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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니카 May 03. 2020

한여름 밤공기를 채워주던 나의 동행들

브라질 여행 에세이- Praia da pipa (1)

브라질 여행 에세이 - Praia da pipa (1)


조금은 아쉽게 포르투 지 갈리냐스를 떠나 프라이아 다 피파 (praia da pipa- Pipa beach) 로 가기 위해 먼저 헤시피 고속터미널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애정하는 쨍쨍한 바깥의 여름 날씨를 시원한 에어컨이 나오는 버스 안에서 구경하던 중, 한 브라질 남자가 버스에 탄다. 운전기사와 주고 받는 말을 들어보니 그도 헤시피 고속터미널로 가는 듯 했다. 왠지 모르게 눈길이 가던 그의 한 손에는 이미 맥주병이 쥐어져 있었고, 버스가 정차하고 있을 때에도 중심을 잘 못 잡는 것을 보니 그의 비틀거림은 단연 버스 기사의 탓만은 아니었으리라 생각한다. 고속 터미널에 다다르자, 자연스레 나와 그 남자는 매표소 입구를 향해 두리번 거리다 눈이 마주친다. 


"터미널 입구가.. 여기인가?"

"음 그런 것 같아. 목적지가 어딘데?"

"어... PRAIA DA PIPA!"

"아, 그래? 잘됐네. 나도 거길 가던 중이거든. 나탈(Natal)까지 가서 다시 버스를 갈아타면 되는거지?"

"나탈까지 올라갔다가 피파로 다시 내려오는 건 너무 돌아가. 고이아니아(Goiania)에서 미니밴으로 갈아타는 게 더 빨라." 


여행 중 내국인과 동행하게 되면 이런 점이 좋다. 외국에서 온 여행자들이 알아낸 방법보다 아무래도 브라질인이 갖고 있는 정보가 훨씬 저렴+다양+시간 단축이 된다. 또한 브라질은 워낙 땅이 넓어 그들은 해외보다는 브라질 내의 다른 도시로 휴가를 많이 가기 때문에 브라질 여행 중에는 외국인보다는 브라질 사람을 더 많이 만나게 된다. 특히 북동부 지역이 그러하다. 

피파로 휴가를 가는 게 벌써 수 년째라는 이 남자의 이름은 호드리구(Rodrigo)이다. 첫 만남부터 대낮에 맥주에 취해 비틀비틀 걸어 다니더니 이 친구, 굉장히 어설프다고 해야하나. 브라질 사람이면서 나보다 길을 더 못 찾고, 이미 물어봐놓고 다른 사람한테 또 길을 물어보고 그런다. 말도 느리고 행동도 굼뜬 게 뭔가 믿음직스럽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덕분에 피파에 더욱 쉽게 갈 수 있었던 건 사실이다. 호드리구는 수도인 브라질리아에서 공무원으로 일하는데 휴가차 북동부 여행을 하는 중이다. 이미 북동부 바다를 많이 와본 경험이 있는 듯 버스 옆자리에 앉아 피파에 대한 칭찬을 쉬지 않고 해댔다. 내가 아직 숙소를 정하지 않았다고 하자, 그는 자신이 예약한 호스텔에 대한 칭찬을 이어서 늘어놓는다. '바닷가 절벽 위에 있는 멋진 뷰를 자랑하는 호스텔'이라는 말에 무작정 숙박 예약 사이트에도 나오지 않는 그가 예약한 호스텔에 따라 묵기로 했다. 


어차피 정해진 건 없는걸. 



어느새 밤이 되어 미니밴으로 갈아타기 위한 고이아니아에 도착하자 나와 호드리구, 그리고 다른 브라질 남자 두 명이 함께 내린다. 버스 아래 짐칸에서 각자의 짐을 내리며 또 자연스럽게 서로의 목적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역시나 이들의 목적지는 피파 비치. 든든한 브라질 남자 3명의 뒤를 쫄래쫄래 따라가 표시 없는 정류장에서 미니밴을 기다린다. 붙임성이 좋은, 사람 좋은 미소를 띄고 있는 하파엘과 엘톤은 죽마고우인 듯했다. 마침 그들도 예약된 숙소가 없는 터라 다같이 호드리구의 숙소에 가보자는 결론이 나왔다. 이렇게 갑자기 친구가 셋이나 생겼다.

한밤중 Goiania의 교회 앞 정류장에서 이야기를 나누던 그 순간이 참 영화 같았다. 비록 뒷편에는 거리의 사람들이 코를 골며 자고 있었지만, 밤공기는 완벽했고 성격 좋은 동행들이 생겼고 아직 도착하지 않은 피파에 대한 기대로 설레는 마음이 한가득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피파로 가는 미니밴 안에서 바라보는 작은 교회들과 밤하늘의 별들, 창문 틈으로 세차게 불어오는 바람이 그 때의 기억을 참 아름답게 꾸며준다. 이렇게 여행은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을 때 재밌어진다. 지금의 나, 잦은 여행으로 웬만한 건 그저 그런 것으로 받아들이는 나에게는 그렇다. 


