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림 Jan 08. 2019

팔리지 않는 노예

상처 받은 것들에 대한 기록




 처음부터 팔리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 건 아니었다. 적어도 특정 누군가에게는 팔리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게 어떤 사람이든 누구든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기는 했지만, 가만히 있으면 왠지 불안해서 어쩌다 나를 보는 사람에게는 사 달라고 외치기도 했다.

아니 더 솔직히 말하면, 나를 구걸했다.


오늘은 아니지만, 내일은 팔리겠지. 또다시 내일은 팔리겠지…. 매일 그런 생각을 하며 하루를 버텼다.

그러나 난 여전히 팔리지 않았다. 이렇게 구걸하는데도 사람들은 나를 사가지 않았다.


그러다 어느 날 저 앞에 가만히 앉아있는 인간이 팔렸고,그 모습을 본 나는 억울한 마음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 '정작 사 달라고 노력하는 건 나인데, 왜 가만히 있는 저 인간을 사 가는 거지?’ 좋은 결과는 노력하는 사람에게 따르는 것이 아니었나? 결국에 그 말도 거짓이었나 보다. 마음 같아선 그 사람을 쫓아가 묻고 싶었지만, 이를 악물며 꾹 참았다.


이 곳에서는 억울하고 화가 나도 표현해선 안 되기 때문이다.

암묵적으로 정해져 있는 이 곳의 규칙이었다. 주인에게 들었는데, 예전에 인기가 없었던 한 인간이 화가 난 나머지 밖으로 뛰쳐나가 자신을 사 주지 않은 몇몇 사람을 죽이고 자살했다고 한다. 그 이후로 인간에 대한 평판이 좋지 않아 졌고, 한동안 장사가 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것이 계기가 되었는지 이 곳에 오는 사람들은 가장 먼저 인간의 표정을 확인하는 것이 당연시되었다.


조금이라도 화가 나 있거나, 슬퍼 보이면 사람들은사주지 않았다. 우리는 몇 번이고 연습했다. 적당히 기뻐 보이고, 적당히 슬퍼 보이는 표정을 짓기 위해서….   


그렇게 나를 뺀 주변의 한, 두 인간이 팔려 가기 시작했다. 배신감이 느껴진 나는 그만 지쳐버렸고,

인기 있는 인간을 보고 질투를 하거나 팔리지 않는 내 모습을 보고 좌절하는 것이 나의 일상이 되었다.


나는 쓸모없는 인간이다. 관심조차 받지 못하는 쓸모없는 인간이었다. 요즘 세상에서 팔리지 않는다는 것은 곧 쓸모없다는 뜻이다. 팔리지 않으면 누구에게 사랑받을 수도, 인정받을 수 없다.


나는 잘 팔릴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내 옷을 벗고, 그들이 좋아하는 화려한 색의 옷을 골라 입었다. 예쁘게 화장도 했다. 사실 내가 좋아하는 색은 검은색이고, 평소엔 꾸미지 않는 것을 좋아한다고 해도 사람들은 그런 내 모습은 팔리지 않을 거라 얘기했고, 그 순간부터 나는 내 모습을 버렸다.


 ‘저 사람 오늘 또 왔네.’


매번 이 곳에 오지만, 구경만 하고 사지 않는 사람이 한 명 있었다. 그 사람은 항상 촌스러운 자주색 부츠를 신고 있었고, 오늘도 여전히 촌스러운 부츠로 이 곳 저곳을 둘러보더니, 내 앞에서 멈춰 섰다.

‘사지 않을 거면 가라고!’ 속으로 생각했지만, 혹시나 모른다는 생각에 속 마음을 숨기고 미소를 지으며 그를 바라봤다. 하지만 그 사람은 미동도 하지 않고 나를 빤히 쳐다보다 곧 돌아갔다.

난 역시나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그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속으로 짜증이 났지만 여전히 웃고 있었다.

저 사람은 벌써 1년이 넘도록 이 곳에 오면서 아무 인간도 싹수 않는 다. 아무래도 저 사람은 돈이 없나 보다. ‘거지 같고 촌스러운 사람.’ 그렇게 속으로 욕을 한참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즈음, 다시 문이 열렸다.

빛나는 검정 구두가 눈이 부셨고 그 구두를 본 순간 생각났다. ‘그 사람이다.’ 며칠 전 이 곳에 와서 가장 비싼 인간을 사 갔던 그 사람이다. 그를 눈치챈 인간들은 모두 하나같이 급하게 단장을 하고 자리에 섰다. 평소 인기 있던 인간들도 빛나는 미소로 자신을 뽐내기 시작했다. 나도 질 수 없어 옆자리에 서서 그를 바라봤다.

