긴 부위는 상당히 넓어서 골반 구조물을 여기저기 침범하고 염증으로 손상을 입힌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한쪽 엉덩이 전체가 염증으로 딱딱해져 있을 정도였다.


이렇게 치료를 시작한 건 우선 급한 불을 끈 것과 같다. 진짜 치료는 지금부터 시작이다.

항생제로 염증 조절을 하기 시작했다. 극심한 통증은 무통주사로 조절을 했고 장루가 나오기 시작하여 식사 진행을 진행했다. 항생제를 쓰기 시작하니 염증은 조절되기 시작했다.  넓었던 염증부위도 줄어들기 시작했다.

염증이 조절이 되어야 항암치료를 다시 시작할 수 있기 때문에 염증이 다시 생기지 않는지 피검사와 CT를 통해서 경과 관찰했다. 무난하게 치료가 되는 듯했다. 발열도 잡히기 시작했고 수치도 안정적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CT를 시행하여 보니 염증 범위도 확실히 줄고 있었고 농양은 조금 남아 있긴 했지만 크게 문제를 일으키지 않을 것 같았다. 그렇게 항암 계획을 잡아주고 퇴원을 하실 수 있게 되었다.


환자 분이 퇴원하고 하루가 다 되기 전 응급실에서 전화가 왔다.

"어제 퇴원하신 환자 분인데 열이 나고 다시 통증이 있어서 응급실로 오셨네요."

"아~~~ CT를 좀 다시 찍어주시면 가서 보도록 할게요."

불안한 마음으로 CT를 열어보았다.

이전 농양이 있던 부위가 문제였다. 다시 범위가 넓어졌다. 배농이 되는 부위가 조금씩 닫히면서 농양이 다시 쌓인 것이다.

이걸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머리가 복잡하다... 다시 배액술을 절개를 더해서 배농을 해낼 것인가... 아니면 지금 문제가 되는 부분이라도 수술을 통해서 드러내고 염증이 있는 부위를 씻어낼 것인가... 아니면 배액관을 넣어 볼 것인가...

말 그대로 환자가 나에게 던진 풀기 어려운 문제, 누군가 대신 풀어줬으면 좋을 거 같은, 난제다.

답은 정해진 게 없다. 치료 결과를 예측하는 것도 쉽지 않다.

이럴 경우는 우선 치료 목표를 정하는 것이 먼저다.

환자가 가진 종양을 포함한 부분을 모두 제거할 수 있을 것인가?

환자가 가진 종양을 제거가 안된다고 하면 항암을 최대한 빨리 들어갈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이 목적이 되어야 했다. 하지만 농양이 남아 있는 상태로는 진행이 어렵다.

농양은 어떻게 치료를 해야 좋을까?

배액술? 수술? 배액관?

같이 있는 동료와 사진을 다시 검토하며 머리를 맞대고 고민에 고민을 한다.

이걸 어떻게 푸는 것이 좋을까?


최종적으로 회복기간이 좀  길어지더라도 확실히 농양을 제거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가기로 했다. 종양이 있는 부위는 드러내고 농양을 노출시킨 다음 완벽히 씻어낸다!

환자와 보호자에게 우리가 논의한 결과를 상의했다. 우리의 결정을 믿고 따르겠다고 하신다.

수술 결정도 쉽지 않다. 수술하고 합병증이 생긴다면 항암치료는 점점 늦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앞으로 문제가 안 생길 수 있다면 그 정도는 감수하겠다고 하신다.

그렇게 수술을 들어갔고 예상했던 대로 염증이 있는 부위는 넓으나 잘 노출시켜서 계획했던 대로 수술은 잘 진행되었다.

그렇게 다행히 잘 회복되어 가는 중에 이번에는 수술 후 복부팽만이 생기고 장루로 가스가 안 나오는 장 마비가 생겼다. 하나의 문제를 풀면 다시 문제가 생기고 다시 해결하면 다음 단계가 기다리는 것 같았다.

입원 기간은 길어지고 항암치료는 조금 더 연기될 수밖에 없고... 주치의인 내 마음에는 조급함이 자리 잡는다. 이럴 때 동료가 한마디 해 준다.

"너무 서두르지 말고 조급하게 하지 말고 순리대로 천천히 다시 금식하고 다시 봐 봅시다."

그 말이 맞았다.

의사가 조급해지고 서두르기 시작하면 문제가 제대로 풀리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시간이 조금 더 걸리더라도 완전히 장마비가 해소될 때까지 기다렸고 천천히 돌아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모든 문제가 해결되기까지 3 달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3 달이라는 긴 시간 동안 지치지 않고 잘 따라와 준 환자와 보호자분께 감사했다.

퇴원 후 항암치료 위해 입원한 환자와 보호자를 마주했다. 물론 암이 완전히 치료된 것은 아니지만 밝게 웃으면서 맞아주시는 게 그것 또한 너무 감사했다.


풀기 어려운 문제를 이번에는 다행히 잘 해결했는데 다음 난제도 잘 풀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너무 어렵지 않은, 조금은 쉬운 문제를 던져주시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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