선선한 여름 바람을 가르고 도착한 호스텔에는 다행히 남는 방이 있었다. 가운데에 마당이 있고 저 멀리는 검은 바다가 일렁이는 듯 파도소리가 간간이 들렸지만 밝은 불이 없던 그 곳을 제대로 파악하기는 어려웠다. 이미 해가 져 다른 숙소를 가보기도 어려워 별 주저함 없이 3박을 이 곳에서 묵기로 정했다. (그리고 이 간결한 결정은 정말 두고 두고 잘했다고 칭찬할 만한 일이 되었다.) 




다음 날 아침, 방문을 열고 나가자 환상적인 날씨에 파란 바다가 마당 너머로 보였다. 어젯밤에는 어둠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던 호스텔의 풍경이 드러났다. 호드리구의 말처럼 지난 밤 내가 묵었던 숙소는 프라이아 두 아모르 (Praia do amor-사랑의 바다) 이라는 해안가 절벽 위에 안정적으로 자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앞마당이 바다라니. 마구 소리를 지르며 호들갑을 떨고, 바다 냄새를 맡고, 해먹에 누워 그 분위기를 만끽했다. 흥분한 나를 보고 호드리구가 와서 으쓱이며 뿌듯한 표정을 지어보인다. 

 


PRAIA DO AMOR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숙소



"어때굉장하지?"

"너가  곳에 매년 오는 이유를 알겠어어쩜 이런 곳에 호스텔이 있을  있지  받아야 하는거 아니야?"

넓은 바다 멀리서부터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실컷 바다 냄새를 맞는다. 주체하지 못하는 기쁨에 호스텔 조식을 얼른 해치우고 수영복으로 갈아입은 뒤  명의 든든한 친구들과 호스텔에만 연결된 가파른 길 타고 내려가 아모르 비치로 향했다.

 

서퍼들의 천국이라는   아모르 치는 피파의 메인 바다  하나로이미 많은 서퍼들이 알록달록한 보드를 들고 바닷가로 나와있었다심지어는 초등학교 저학년생으로 보이는 작은 아이가 자신의 신체 길이에 알맞게 비례하는 작은 보드를 타고 있었는데요리조리 파도를 넘어가는 서핑 실력이 수준급이라  곳은 도대체 뭐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신이 난 하파엘과 호드리구 



‘그래, 서핑으로 유명한 바다라면 나도 안 타볼 수 없지!’

해변 곳곳에는 원데이 서핑 스쿨이 가능하다는 글씨가 적힌 서핑 보드가 눈에 띄었고, 그 중 적당한 가격을 골라 2시간짜리 강습을 신청했다. 나의 선생님은 검은 피부와 로컬 사투리가 강하게 느껴지는 흑인 아저씨였다. 잘 하고 오겠다며 동행들을 안심시키고 뒤를 돌아 바다로 향했지만, 초보자용 긴 보드를 파도에 맞서 깊은 곳으로 데려가는 것조차 버거웠다. 앞으로 나아가려고 하면 파도를 맞은 보드가 밀려나와 나를 때린다. 이 때 예감 했었어야 했다. 아모르 비치는 서핑하기에 최적이지만 그 말은 중급자들에게만 해당된다는 것을.

‘역시 브라질 바다는 이 파도 맛이지’ 하며 꿋꿋하게 짠 물을 마셔가며 선생님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 긴장한 탓인지 아님 선생님의 사투리 억양이 강해서인지 평소보다 절반밖에 알아듣지 못한다. 그냥 일단 보드에 올라타고 본다. 사실 나보다 더 고생하는 것은 파도가 오는 타이밍을 엿보다가 온몸을 파도를 맞아가며 적시에 뒤에서 보드를 밀어주는 선생님이다.


“잘 들어. 발뒤꿈치를 들고 엎드려 있다가, 내가 지금이야! 라고 외치면 바로 팔을 밀어서 일어나야 해. 무릎을 대지 말고 한 번에! 알아들었지?”

머릿속으로는 알겠지만 글쎄, 내 몸이 한번에 내 마음을 따라가 주리라고는 곧바로 기대하지 않았다.

“저기 뒤에 오는 파도 보이지? 이제 저 파도를 타고 나갈거야. 얼른 올라타서 아까 말한 자세로 대기해. 내가 신호 줄게.”

“넵!”


온다, 온다, 파도가 온다!

“지금이야!”

무릎을 대지 말고 한번에…!! 


일어날 리가 없지. 내 몸뚱아리가.

