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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림 Jan 05. 2019

노예에서 주인으로!

상처 받은 것들에 대한 기록




요즘 읽고 있는 책이 있다. 

첫 번째로 소개할 책은 강신주의 감정수업이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철학자이자, 나의 스승 감정수업.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강신주 선생님을 쫓아다녔다. 그가 하는 강의는 늦게 라도 가서 꼭 들었고, 사람이 많아 자리가 꽉 찬 강의도 굳이 찾아 가 들었다. 그가 쓴 책은 모두 사서 몇 번이고 읽었다. 그러다 대학교 1학년 겨울 감정수업이 발간되고, 설레는 마음으로 이 책을 샀다. 그리고 그가 쓴 철학에 다시 한번 감탄했다. 이미 꼬질꼬질 해진 내 책이 말해 주듯, 나는 몇 일이고 이 책을 손에서 놓지 못했다. 책을 다 읽고 선 처음으로 대학 도서관에 입고를 요청했다. 많은 학생들이 나와 함께 읽기를 바랐다.


대학교 4학년, 우연히 강신주 선생이 학교에 강의를 온 다는 소식을 들었다. 도서관 앞에 플랜카드가 걸리자 마자 사진을 찍어 놓고, 나는 그날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리고 그날이 왔다. 항상 강신주 선생의 강의는 서서 듣거나 아니면 얼굴도 보지 못한 채, 복도에 선 채로 스피커로 들어야 했는데, 학교 초청 강의실에 가니 자리가 텅텅 비어 있었다. 처음으로 가까이에 앉아서 강신주 선생의 강의를 들을 수 있었다. 


그는 노예의 삶과 주체적 삶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사실 몇 번이고 들었던 내용이었지만, 가까이에서 눈을 마주치고 들으니 새롭기도 했고, 또 울컥하는 마음도 들었다. 강의가 끝나자 나는 급한 마음으로 강단 앞으로 뛰어갔다. 나가려는 그를 붙잡고 나는 내 얘기를 했다. 


“사실 저는 이미 취업이 돼서, 다음 주에 입사를 앞두고 있거든요. 선생님 말이 무슨 말인지 아는데, 저는 이제 어쩌죠.” 


나는 진짜 어쩌라는 건지 알 수 없는 말을 했고, 엉망진창인 말이었지만 그 말이 통했는지 그는 내게 말했다. 


“노예로 살아봐야 포기할 수 있어요. 가세요 그 회사.” 


그는 내가 노예가 되는 것을 말리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내가 노예가 되길 바라는 것 같았다. 의외의 대답에 나는 잠시 당황했지만, 그렇게 하기로 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고 두번의 입사와 두번의 퇴사를 했다. 노예의 삶을 겪고 난 지금에서야 그의 말을 알 것 같다. 그 때의 나는 노예가 되는 것을 두려워했지만, 반면에 벗어날 자신은 없었다. 그렇게 우물쭈물 한 사이에 노예가 되어가고 있었고, 문제는 노예가 무엇인지도 잘 몰랐다는 점이다. 겪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세계였다.


직장을 다니며 힘들 때마다 그의 말을 떠올렸다. 


‘노예로 살아봐야 포기할 수 있다.’ 나는 가장 충실한 노예가 되려고 했다. 

정말, 끝까지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텨보고 싶었다. 그래야 노예이길 포기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수직적인 사회구조, 어른들의 꼰대 짓, 쉴 틈 없는 성희롱. 어느새 내가 그것들에 익숙 해 져갈 때 즈음, 

나는 그만 포기하기로 결심했다. 노예로서 익숙해지는 삶은 위험하다. 본능적으로 그렇게 느껴졌다. 



우리가 남의 평가에 민감한 것은 우리 안에 존재하는 노예근성 때문이다.
고대 노예제 사회에서 노예는 자기 자신을 주체적으로 평가하지 못했다.
노예를 평가할 수 있는 사람은 어디까지나 주인 뿐이기 때문이다.
노예는 주인이 잘했다고 칭찬하면 기뻐하고 못했다고 지적하면 슬퍼한다.

  <프리드리히 니체>



노예로서 익숙해지는 삶은 위험하다. 본능적으로 그렇게 느껴졌다. 드디어 나는 그의 말을 실천한 사람이 된 것 같아 기뻤다.  오랜만에 이 책을 꺼내 열었다. 나는 그때 기억을 떠올리며 다시 한번 그를 읽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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