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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니카 May 12. 2020

돌고래가 사는 바다

브라질 여행 에세이 - Praia da Pipa (2)

오늘은 기다리고 기다리던 바로 프라이아 두스 골피뉴스 (praia dos golfinhos-돌고래들의 바다)에 간다.


돌고래들의 바다. 이름부터 신비하다. 돌고래가 사는 바다라니 도대체 어떤 곳일까. 정말 내가 볼 수 있긴 한 걸까? 먼 옛날 돌고래들이 나타나서 이랬다더라 하는 전설에 그치는 바다가 아닐까 괜한 실망을 할까 싶어 기대는 하지 않기로 했지만 이미 마음 한 켠에서 그 곳은 보통 해변이 아닐 것이라는 작은 확신이 튀어나오는 걸 무시할 수는 없었다.

 

돌고래 해변은 어제 갔던 아모르 비치와는 다르게 꽤나 접근하기 어려운 곳에 위치해 있었다. 바닷물이 깊게 들어차있어 이끼 낀 바위들을 아슬아슬 밟으며 바닷가를 빙 둘러 가기를 삼십 분. 그 동안 등 양쪽으로 맥주와 코코넛열매를 가득 짊어지고 위태위태하게 바위사이를 건너가는 당나귀가 우리를 제친다. 아마 우리가 평소의 2배 가격이나 주고 파라솔에 누워 마실 것들이겠지. 마침내 절벽의 코너를 도니 말도 안되는 광경이 펼쳐졌다. 영화에나 나올법한 적분홍색 절벽 밑으로 폭이 10m가 될까말까한 좁고 하얀 모래사장이 늘어져 있고, 바로 그 앞으로 하늘색 바다가 잔잔히 넘실대고 있었다. 바닷물이 모래사장을 위협하듯 절벽 가까운 곳까지 물이 들어차있고 그 곳에는 몇 안되는 초록색 파라솔이 정갈히 놓여있었다. 돌고래가 사는 곳이라는 타이틀이 매우 어울리는 분위기였다.


드디어 왔구나! 돌고래들의 바다에!





 아직 사람이 들어차지 않은 파라솔 중 적당한 곳을 하나 골라 쪼리를 벗어놓고 얼른 바다로 뛰어들었다. 하늘색이 어쩜 이렇게 하늘색 같은지. 이 곳 바다에 누워 바라보는 하늘은 정말 유치원 때 쓰던 크레파스의 하늘색을 가지고 있었다. 조금의 탁함도 느껴지지 않았다. 파도와 바람이 세지 않고 적당해서 바다위에 등을 대고 눕기에 딱이었다. 내가 할 줄 아는 수영은 오로지 배영뿐인데, 바다에 한가롭게 누워 하늘 구경 하는 것을 좋아하다보니 그렇게 되었다. 해가 정면으로 비치는 것을 피하기 위해 발장구를 살살 쳐가며 방향을 바꾼다. 그 어떤 것으로부터 방해받지 않고 온몸으로 찰랑이는 바다를 느낄 수 있음에 감사했다. 


이번 여행 중 최고로 행복했던 순간임을 확신할 수 있었다.


모든 것이 평화롭고 상쾌하며 전설처럼 돌고래가 나타나지 않아도, 그저 이름의 유래만 남겨두고 떠났다 하더라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바다였다. 그렇게 실컷 수영(혹은 물 위에 떠있기)을 하다가 시선을 따라 문득 해변가의 깎아지르는 적분홍색 절벽을 인식하게 되면 감상하느라 또 시선을 빼앗겨 버린다. 저 위에 올라가면 무엇인가 살고 있을 것 같은 느낌. 이미 머릿속으로는 영화나 소설 한 편을 쓰게 만드는 무언가가 이 곳에는 있었다. 


 



사람들이 점점 모여들기 시작한 정오가 되었을 때쯤, 갑자기 여기저기서 탄성이 나왔다. 

뭐지? 시야를 돌린 순간 뭔가가 물 속에서 휙 튀어나왔다가 풍덩 들어갔다.


 “Olha, golfinhos!(돌고래들이야 봐봐!)”


설마, 방금 그게 돌고래였다고? 제대로 보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기도 전에, 저 멀리서 사람들의 소리가 들리더니 돌고래가 다시 수면 위로 점프한다. 진짜네! 진짜 여기 돌고래가 사는 곳이 맞구나! 그런데 한 두마리가 아니었다. 심지어 저 멀리 있는 것도 아니고 사람들이 해수욕을 즐기고 있는 범위 내로 돌고래들이 자유롭게 뛰어오르며 중간중간 나선형의 아름다운 굴곡을 드러낸다.


말도 안돼... 그냥 이렇게 맨눈으로 보인다고??


이미 저 멀리에는 돌고래를 구경하기 위한 사람들을 가득 태운 보트 몇 대가 서성이고 있었다. 하지만 저런 투어를 할 필요도 없을 것이, 돌고래는 꽤나 사람이 수영하고 있는 곳 가까이까지 와서 헤엄을 쳤다. 저게 돌고래가 아니라 상어였다면 나는 이미 저 세상 사람이겠지 하는 상상을 잠시 해보았지만 이내 귀여운 돌고래들의 울음소리에 주의를 빼앗기고 만다. 겁도 없는 녀석들. 사람을 경계하지도 않고 여기저기 누비고 다닌다. 아니, 생각해보면 우리가 돌고래들의 영역에 침범한 것이니 우리가 겁이 없는 건가. 사실 돌고래들이 우리를 더 신기하게 생각할 수도 있는 것이다.

아무튼 누가 먹이를 주는 것도 아닌데 자발적으로 해변가에 나타나다니. 마치 인간이 놀라고 반기는 반응이 보고 싶어 주위를 맴도는 것 같았다. 어디서 튀어 오를지 모르는 그 귀여운 생명체를 두 생눈으로 포착하기 위해 눈 깜빡이는 횟수도 줄여가며 바다 표면을 살핀다. 무리지어 나타날 줄 알았는데 한두마리가 사방에서 게릴라 공연을 펼친다. 내가 브라질에 와서 가장 좋았던 것은, 동물원 유리벽을 사이에 두고 구경하던 동물들을 이렇게 아무 장애물 없이(보호장치 없이라는 말도 된다) 자유롭게 보고 들을 수 있다는 것이었는데 돌고래가 뛰어노는 것을 가까이서 본다는 건 그 이상이었다.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은 아름다운 포유류들은 자신들의 귀여움을 다 보여줬다고 생각이 되었는지 왔을 때처럼 또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시선을 거둔 사람들은 서로 자신이 느낀 돌고래의 이미지를 들뜬 마음으로 말하기 바빴다. 자신의 모습을 우리들에게 기꺼이 드러내 준 그들의 출몰은 이 해변의 분위기를 더욱 신비롭게 만들었다. 돌고래가 없어도 이 곳에 만족한다고 생각했던 불과 3시간 전의 나는 이미 과거 속 인물이었다. 


돌고래가 떠난 뒤 아무일 없었다는 듯 다들 다시 원래의 위치로 돌아가 수영을 하고 카약을 타고 코코넛 음료를 마시지만 선글라스 너머로는 눈을 감고 그 아름다운 움직임을 떠올릴 것이다. 


여전히 귓가에는 돌고래 울음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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