일어서려고 팔을 펴자마자 보드가 기울더니 그대로 파도에 휩쓸린다. 그리고 휩쓸렸던 그 보드는 내게서 벗어나 자유를 만끽하다가 발에 묶여져 있던 줄에 의해 반동으로 내게 다시 돌아왔다.

보드의 모서리는 정확히 내 이마를 강타했고, 물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아픔을 느껴야만 했다.

그런 시도를 5번쯤 하고 나자 몇 초간 일어서는 게 가능해졌지만 그와 동시에 이 곳 파도가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마지막에는 다리에 쥐가 나 모랫바닥에 그대로 주저앉아 더 이상 할 기력이 없다는 표정으로 선생님에게 어필했다. 하지만 도대체 왜 나보다 선생님의 의욕이 더 넘치는 것인가.

“아직 시간도 다 못 채웠는데 마지막으로 딱 한 번만 더 하자. 이제 완벽하게 탈 수 있을 것 같아!”

“아니 난 일어서 봤으니까 이제 괜찮은데…”

“아직 아니야 이 아모르 비치를 제대로 느껴봐야지!”


마지막 파도인 만큼 멋지게 성공하리라 다짐한다. 하지만 바다는 나에게 그 기회를 주지 않았고, 대미를 장식하듯 가장 큰 파도에 휩쓸린다. 보드를 부여잡고 정신을 차려보니 선생님이 혼잣말로 욕을 하며 씩씩대고 있었다. 그의 새끼손가락은 있던 반지가 빠졌다는 것을 증명하듯 태닝 되기 전의 맨살 자국이 드러나 보였다. 그의 결혼반지를 강한 파도가 가져가 버린 것이다. 괜한 미안함에 고개를 들지 못하고 얌전히 보드를 끌고 바다에서 나왔다. 

선생님은 연신 '미친 바다'라며 욕을 해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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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에는 해가 떨어지는 것을 숙소 해먹에서 바라보며 밀린 일기를 잠시 쓰고 배를 채운 뒤 근처 레게 클럽에 가 다같이 흐느적거리다가 돌아왔다. 남자 동행들과 같이 다니니 어두운 곳을 돌아다닐 때에도 긴장할 필요가 없었고, 클럽에서도 불편한 눈빛이나 인종차별, 터치가 없어서 편했다. 그리고 이 친구들 자체도 굉장히 편안한 느낌이다. 다들 취향이 비슷했고, 누구하나 튀지 않았고, 주도하려는 사람 없이 평화롭게 하루가 흘러갔다. 이렇게나 얌전한 브라질 사람들이라니. 특히 엘튼은 혼자 여행하는 동안 사진을 많이 남기지 못했던 날 위해 본인이 열심히 포즈를 취해보이며 내 포토그래퍼가 되어주었다.

돌아온 숙소 마당에는 마치 수련회 날의 캠프파이어처럼 누군가가 불을 지펴 놓았고 그 주위로 커다랗게 여행객들이 동그라미를 그려 앉았다. 만약 혼자였더라면 쭈뼛쭈뼛 주위를 서성이며 어느 그룹에 껴야 할지 간을 보느라 식은 땀을 흘렸겠지만 오늘은 아니다!

나를 포함한 네 명도 어느 한 귀퉁이에 자리를 잡았다. 누군가는 기타를 치며 누군가는 또 그것을 듣고, 어떤 이들은 오늘의 여행 이야기를 나누고, 바로 옆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닷바람을 온몸으로 맞는다. 

브라질 음악을 좋아하냐는 엘톤의 질문에 주저없이 natiruts 를 외쳤고, 그가 바로 노래를 틀어주었다. 흥얼거리다보니 자연스레 허밍에 가사가 더해지고 노래가 되었다. 평소라면 민망하고 오글거린다며 절대 하지 않았을 행동이지만, 정말 자연스럽게 노래가 나왔다. 


Quero ser feliz também, navegar nas águas do teu mar 

Desejar para tudo que vem flores brancas, paz e Iemanjá



그 공간이 만들어낸 분위기에 취해버렸... 말도 안돼. 자발적 노래라니. 하지만 그 때는 노래를 부르는 행위 자체가 나를, 그리고 주위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든다고 확신했다. 자연스럽고도 이상한 일이었다. 노래방을 좋아하지 않는 내가 이곳에서는 소리를 내면 낼수록 기분이 좋아졌다. 어느새 듣고 있던 호드리구도 음을 얹어 같이 노래 했다. 의도치 않은 남여 듀엣이 완성되자, 감격에 겨운 듯한 엘튼이 우리를 향해 '정말 아름다운 남녀이지 않냐'며 하파엘의 공감을 구한다. 그도 고개를 끄덕인다. 


이 곳의 공기가, 사람들이, 바다 냄새가, 밤하늘이 사람을 이상하게 만든다. 

다들 여름바람에 취한 듯하다. 



어스름해진 오후 늦은 시각의 AMOR BEA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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