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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니카 Jul 26. 2020

아기자기한 콜로니얼 타운

브라질 여행 에세이 - 오우루 쁘레뚜(Ouro Preto) (1)

저녁 6시에 해가 지자마자 벨로 오리존치(Belo Horizonte)에서 버스를 타고 도착한 오우루 쁘레뚜(ouro preto).


오우루 쁘레투는 브라질 미나스 제라이스(Minas Gerais) 주의 도시로, 포르투갈어로 직역하면 ‘검은색 금’을 뜻한다. 포르투갈 식민지 시절에 아주 부유한 금광촌이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으로, 식민지 당시 건물들이 잘 보존되어 있어 유네스코 지정 세계 문화 유산이 된 곳이다. 아기자기한 느낌의 작은 집들과 교회, 아스팔트가 아닌 돌로 이루어진 대부분의 길이 마을의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도시보다 자연을 좋아하는 나는 산중턱 경사진 곳에 포근한 시골 마을이 존재하는 것 자체로 벌써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다.


어둑어둑해진 다음에야 버스가 멈췄고, 창문 밖으로는 제대로된 가로등불이 없어 제대로 마을의 첫인상을 느끼기 어려웠다. 미리 검색해본 지도에서는 마을 한 켠 고지대에 위치한 버스 터미널에서 마을까지 1km 밖에 안 되어 배낭을 매고 어두운 내리막 길을 터덜터덜 걸어 내려갔다. 마을에 도착했지만 아직 제대로 실물을 맞이하지 않아 그런지 무엇에 걸려 넘어지지나 않을까 발밑에 온 신경이 곤두 선다. 가끔씩 있는 가로등 불에 의지하여 마을로 향하던 중 목적지를 향해 땅만 보고 걷던 내 눈 앞에 갑자기 탁 트인 시야가 걸린다. 


우와!

혼자서 감탄사가 저절로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어둠 속 마을 전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에 서있었다.

주황색의 따뜻하고 희미한 불빛이 곳곳의 집에서 흘러나오고, 아기자기 낮은 건물들과 구불구불한 길목들이 한 폭의 그림처럼 눈에 담겼다. 작은 낭만의 도시가 나를 맞이한다. 무거운 배낭의 존재를 잊은 채 잠깐 멈춰 서서 야경을 감상하고 사진을 찍고, 낮의 풍경은 어떨까 상상해본다. 여행지의 첫 장면부터 정신을 쏙 빼놓는다. 좀 더 여유를 부리고 싶지만 야심한 시각임을 자각하고 이내 다시 걷기 시작. 곧바로 예쁜 길이 이어지고 마을의 중심인 치라덴치스 광장이 나타났다. 인적이 드물지만 딱 보기에도 안전해 보여서 더 좋았다. 


미리 예약해 둔 호스텔을 찾아 구불구불한 길을 약간 헤매다가 어떤 동네 아저씨의 도움을 받아 겨우 도착했다. 그리고 만난 호스텔의 주인이자 직원 호드니(Rodney). 풍성하고 개성 있는 폭탄 머리에 히피같은 복장을 한 그 친구의 스타일에 관심이 갔다. 대학 친구 민이가 이미 묵어보고 소개해 준 이 숙소. 호드니에게 민이에 대한 이야기를 했더니 바로 기억한다. 역시 민이는 브라질 사람에게 기억에 남을 만한 인상을 남기는 편이구나. 그 옆에는 다부진 체격의 사무엘(Samuel) 이 하얀 이를 드러내며 장난스럽지만 수줍게 웃으며 나를 반긴다. 딱 봐도 절친인 듯한 둘은 친구이자 주인 - 직원의 관계를 모호하게 유지하는 듯 했다. 숙소는 조금 춥고 낡긴 했지만 시골 마을에 가까운 오우루 쁘레뚜에 어울리는 분위기가 꽤 괜찮았다. 호드니가 추천해준 근처 식당에서 따뜻한 닭 스프로 몸을 데우고, 소화 시킬 겸 잠시 마을을 산책해 본다. 워낙 조용한 마을이라 그런지 삼삼오오 모인 사람들의 웃음소리도 얇게 바닥에 깔렸다. 


