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맘을 선배로 둔 후배의 고백
“팀장님, 저는 그렇게는 못 살 것 같아요.”
후배가 조심스럽게 건넨 말이었다.
퇴근 후 지친 몸으로 아이를 돌보며 또 다른 하루를 시작하는 나를 보며, 후배는 자신의 미래를 그려보았던 모양이었다.
아침에는 등원 준비로 분주했고, 낮에는 팀장으로서의 업무를 소화했으며, 퇴근 후에는 엄마로서의 삶을 이어가야 했다.
그런 일상을 이어가는 나의 모습을 보며 후배는 솔직한 마음을 내비쳤다.
우리 사무실에는 미혼 여성 직원들이 더 많다.
아직 아이를 낳거나 키운 경험이 없기에 워킹맘의 삶을 완전히 이해하는 것은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후배들이 이해하려는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늘 고마움을 느꼈다.
내가 일하는 곳의 워킹맘들은 모두 중간관리자급이었다.
팀원들과 같은 양 또는 그 이상의 업무를 맡는 것은 물론이고, 그에 따른 책임을 감당했다.
팀원들의 서류 결재부터 슈퍼비전, 회의 등 빠짐없이 해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하루가 끝나는 것은 아니었다.
퇴근 후에는 아이를 돌보고 식사를 챙기고, 씻기고, 다음 날을 준비해야 했다.
눈을 붙이기도 전에 다시 하루가 시작되는 삶이었다.
이렇게 살아가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누군가는 이토록 고된 삶을 ‘워킹맘’이라는 한 단어로 간단히 요약하지만, 그 안에는 포기와 타협, 수많은 눈물과 자책이 숨어 있다.
서로 비슷한 환경에 있는 워킹맘들조차 각자의 고됨을 제대로 나누긴 어려웠다.
일하는 방식도, 아이의 성격도, 지원해 주는 가족의 정도도 다르기에 서로의 고단함을 가늠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종종, 워킹맘인 우리들끼리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 채 각자의 외로움을 품고 살아갔다.
최근에는 육아휴직을 마친 여직원이 결국 복직을 포기하고 전업맘의 삶을 선택했다.
일을 포기한 뒤에도 여전히 후원을 하는 등 도움을 주고 있었지만, 그 순간부터 그녀의 경력은 멈춰버렸다.
여성이 일하기에 좋은 환경이었더라면, 엄마가 되었다는 이유로 커리어를 내려놓는 결정을 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속상했다. 그리고 안타까웠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사례가 우리 회사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기사에서는 어떤 기업에서는 대놓고 육아휴직 후 퇴사를 종용한다고 했다.
그런 소식을 접할 때마다 ‘우리는 그나마 나은 환경에 있는 걸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 또한 기준이 너무 낮은 게 아닐까, 스스로에게 되묻게 되었다.
출산율은 해마다 낮아지고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4년 합계출산율은 0.72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저 수준이다.
정부는 육아정책, 출산장려금 등 다양한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여성들이 현실 속에서 목격하는 ‘워킹맘의 삶’은 여전히 너무 고되다.
특히 일에 대한 열정을 가진 여성일수록, 아이를 낳는 것이 커리어의 끝이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출산을 주저하게 된다.
실제로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자료에 따르면, 기혼여성의 출산 포기 사유 중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한 것이 ‘일과 육아의 병행 부담’이었다.
그렇다면 과연, 후배들이 “그렇게는 못 살겠다”라고 말하는 그 삶은 단지 개인의 선택과 노력의 문제일까?
아니다.
이는 사회가 여성에게 ‘양립 불가능한 두 세계’를 동시에 감당하라며 떠넘긴 구조적인 문제다.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여성들이 아이를 낳는 순간 자신의 커리어를 멈추거나 포기할 준비를 한다.
워킹맘의 현실이 생존과 같다는 인식은 단지 후배들의 개인적인 감상이 아니라, 이 사회가 보여준 결과이기도 하다.
나 역시 이 삶이 마냥 자랑스럽고 단단하지만은 않다.
버티는 힘보다는, 내려놓지 못하는 책임감과 가족을 위한 의무감이 더 클 때가 많았다.
그래서 후배들이 “그렇게는 못 살겠다”라고 말할 때, 그 말이 비난으로 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그 말 안에는 ‘나는 그렇게까지 아프고 싶지는 않아요’라는, 조심스러운 진심이 숨어 있었다.
언젠가는 후배들이 “워킹맘도 할 만하더라”라고 말할 수 있는 환경이 되었으면 한다.
엄마가 되어도 일할 수 있고, 일하면서도 아이와 건강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사회.
그리고 그런 삶을 선택해도 외롭지 않은 세상.
출산율을 높이기 위한 정책이 실효를 거두려면, 바로 이 지점부터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