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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 반디 Oct 19. 2023

이민이나 해외유학은 아무나 가나

한국 교육 환경이 미안하면 다른 방법을 찾더라도.

2015년 즈음, 아침에 눈을 뜨면 미세먼지 어플부터 열고 오늘의 미세먼지 수치를 확인했다. 첫째가 돌이 지났을 무렵이었고 유모차에 태우고 하루에 몇 번은 산책을 나가는 것이 일상이었으나 하늘이 뿌연 날이 많았다. 미세먼지 나쁨이 이슈가 되는 날들이었고 나도 생전 처음 '공기청정기'를 사서 거실에 들여놓았다. 어떤 제품을 사용해야 집에서라도 좀 더 깨끗한 공기를 마실 수 있을까 몇 날 며칠 고민하고 검색하다 보니 남편이 한 마디 했다. 


"공기청정기 전문가 될 거야?" 


이제 적당히 골라서 사지...라는 말로 들렸지만 굴하지 않고 열심히 공기청정기를 연구하고 연구한 끝에 스웨덴의 혁신기술이 녹아있다는 블루에어 제품을 주문했다. 미세먼지 나쁨인 날 공기청정기를 열심히 돌렸지만 2살 아기를 데리고 밖에 나가기에는 망설여졌다. 


'아기들은 열심히 세상을 구경해야 하는데... 아이들은 밖에서 신나게 뛰어놀아야 하는데.. 앞으로도 공기 상태가 이러면 어쩌지...?' 걱정이 쌓여갔다. 


도시보다는 농촌이 좀 더 나으려나, 서쪽보다는 동쪽이 그래도 낫겠지?(사실 울릉도 이사까지 생각해 봤을 만큼 그땐 절실했다) 아기 데리고 공기 좋은데 이사 가고 남편과 주말부부라도 할까? 아니야... 한국에서는 어딜 가더라도 미세먼지에서 자유롭지 못할 거야, 차라리 공기 좋은 곳으로 이민 가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늘이 회색빛이 되는 날엔 고민이 더 깊어졌고 어디로 이민 갈지 구체적인 나라까지 생각해 보게 됐다. 캐나다에서 대학교를 다니던 친한 동생에게 구체적인 조언을 구하기도 했고 열심히 온라인 이민 관련 카페를 찾아다니며 방법을 모색했다.


"여보, 해외에 이민 가서 살면 어떨 것 같아? 부모님들과 떨어져 사는 것 괜찮을까?"

그렇게 남편과 진지하게 상의까지 해보았으나, 이민을 가는 것은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 가서 어떻게 먹고 살 것인지에 대한 계획부터 이민에 드는 비용과 정착 비용도 만만치 않았고 무엇보다 남편도 나도 가족 지인들과 떨어져 지낼 자신이 없었다. 


이민이나 해외 생활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본 건 아이들 교육에 대한 고민도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아이를 낳은 시점의 교육 현실은 내가 학교 다닐 때와 크게 달라진 것이 없었다. 오히려 아이들이 학습을 본격적으로 하는 시기가 더 빨라졌고, 학창 시절 가장 중요한 것은 학교 성적이었다. 가까운 사람들이 육아에 정성을 쏟고 아이와 시간을 귀하게 보내려 애썼음에도 결국엔 아이들의 성적이나 입시 결과에 따라 아이를 잘 키웠는지 평가받고 자책하는 것을 볼 때면 안타까웠다. 입시 제도를 비롯한 교육의 끝없는 경쟁이 열등감과 우월감, 비교 의식을 만들어냈다는 걸 느낄 때가 많았다.  


나 역시 대학교 입학 이후 열등감으로 한 없이 움추러들었던 사람이었다. 학창 시절 열심히 공부했는데도 한 번의 시험으로 패배자가 된 것만 같아 신입생의 설렘보다는 좌절감이 더 컸다. 남들보다 더 늦춰져서는 안 된다는 조바심은 때때로 나를 괴롭혔다. 조리원에서도 모유 먹이는 다른 산모 앞에서 아이에게 젖병을 줄 때 좌절감을 느꼈고, 내 모유는 언제쯤 많이 나올까, 아이는 쑥쑥 클까 안절부절못했고 아이가 태어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자꾸 남들과 비교하는 내 모습을 보게 됐다. 


'저 사람은 잘하는데 나는 왜 못하지'가 아니라 '저 사람은 저걸 좋아하는구나, 나는 이걸 좋아하는데' 하는 마음을 아이들이 가지길 바랐다. 그러려면 학교 다니며 친구들과 경쟁하고 좋은 성적이나 등수를 목표로 공부하는 것은 좀 위험하다. (소위 사람들이 말하는) 좋은 대학을 가는 것이 교육의 첫 번째 목표인 한국에서, 성적이 가장 우선이 되고 어릴 때부터 경쟁에 놓이는 이곳에서 내 소신대로 아이를 키울 수 있을까. 


"어릴 때부터 경쟁해야 하는 현실이 싫어서 아이들 유학 보내기로 했어요"

"한국 교육 환경이 아이에게 미안해서 해외에서 살아볼까 합니다"


이런 글을 볼 때면 '나도 비슷한 생각인데... ' 하면서도 제주도 여행조차 비용을 따지고 고민해야 하는 처지에 한숨이 나왔다. 엄마가 이렇게 상심하는 순간에도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아이는 집안 곳곳을 헤집고 다녔다. 유모차 바퀴를 굴리며 장난치느라 얼굴은 시커멓고 냄비 뚜껑을 얼굴에 올리면서도 뭐가 그렇게 즐거운지 한참을 웃는다.  


'저 꼬물이는 엄마가 이런 걱정을 하는지도 모르겠지~'

아이를 낳고 몇 년도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내 힘이나 의지로 할 수 없는 일들을 마주했다. 

'엄마가 너를 더 좋은 환경에서 키우고 싶은데 그럴 능력이 없어서 미안해'

하지만 나를 바라보는 아이의 눈빛이 너무 해맑다. "엄마, 괜찮아요" 말해주는 것처럼. 


그래, 해외에 나가야만 자유롭게 키울 수 있나 뭐, 한국 교육 환경이 미안하면 다른 방법을 고민하면 되는 거지.

일 년 내내 미세먼지가 나쁜 것도 아닌데 뭐, 캐나다 맑은 하늘 좀 부럽긴 하지만 이민 안 가면 어때! 공기 좋은 날 종일 밖에서 놀면 되지~! 


"여보!!  오늘 공기 정말 좋아. 이런 날 집에 있으면 큰일나. 얼른 유아차 끌고 나가자~"


날씨만 좋으면, 공기만 좋으면 무조건 나갔던 그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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