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이 주는 공짜 혜택을 어릴 때 마음껏.
아기가 유아차를 타고 다니고 막 걷기 시작할 때는 집 안 여기저기, 그리고 집 앞 작은 공원도 아이에게는 정말 큰 세상이다. 남편 회사와 내가 다니던 회사 위치를 고려해 2호선 지하철역 바로 앞에 신혼집을 구했고 다행히도 집 바로 앞에 근린공원이 있었다. 아이를 낳고 나니 그 작은 공원이 얼마나 고맙던지. 유아차를 끌고 산책하기에도 좋고 아이가 제법 잘 걸어 다닐 땐 날씨 좋은 날 틈만 나면 공원으로 나갔다. 공원 땅바닥에 줄지어 기어 다니는 개미, 산책 나온 강아지, 공원 한쪽 작은 놀이터에서 뛰어노는 아이들까지.
아이는 호기심으로 그 모든 것을 탐색했고 가만히 앉아서 구경만 해도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어디 멀리 돈 들여 여행 갈 필요도 없었다. 아이가 어릴 땐 집 근처 동네로도 충분했다. 아이에겐 매일 봐도 질리지 않고 새로운 세상이니까. 현관 앞에 세워둔 유아차 앞에서 얼른 나가자고 신호를 보내고, 아직 말은 잘 못해도 신발을 흔들며 바깥세상을 보고 싶다고 의사 전달을 확실하게 한다.
첫째가 3살 때 둘째가 태어났고, 두 달 정도 밀양 시가에서 지내게 되었다. 시골에는 놀이터도 없을 텐데.. 장난감도 없고.. 심심해하지 않을까 했는데 괜한 걱정이었다. 아이는 날마다 할머니와 가끔은 나와 동네 마실을 나갔다. 놀이터는 없었지만 강둑을 마음껏 뛰어다녔고 장난감은 없었지만 시골길에 앉아 지나가는 차를 구경하고 가끔 벽에 붙은 개구리를 보다 보면 몇 시간이 금방이었다.
강둑에는 이름 모를 풀이 가득했고 남편에게 식물도감 책을 부탁해 첫째와 꽃, 나무, 풀들을 찾아보았다. 돌멩이를 주워 강물에 던지는 것만으로도 아이는 즐거워했다. 하루 종일 나비 쫓아다니느라 땀을 흘리고 나면 잠도 잘 자고 밥도 잘 먹었다. 둘째가 태어나면 첫째가 시샘도 하고 스트레스도 받는다는데. 다행히 아이는 더 자유로워 보였고 해맑았다. 시골에서 보낸 두 달간의 시간이 아이에게 더없이 귀한 시간이었다는 걸 아이를 보며 느꼈다. 특히 돈이 있는 사람에게나 없는 사람에게나 자연은 공정하다는 걸, 누구나 누릴 수 있는 게 자연이라는 걸 점에서 '자연이 주는 혜택'을 아이들이 어릴 때 맘껏 누리게 하고 싶었다.
둘째가 5개월 때 다시 서울에 올라왔고 복직할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다. 첫째를 낳고 육아휴직 기간이 끝날 즈음에도 맡길 곳이 없어 복직하기 힘들었다. 양가 모두 멀리 떨어져 있어 돌봄의 도움을 받기 어려웠고 아이를 돌봐주실 분을 찾아보려 해 봤지만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다. 다행히 오랫동안 일했던 회사의 배려 덕분에 아이를 맡길 수 있을 때까지 집에서라도 일하게 되었다. 하지만 둘째를 낳고 2살 터울의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맡기고 다시 직장을 나갈 수 있을까 오랜 고민 끝에 회사를 그만두기로 했다. 10년 정도 했던 일을 그만둔다는 건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내가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를 생각하기로 하니 마음이 조금은 가벼웠다. 내가 해줄 수 없는 것 대신,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에 집중하자는 마음으로.
서울에 다시 돌아와서 두 아이와 복작거리며 지내면서도 마음 한쪽에는 아이들을 자연에서 키우고 싶다는 생각이 가득 찼다. 그렇다고 당장 농촌에 내려가 살 수도 없는 일, 남편의 직장도 중요하니까.
"그렇다면, 서울에서도 숲이나 산이 있는 동네를 찾아보자!"