저녁 8시에 맞춰 찌라덴치스 광장의 종이 울리는 것도, 추위를 녹이고자 아무데서나 사 먹은 따뜻한 닭죽도, 거리와 곳곳의 집에서 나오는 불빛도 모두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 벌써 이 곳에 숨어있는 낭만을 다 찾아버린 느낌이었다. 




낮의 마을 분위기가 너무나도 궁금했던 나머지, 이른 아침에 눈이 떠져버렸다. 혼자 쓰는 다인실에서 편하게 씻고 나와 마을 탐방 겸 산책을 나갔다. 낭만이 가득했던 어젯밤의 오우루는 이번에는 화창한 날씨를 그대로 받아 옛날 유럽 동화 속 마을처럼 귀여운 모습으로 나타났다. 작은 마을이라서 그냥 내가 가고 싶은 대로 가다가 길을 잃어도 걷다 보면 어느 새 아는 장소가 나온다. 마치 동화책 속에 들어와 있는 듯한 기분으로 두리번거리며 마을 곳곳을 눈에 담는다. 작은 집과 집 사이에 시냇물이 흐르고, 아치형의 다리가 놓여져있고, 뚫려있는 창가에는 이 곳의 관광상품이자 명물(?) 나모라데이라(NAMORADEIRA) 인형이 진열되어 있다. 금광촌으로 유명했기에 천연석이 예쁘게 다듬어져 진열되어 있는 보석 가게도 곳곳에 눈에 띈다. 곳곳마다 화보이고 그림이다. 낮이 되니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해가 너무 뜨거워서 두피가 또 탈 것 같았지만, 오르락 내리락 가파르고 포장되지 않은 길 때문에 걷기 힘들지만, 그래도 마냥 좋다. 세상에 이렇게 예쁜 콜로니얼 타운이 또 어딨을까 싶다. 



길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성당



오늘의 유일한 일정, 광산 투어를 예약하러 가는 길에 사무엘(Samuel)을 우연히 만났다. 작은 마을이다 보니 이렇게 또 걷다가 아는 사람을 쉽게 만난다. 

“광산 투어? 내가 아는 데가 있는데 공짜야. 마침 시간이 비니까 데려다 줄게.”

그냥 한가로이 동네 산책 중이었는지 나를 보자마자 지나치지 않고 어디를 가고 있었는지 꽤나 관심을 가지고는 단숨에 투어까지 데려다 준단다. 공짜라는 말에 솔깃하여 바로 투어를 바꿔버린다. 작은 광산이 있는 마을 한쪽까지 걸어가는 동안 동네를 구경하며 사무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사무엘은 말을 또박또박 정확히 해서 좋다. 자꾸자꾸 얘기하고 싶어지는 상대랄까. 주위에 포르투갈어를 배우는 외국인 친구도 없는데 인내심을 갖고 이렇게 포르투갈어를 정확히 말해주고 내가 말하는 것을 천천히 기다려주는 브라질 사람은 드물다.

그래서 이 참에 궁금했던 오우루 쁘레뚜의 역사, 나모라데이라 인형에 대해서도 물어봤다. 대충 명칭을 주워듣고는 Namorar (연애하다, date) deira(~하는 사람)으로 그저 사랑꾼? 정도로 생각했더랬다. 나혼자 어렴풋이 짐작했던 ‘광산으로 떠난 사랑하는 남편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는 아내’를 사무엘은 정정했다.


‘외로워서 길가에 걸어다니는 총각들을 꼬시려고 창가에 앉아 추파를 던지는 여자’ 로.


실실 웃으며 말하는 게 어쩐지 미심쩍지만 그의 해석이 더 흥미롭기에 그냥 믿기로 했다. 현지인에게 듣는 마을이야기는 할아버지가 고향의 사투리로 옛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같아 참 좋다. 이런 값진 얘기들을 그들에게서 공짜로 들을 때면 내가 포르투갈어를 할 수 있다는 게 감사하다.


