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내는 엄마라면, 대부분 ‘키즈노트’를 알고 있을 것이다.
예전에는 원아수첩에 하루의 생활을 일일이 기록하고, 교사와 부모가 글로 소통했다면 이제는 시대가 변해 실시간 소통이 가능한 어플이 생겼다.
출석부, 식단표, 일정표가 공유되고 공지사항을 통해 어린이집의 중요한 안내도 빠르게 확인할 수 있다.
무엇보다 알림장을 통해 선생님이 올려주신 아이의 활동 내용과 사진들을 볼 수 있다.
투약 의뢰서도 앱으로 간편하게 작성해 전송하고,
다른 사람이 하원해야 할 경우엔 귀가동의서로 대응한다.
심지어 알림장이나 앨범에 올라온 사진은 몇 번의 클릭만으로 아이의 사진첩으로 제작해 받아볼 수도 있다.
물론, 비용은 별도다.
이렇게 키즈노트는 어린이집의 하루를 엄마에게 그대로 옮겨주는 매우 편리하고 유용한 도구다.
그 덕분에 내가 함께하지 못한 아이의 시간을 들여다볼 수 있다.
하지만 그 순간 밀려오는 감정들은 한 가지가 아니다.
함께하지 못한 미안함,
안쓰러움,
기특함,
그리고, 또 하나.
부담감.
매주 주말에 아이가 무엇을 했는지 사진과 함께 써보내야한다.
그걸 놓치면 월요일 발표 시간, 우리 아이는 사진 없이 이야기해야 한다.
열린소통란에서는 매달 미션이 주어진다.
아이가 미션을 했든, 하지 않았든, 내가 매일 기록하지 않으면 우리 아이는 스티커를 받을 수 없다.
아이의 성실함이나 노력과는 상관없이 엄마인 내가 중간에서 ‘제 역할’을 하지 않으면 아이의 노력은 기록되지 않는다.
점점 부담이 커졌다.
분명 아이의 숙제인데, 이건 엄마인 나의 숙제처럼 느껴졌다.
‘내가 숙제를 잘해야 아이의 자존감이 지켜진다’는 생각이 들자 그 부담은 단순함을 넘어서 마음 깊숙이 내려앉았다.
결국, 나는 키즈노트 알람을 꺼두기로 했다.
다른 엄마들이 올린 글마다 알림이 오는데 그 알림이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키즈노트는 분명 소통의 창구였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내 마음속 무거운 돌덩이가 되어버렸다.
지금도 나는 알람은 꺼두었지만 매일 키즈노트에 접속해 ‘엄마로서 해야 할 일들’을 해나가고 있다.
그 일이 아이의 숙제인지, 나의 숙제인지 구분할 수 없더라도.
지금 이 시기, 이 역할이 내게 주어진 사명이며 숙명인 것처럼.
육아는 늘 ‘잘하고 있는 걸까’라는 질문을 안고 걷는 길이다.
키즈노트 속 사진을 올릴 힘조차 없던 날에도 나는 아이의 하루를 지켜냈다.
분명 기록하지 않아도 충분한 하루들이 있었다.
엄마의 이름으로 그 모든 순간을 이미 잘 해내고 있었다고 스스로를 다독여본다.
키즈노트는 엄마의 마음을 모두 담아내지 못한다.
스티커 하나로, 사진 한 장으로, 댓글 한줄로 엄마의 사랑이 평가받을 수는 없다.
그 어떤 알림도, 그 어떤 미션도 얼마나 좋은 엄마인지를 대신 설명하진 못한다.
'엄마로서 내가 잘하고 있는 걸까’
자꾸만 스스로를 채점하게 되는 그 마음, 그건 그만큼 아이를 사랑하기 때문이라는 증거아닐까.
그렇기에, 키즈노트를 완벽하게 ‘해야 할 일’로 마음에 담을 것이 아니라, 그날 아이가 살아낸 시간을 함께 ‘들여다보는 창’으로 바라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모든 미션을 빠짐없이 수행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스스로에게 말해본다.
그날, 그 시간, 아이가 어떻게 지냈는지 잠시 멈춰 바라보는 작은 창, 그리고 아이를 키우며 나도 같이 자라나는 기록의 틈.
키즈노트가 나를 죄책감으로 이끄는 무거운 돌덩이가 아니라, 아이와 나의 시간을 이어주는 징검다리로 남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