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즐은 조각 하나라도 빠지면 그림이 완성되지 않는다.
아무리 애써도 빈칸이 보이면 그 퍼즐은 늘 미완성으로 남는다.
맞벌이 부부의 육아는 늘 그런 퍼즐과 닮아 있다.
조각을 열심히 찾아 끼워 넣지만, 어디선가 빠지고 흘러내려 완벽한 그림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아침부터 퍼즐 맞추기는 시작된다.
출근 시간과 등원 시간이 겹치지 않게 조율하고, 회의 일정과 하원 시간을 맞춰보지만 늘 한쪽이 삐져나온다.
부모가 두 명인데도 아이에게 온전히 집중할 수 없는 순간이 많다.
시간이라는 조각은 언제나 부족하다.
돌봄의 조각도 마찬가지다.
아이에게 필요한 건 단순히 밥을 먹이고 잠을 재우는 일이 아니다.
마음을 들어주고, 눈을 맞추며 놀아주는 시간이 필요한데, 하루가 끝나면 지쳐버린 부모의 품은 때로는 비어 있다.
조부모의 도움, 돌봄 기관의 지원 없이는 완성할 수 없는 커다란 퍼즐 조각이 있다.
부부 관계의 조각도 쉽지 않다.
서로에게 기대야 하는데, 피곤이 앞서고, 대화는 집안일과 업무 보고처럼 흘러간다.
"오늘은 네가 좀 더 해줘"라는 말이 턱까지 차오르지만 이미 많은 것을 하는 배우자에게 차마 그 부탁의 말을 건네는 것이 쉽지 않다.
퍼즐은 맞춰지기는커녕 더 흩어지기도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기 자신이라는 조각이 자주 잃어버리게 된다.
부모이기 이전에 나로서의 삶,
잠시 숨 고르며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시간은 뒤로 밀려난다.
아이를 키우는 과정에서 부모도 함께 자란다지만, 그 성장은 늘 자기희생의 빈칸을 동반한다.
그렇다고 해서 이 퍼즐이 의미 없는 것은 아니다.
완벽한 그림은 아니어도, 그 빈틈마다 우리 가족의 이야기가 새겨진다.
비어 있는 공간을 메우기 위해 서로 애쓰는 모습, 제도와 공동체가 조금씩 채워주는 조각, 그리고 아이의 웃음이 덧칠하는 무늬들.
그것만으로도 불완전한 퍼즐은 나름의 아름다움을 갖는다.
하지만 이 빈칸을 모두 ‘개인과 가족의 책임’으로만 남겨두는 건 옳지 않다.
돌봄의 공백은 결국 사회가 함께 풀어야 할 과제다.
야근 없는 직장문화, 돌봄 인프라의 확대, 부모가 안심하고 맡길 수 있는 공적 지원이 뒷받침되어야 비로소 부모들이 퍼즐을 조금 더 편안히 맞출 수 있다.
맞벌이 부부의 고충은 단순히 한 가정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구조적 문제이기도 하다.
맞벌이 부부에게 육아란 완성할 수 없는 퍼즐일지 모른다.
하지만 중요한 건 완벽한 그림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함께 앉아 끝까지 퍼즐을 맞추려는 마음일 것이다.
빈칸이 있더라도, 그 옆에서 손을 잡고 계속 맞춰가는 과정.
그 과정 속에서 아이도, 부모도, 한 가족으로 자라 간다.
그리고 사회는 그 빈칸을 함께 메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