나모라데이라 (Namoradeira) 인형



그리고 도착한 동굴. 사무엘은 그 곳 사람들과 잘 안다는 듯 반갑게 인사를 하며 어깨를 부딪힌다. 잠시 안전상 주의사항을 듣고는 알록달록한 헬멧을 쓰고 가이드와 함께 동굴로 들어간다. 심심했던 사무엘도 같이 헬멧을 쓰고 들어간다. 무너지는 게 아닌가 은근 걱정되어 빠른 걸음으로 좁은 통로를 통과한다. 개미굴 같은 미로를 다니며 가이드가 잠시 설명을 해준다. 어려운 단어들이 많아서 알아듣기 어려웠지만 알아들은 정보에 의하면, 약 10세 정도의 어린 아이들이 몸집이 작아서 굴에 들어가기 용이하기 때문에 어린 남자아이들도 탄광일을 했다고 한다. (여자는 부정 탄다고 들어가지 못하고 밖에서 다른 일을 한다.) 그리고 하루 종일 탄광 일을 해 인부들의 폐 속에 안 좋은 것들이 쌓여 보통 10~15년 후에 사망했다고 한다. 그저 금을 캐내며 부유함을 누렸을 거라고만 생각했는데 그 속은 너무나도 슬픈 진실을 갖고 있었다. 역시 이익을 취하는 이와 착취 당하는 사람은 따로 있구나라고 잠시 생각했다. 현재는 관광지가 되어 좀 더 안전한 생활을 할 수 있게 된 것 같아 다행이었다. 


생각보다 엄청난 게 있지는 않았지만 흥미로웠던 탄광 투어를 마치고, 여전히 호스텔 일은 뒷전에 두어 심심한 사무엘과 동네 구석구석을 다닌다. 현지 태생 답게 좋은 곳을 많이 알고 있어 따라다니기 좋다. 특히 내게 치근덕 대지 않아서 더 좋았다. 탄탄한 근육질 몸과 알맞게 땋은 레게머리와는 조금 달리 부끄러움이 많아 보이는 이 친구는 27살인데 2년전부터 이 호스텔에서 일하고 있다고 한다. 직원이자 주인이자 친구인 호드니와 함께. 내년에 마을에 있는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공부 중이라는 귀여운 친구다. 하지만 그는 또 다른 꿈이 있다. 바로 세계 여행이다.


“호스텔에서 일하면서 전 세계에서 온 여행자들을 많이 만나니까 나도 여행을 많이 다니고 싶었어. 사실 이 지역을 떠나본 적이 별로 없거든. 그냥 휴가 때 리우에 가는 정도? 나도 여행하면서 더욱 넓은 세상을 둘러보고 싶어져, 배낭 맨 여행객들을 보면.”


나 역시 현재진행형으로 원하던 대학교를 다니고 오랜 꿈이었던 남미여행을 하고 있던 사람으로서 그의 꿈이 꼭 이루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의 대학 진학과 남미여행이 결코 쉬웠던 것은 아니지만, 아마도 그에 관련된 조건을 갖추는 데에는 사무엘보다 조금 더 쉽지 않았을까. 그래서 나는 내가 하고 있는 이 여행과 공부에 더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느꼈다. 문득 사무엘과 이런 저런 꿈 얘기를 하고 있다보니, 나까지 가슴이 벅차졌다. 여행을 하고 있는 내가, 여행에 대한 꿈을 가진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가슴 벅차하는 이상한 느낌. 그는 나에게 또 다른 꿈을 심어주고 있었다. 지금 나에게 주어진 이 자유를 최대한으로 누려야한다는. 그 때 어디선가 종소리가 울린다. 아마도 이 곳의 중심 찌라덴치스 광장에서 울려퍼지는 것이겠지.


종소리가 낭만적인 이 곳에서 평화롭고 예쁜 마을 풍경을 보고 있노라면, 마음 깊숙한 곳에서부터 용기가 채워짐과 동시에, 앞으로 마주할 특별한 경험들이 이미 내 쪽을 바라보고 서 있는 듯해 얼른 달려가 안기고 싶은 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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