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함께 출근을 하게 되면서 회사에 도착하는 시간은 평균적으로 늦어졌지만 출근 준비 시작 시간은 1시간 정도 빨라졌다.
아침마다 전쟁이 시작된다.
‘오늘은 아이가 잘 일어나 줄까.’
포근한 이불속, 아이의 고른 숨소리가 방 안을 채운다.
순간, 이 평화로움을 깰 용기가 들지 않는다.
하지만 출근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일어나야지~ 예쁜 딸~~”
아이는 눈도 뜨지 않은 채 등을 돌린다.
불러도, 흔들어도, 조용히 등을 어루만져도 한참을 버틴다.
매일 아침 되풀이되는 첫 번째 고비다.
겨우 눈을 뜨고 일어났을 땐 이미 체력의 반은 소진된 느낌이다.
아주 어릴 땐 오히려 간단했다.
씻기고, 입히고, 먹이고, 데리고 나가기까지 내가 해버리면 끝이었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스스로’ 해야 할 시기.
혼자 옷을 입고, 스스로 수저를 들어야 하는 때가 왔다.
해주는 것이 더 빠르고 편하지만, 그렇게 해버리면 안 된다는 걸 안다.
그래서 기다리고, 또 다그치고, 다시 기다린다.
알면서도 그게 잘 되지 않을 때도 물론 있다.
식탁에 앉혔다고 끝이 아니다.
눈은 다른 데 가 있고, 손은 멈춰 있고, 밥숟갈은 좀처럼 들지 않는다.
시간은 속절없이 흐르고, 초조함이 목 끝까지 차오른다.
더 늦을 수는 없기에 결국 식사를 중단시킨다.
한 숟갈이라도 더 먹고 싶다는 아이의 말에 마음이 흔들리지만
“그러니까 장난치지 말고 먹으랬지. 시간이 늦어서 안돼.”
라며 양치컵을 건넨다.
양치 시간은 또 다른 전쟁이다.
거울 앞에서 장난을 걸고, 칫솔은 손에 들고 있지만 입은 딴 데 가 있다.
장난도 귀여운 건 여유가 있을 때 이야기다.
속이 타들어 가는 마음에 한 소리라도 하게 될까 봐 나 스스로를 붙잡는 게 더 힘든 순간이 많다.
겨우 겉옷을 입히고 현관문 앞에 섰다.
이제 나갈 일만 남았다 생각했는데, 운동화를 신을까, 구두를 신을까 고민하는 아이.
한참을 서서 생각에 잠긴 딸을 보며 째깍째깍 소리 나는 시계는 없지만, 내 마음속 시계는 쿵쾅쿵쾅 소리를 낸다.
출근 준비보다 몇 배는 더 고된 등원 준비.
매일 반복되는 이 시간 속에서 나는 ‘엄마’라는 이름으로 또 하루를 살아낸다.
인내심에 한계를 느낄 때마다, 아이가 스스로 해낼 수 있도록 기회를 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떠올려본다. 아직은 느리고 서툴지만, 이 과정을 통해 아이는 ‘내가 할 수 있다’는 감각을 배우고 자율성과 책임감을 키워간다.
쉽고 빠르다고 내가 대신해 주는 건 결국 아이의 성장을 가로막을 수 있다. 그래서 뻗은 손을 거두고, 아이의 ‘혼자 해내는 시간’을 지켜본다.
이 시간이 버겁고 느릴지라도 내가 애써 기다리는 이유는, 바로 지금의 훈련이 아이에게 스스로 살아갈 힘을 길러줄 거라는 믿음 때문이다.
등원 준비가 힘겨운 워킹맘에게 꼭 필요한 한 가지 진실은 아이에게만 성장의 기회가 되는 것이 아니라 엄마의 성장의 기회일 수 있다는 사실이다.
아이에게는 자율성과 성취감을, 내게는 기다림을 배우게 해주는 이 시간을, 아이도 나도 함께 성장하는 과정으로 받아들이려 한다. 조금 늦고 서툴더라도, 지금 이 순간이 아이의 자립을 위한 소중한 밑거름임을 반복해 되새겨본다.
세상은 이 아침의 고단함을 모를지 몰라도
엄마라는 이름으로 감당하는 이 작고 고요한 전쟁 속에서
나는 오늘도 아이의 성장과 내 성장을 함께 껴안는다.
그렇게 하루의 첫 발걸음을 내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