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휴직 전에는 출근이 가장 빠르진 않아도 빠른 편에 속했다.
하지만 아이 등원을 담당하다 보니, 출근시간이 자연스럽게 늦어질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다른 직원보다 늦게 도착하는 건 바꿀 수 없는 현실이었다.
의도한 것도, 게으른 것도 아니었지만 이상하게 죄책감이 들었다.
저녁이 되면 정시에 퇴근해야 했다.
아이를 어린이집에서 데려오는 일도 내 몫이었기 때문이다.
다른 동료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을 때 제일 먼저 퇴근하는 일이 반복되면서, ‘나는 지금 어떤 모습으로 비치고 있을까’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실제로는 퇴근 후에도 집에서 일을 이어갔다.
워킹맘이 되기 전 해왔던 업무량을 여전히 해낼 수 있다는 착각을 하기도 했고 워킹맘이라는 이유로 일을 적당히 한다는 인식을 주고 싶지 않아 일부러 더 일을 늘린 감도 없지 않았다.
아이를 재운 후 못다 한 일을 해나갔다.
하지만 그걸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직장상사도 그 사실을 몰랐을 것이라 생각한다.
아이를 재우다 같이 잠이 들어 애매한 시간에 깨어나 일하기를 반복하면서 불면증이 생겼다.
‘맡은 일이 적어서 저렇게 빨리 퇴근하나 보다’라고 오해받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웠다.
같은 워킹맘 동료가 있다 해도 각자의 상황은 다르기 때문에 서로를 온전히 이해하긴 어려웠고, 육아를 하지 않는 직원들에게는 내가 ‘특별대우’를 받는 것처럼 보였을지도 모르겠다는 두려움도 컸다.
그런 상황에서 조직은 최고중간관리자 없이 운영됐다.
나는 그 공백을 조금 메우는 역할을 맡게 됐다.
그 역할은 믿을만한 사람에게 맡길 업무로 이루어졌고 그걸 내가 맡게 된다는 건 어느 정도 직장 상사의 인정을 받는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그러나 상사가 다른 직원들 앞에서 나를 여러 번 인정하는 듯한 말을 했을 때, 마음이 무거워졌다.
기쁘거나 자랑스럽기보다 괜히 눈치가 보였다.
오히려 내가 더 나서서 일을 맡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압박감을 느꼈고, 이미 과중한 업무 속에서도 스스로에게 일을 더 얹었다.
그 시기, 나는 무력했고 외로웠다.
인정받는 기쁨보다, 설명되지 않는 오해가 무서웠고, 묵묵히 견디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 돌아보니, 이 감정의 뿌리는 ‘이해받고 싶은 마음’이었다.
나의 사정, 나의 노력, 나의 고민을 누군가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
하지만 조직 안에서 모든 사람이 내 사정을 이해하길 바라는 건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마음을 조금 바꾸기로 했다.
물론 처음부터 그럴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워킹맘의 힘듦이 지속되면서 내 머릿속에 죽음이 떠다니게 되었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미라클 타임을 살아가며 변화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한 변화 속에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성실하게 하기로 마음먹었다.
오해가 있다면 언젠가는 진실로 풀릴 수 있다는 믿음을 갖기로 했다.
내 진심을 증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정직하게 일하자고 다짐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인정이 꼭 외부로부터 와야만 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오늘도 아이의 손을 꼭 잡고 어린이집 앞에서 “잘 다녀와”라고 말할 수 있었고, 밤늦게 끝난 업무 속에서도 내가 책임져야 할 것을 해냈다면, 나는 나 자신에게 인정받을 자격이 있었다.
이해받지 못하는 외로움 속에서도 누군가는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는 사실이 위로가 됐다.
그리고 나는 그 외로움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도록, 내 마음의 중심을 잡아야 한다는 걸 배웠다.
현실이 만족스럽지 않더라도 나의 노력을 내가 인정해 주기로 했다.
그래야 계속 숨 쉴 수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