그는 주인에게 물었다. “화려한 인간을 찾고 있는데요.” 주인은 그의 말에 내 옆에 있는 인간을 그에게 보여주며 화려하지 않으냐고 물었다. ‘바로 그 옆에 내가 있는데….’ 울컥하는 마음을 다잡고 다시 웃으며 그를 쳐다봤지만, 그는 나와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내 왼편에 있는 인간과 오른편에 있는 인간. 두 인간을 사서 나갔고 나는 여전히 그 자리에 남겨졌다.


생각해 보니 나는 부족한 게 많은 사람이었다. 다시 둘러보니 눈에 보이는 건 주변의 화려한 인간들이었다.

 그에 비해 난 흑백 같은 인간이었고, 그저 그들을 더 환하게 비춰주는 인간이었다.

아무리 꾸며보아도 나는 화려하지 않았다. ‘나도 화려한 인간이고 싶다.’ 조금은 마음을 달래고, 내가 부족한 것을 채워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나의 부족한 점을 찾기 시작했다. ‘머리도 나쁘고, 못생기고, 욕심도 많고….’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계속 나의 못난 모습만 보였다.

내가 팔리지 않는 것도 어쩌면 당연했다. 계속되는 실패와 실망으로 자신감은 바닥을 쳤다. 부족함을 채우고자 했던 그 의지도 곧 좌절했다. 주변 인간과 비교하기를 반복하던 나는 결국, 더 이상 나를 구걸하지 못했다. 또다시 선택받지 못할까 두려웠던 나는 먼저 포기하기로 결심했다.

‘나 언제부터 이렇게 변한 거지.’ 아무래도 안 되겠다.


나는 더 이상 이 곳에 있을 수 없다는 생각에 짐을 싸 들고, 문을 향해 걸어갔다. 등 뒤에서는 소리치는 인간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디가! 너 여기 나가면 비웃음 당할 거야!’ ‘바깥은 위험해. 어서 돌아와!’


어쩌다 보니 내가 받은 상처가 이 곳을 뛰쳐나갈 용기를 주었다. 그들의 말을 뒤로하고 나는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문이 열리자 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 환한 빛이 나를 감쌌다. 그 빛 사이로 보이는 건 촌스러운 자주색 부츠였다. 문 앞에 서 있는 사람은 나를 사주지 않았던 거지 같고 촌스러웠던 그 사람이었다.


“기다리고 있었어요.”


빛 속으로 들리는 그의 말에 고개를 들었다. 그제야 세상이 눈에 들어왔다. 눈을 떴을 때 보이는 세상은 내 생각과는 달랐다. 화려하지 않은 내 모습을 보고도 사람들은 비웃지 않았고, 그저 나를 지나쳐 갈 뿐이었다. 아무도 내게 관심이 없었다. 밖에 나오니 오히려 관심받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잔뜩 겁이 들어 움츠려 있는 내게 그 사람은 다가와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용기 내줘서 고마워요. 당신 발로 이 곳에 나올 때까지 기다렸어요.” 비록 나를 사가는 사람은 없었지만, 나를 기다려주는 누군가가 있었다.

밖으로 나오지 않았으면, 난 평생 그것도 모르고 당신을 원망했겠지. 그 안에서 나는 뭐가 그렇게 두려웠던 걸까? 내 안에 자리 잡은 비루함은 어느새 나를 변하게 했다. 겁이 많고 쓸모없는 인간으로 만들었다. 내면의 자리 잡은 슬픔은 나를 그곳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하게 했다.


옆에서 그가 말했다. “겨우, 문을 열고 나오는 것뿐인 걸요.”


생각해보면 나는 쇠사슬에 묶여 있는 것도, 누군가 나의 팔을 잡고 있던 것도 아니었다. 보이지 않는 쇠사슬을 푸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이었을 까? 그의 말 대로 그저 문을 열고 나오면 되는 것뿐인데….


복잡한 감정이 표정에 그대로 드러났다. 그 감정은 슬픔이었다. 나는 그제야 슬픈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내 표정을 바라보는 그는 미소를 살며시 머금고 있었다. 왠지 모르게 기뻐 보였다. “왜 웃어요?” 내가 왜 웃냐고 묻자, 그는 “이제야 당신 감정이 느껴져서요.”라고 말했다.

그의 말에 내 발목을 조이고 있던 것은 쇠사슬이 아닌 감정이었다는 걸 깨 달았다.

감정을 숨기고 적당한 웃음을 짓기 시작한 순간에 나는 쇠사슬을 찼다.

문을 열고 뛰쳐나오고 나서야 처음으로 슬픔을 표현할 수 있었다.


나는 감정의 노예였다.


그 순간 누군가 나를 선택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내 발로 뛰쳐나와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좌절을 경험한 사람은 자신만의 역사를 갖게 된다.
그리고 인생을 통찰할 수 있는 지혜의 길로 들어선다.
                                                                                      -쇼펜 하우어



상처 받은 기억은 나를 도망치게 만들었으나,  상처 받은 기억들이 나를 변하게 했다.

더 이상 노예가 아닌, 감정의 주인으로 만들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돈을 벌어야 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