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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는 글-고독은, 나를 살리는 이름이었다.

by 혜윰이스트

의도하지 않아도, 죽음은 자꾸만 나를 스쳐 지나갔다.

창밖을 바라보다가, 설거지를 하다가, 아이를 재우다 문득, 익숙한 그림자처럼 조용히 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운전을 하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정도 속도에서 뛰어내리면 죽을 수 있을까?’

높은 곳에 오르면 또 생각했다.

‘이 정도 높이면 사람이 죽을까?’


나는 직업 특성상 자살을 시도했거나, 자살 위기에 처한 이들을 만나 상담을 하기도 한다.

그들의 이야기를 경청했고, 그들의 고통에 공감했고, 어떻게든 살도록 붙들기 위해 애썼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정작 나 자신을 붙들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었다.

누군가를 살리기 위해 애쓰던 나날들 사이, 나는 나를 돌보는 법을 잊고 있었다.

죽음의 기척이 자꾸만 나를 스칠 때조차, 나는 그저 ‘지치고 피곤해서 그렇겠지’ 하며 애써 넘겼다.

지금 생각하면, 참 멋쩍고 어리석은 일이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들의 삶이 너무 버거워서, '이제는 죽어야겠다'는 결심 끝에 죽음을 선택한다고 생각해 왔다.

그런데 내가 직접 겪고 보니,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특별한 사건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나는 그저 매일을 살아내고 있었다.

누군가의 딸이었고, 아내였고, 며느리였고, 엄마였고, 직장인이었다.

모두가 나를 필요로 했고, 나는 그 기대에 부응하고 싶었다.

아니, 완벽히 해내야만 한다고 믿었다.

그러는 사이, 나는 점점 투명해졌고 마침내 내 안의 ‘나’는 조용히 사라져 버렸다.


결국 나는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풀배터리검사를 했다.

그리고 그제야 비로소, 내가 미처 몰랐던 나와 마주하게 되었다.

검사 후 별도로 상담을 받거나 약 복용을 권유받진 않았다.

나에게 스스로 이겨낼 힘이 있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살기 위해, 고독의 시간을 살기로 했다.


새벽이었다.

모두가 잠든 시간, 홀로 깨어 있는 그 고요한 틈에서 나는 내 숨소리를 들었다.

그것은 오랜만에 느껴보는 ‘살아 있음’의 감각이었다.

나는 그 시간을 ‘미라클 타임’이라 부르게 되었다.

작은 기적처럼, 생의 가능성이 내 삶에 머무는 시간이었다.


고독은 외롭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은 나를 다시 나로 살아가게 해주는 숨구멍이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그 시간 속에서 나는 울었고, 글을 썼고, 가만히 앉아 나를 안아주었다.

그 고독이 나를 살렸다.

그리고 나는 마침내, 나답게 살아가기 시작했다.


고독은, 나를 살리는 이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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