전세 만기가 끝나면 큰 공원이 가깝거나 산이 가까운 곳으로 이사야겠다고 결심하고 열심히 서울 지도를 탐색했다. 서울숲 주변, 우장산이나 까치산 근처, 난지천과 하늘 공원 주변 동네를 열심히 찾아보았고 출퇴근이 아주 멀지 않으면서도 우리가 가진 돈으로 지낼 수 있는 곳들을 알아보던 와중에 갑자기 남편 회사 어린이집에서 자리가 생겼다는 연락이 왔다. 혹시나 하고 첫째 태어나자마자 대기를 걸었다가 잊고 있었는데 2017년 1월, 갑자기 추가 모집을 하며 연락이 온 것이다. 그때로부터 6년이 지난 지금 생각해 보니 자연 곁에서 살고 싶다는 나의 간절한 바람이 가닿았나 보다.
멀리 이사하는 게 망설여져서 어린이집 등록을 취소한다고 했다가 후회했다. 4살 첫째와 2살 둘째를 같이 가정보육하다 보니 내 체력도 바닥이 나는 중이었다. 관악산 근처면 내가 원하던 동네이기도 한데, 무엇보다 직장어린이집이다 보니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까지 어린이집에 보낼 수 있다는 이점도 있고. 유치원비도 만만치 않은데 두 아이를 어린이집에 쭉 보낼 수 있다면 꽤 괜찮은 선택인데.
'아... 여기가 딱인데'
이미 다음 대기 순번에 연락이 갔다는 소식을 듣고 후회하고 있을 때 다행히 어린이집 입소 연락이 왔다. 하늘이 도운 것인가! 부랴부랴 전셋집을 구해 2월 말, 관악산 아래로 이사를 왔다. 급하게 구한 집이었지만 아파트 1층이라 층간소음 걱정을 덜 해도 되니까 이 또한 애들에게는 다행이었다. 하지만 산 아래 아파트 1층의 겨울은 혹독했다. 큰 방에 앉아 둘째 수유하다가 등이 차갑게 얼 뻔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어린이집 생활을 처음 해 본 첫째는 노란 콧물을 줄줄 흘리며 혹독한 적응기를 보냈으며 덩달아 두 달 내내 감기를 달고 살았던 둘째를 데리고 몇 달 내내 병원을 찾아다녔던 기억이 난다. 지하철역도 멀고 언덕배기 동네라 유아차 끌고 다니며 고생도 했지만 봄이 오고 아파트 바로 옆 산에 노란 산수유가 피는 걸 보며 나도 아이들도 새로운 동네에 적응해 갔다.
자연 속에서 신나게 뛰어다니는 아이로 자라길 바라며, 자연이 주는 기쁨을 자연스레 배우길 바라며 아이들을 자연 속에 떠밀고 싶었던 시간들이 많았다. 집 앞 놀이터와 뒷산 덕분에 어디 멀리 놀러 가지 않아도 아이들은 놀 거리가 충분했다. 덕분에 아이들 어릴 때도 키즈카페나 놀이 공원에 가 본적이 손에 꼽을 정도다. 이곳에 살면서 돈 들이지 않고도 신나게 놀 수 있는 자연의 고마움을 알아갔다. 물론 겨울마다 세탁기가 얼고 산 옆이라 여름 초가을이면 놀이터에서 아이들은 모기밥이 되었지만. 모기에게 여기저기 물리며 가려움과 싸워가면서도 친구들과 노는 시간을 결코 포기하지 않는 아이들의 열정을 보았다. 얼굴과 팔다리가 그을려갈수록 아이들의 체력도 좋아졌다. 열심히 뛰어노니 밥도 잘 먹고, 잠도 잘 자는 선순환. 게다가 내가 특별히 놀아주거나 재미있게 해 주려 노력하지 않아도 멀찌감치 지켜보는 것으로도 충분했으니 "뭐 하고 놀아주나" 고민이 훨씬 줄었다.
6년 동안 관악산 아래에서 뒹군 아이들은 거침이 없이 논다(그래서 웬만하면 구멍 나지 않는다는 패딩이 1년 만에 뜯어지고 해지기도 하지만). 에너지가 넘치고 밝다(가끔은 너무 넘치고 너무 밝아 감당이 안되지만, 엄마는 정적일 때도 많은 사람인데 아이들이 이리도 활기찬 건 자연에서 뒹굴며 놀았던 덕이 큰 것 같다). 자연과 함께한 경험들이 쌓이고 쌓여서일까. 변화에 잘 적응하는 것 같다. 관악산 아래로 이사 온 덕분에 신나게 뛰어노는 아이들의 세계를 더 진지하게 탐구할 수 있었다. 자연 곁에서 뛰어놀기 예찬론자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