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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누리 Aug 09. 2022

INFP 정치인 아빠와 ENFJ 보좌관 딸

궁합은 얼마나 잘 맞을까?


먼저 짚고 넘어가지만 왼쪽(ENFJ)이 나다


 어릴 땐 MBTI같은 것 몰랐다. 대신 어른들이 이런 말을 종종 했다. "아빠는 용띠고 딸은 쥐띠네. 서로 잘 도와주겠네!" 어른들에겐 MBTI 이전에 12간지가 있었다.


 20년 뒤 MBTI 열풍이 불었다. 16가지 타입 중 유명한 조합이 있다. 그 중 하나가 'INFP'와 'ENFJ'다. 서로 같은 꿈을 꾸면서도 INFP의 풍부한 감수성을 ENFJ가 받쳐주는 모습. 인터넷에서 얘기한다. "INFP와 ENFJ는 환상의 조합입니다! (믿거나 말거나)"


 용띠에 쥐띠에 INFP에 ENFJ인 우리 부녀. 정말 환상의 짝꿍일까?


ENFJ 보좌관 딸이 바라보는 INFP 정치인 아빠


 이번 장에선 날 보좌관이라 칭해보겠다. 20년 가까이 영상 촬영, 연설문 검토, 자료 조사, 슬로건 제작 등 수많은 일을 도왔으니 틀린 말은 아니다. 난 기본적으로 20년 동안 아빠의 매니저 역할을 했다.


아빠. 내일 본회의인데 지금 다큐멘터리 볼 때야?
아빠. 그 분한테 전화해봤어? 문자? 전화를 하라니까.
아빠. 글에 군더더기가 많아. 이 문단은 빼도 될 것같은데.


 이런 까탈스러운 딸내미! 기본적으로 나의 잔소리는 '아빠의 귀가 열려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일단 아빠와 나의 일처리 방식은 굉장히 다르다. 판단형(J)인 나는 매사에 계획을 세운다. 극한에 몰리는 상황만큼은 피하고 싶으니 말이다. 인식형(P)인 아빠는 머릿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전날까지 느긋하다. 아니. 일을 할 거면 한컴을 켜야하는 것 아닌가? 왜 넷플릭스를 보고 있는 거지?


아빤 아빠 나름대로 일하고 있어.


 속으로 '뻥'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시청 본회의를 방청한 날, 그 말이 진짜임을 깨달았다! 그는 우리가 자는 동안 놀라운 속도로 PPT 자료를 만들고, 당일 연설문도 없이 술술 5분 자유발언을 늘어놓았다. 심지어 어제 본 역사 다큐멘터리와 현재 시정 문제를 연관지어 설명하기도 했다. 오물이 쌓인 변기가 한순간에 '뻥' 뚫리듯, 아빠는 게이지를 잔뜩 모아놨다가 제일 중요한 순간에 '뻥'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듯 했다. "아빠 자는 게 아니라 생각 중이야!" 라는 말을 난 이제 믿어보기로 했다. 그의 머릿 속엔 항상 작은 용이 뱅글뱅글 날아다닌다.



INFP 정치인 아빠가 바라보는 ENFJ 보좌관 딸


 이건 아무래도 내 입을 빌리기보단 아빠의 말을 빌리는 게 정확하겠다. 마침 블로그에 좋은 일기가 있다.




누리에게 주말 아침에 지적질 당했다.


왜 하기로 한 일을 자꾸 실행안하고 미루냐는 거다. 얼마전부터 아빠와 딸 간에 상호 편지쓰기를 하기로 했는데..그 시작을 먼저 해야 하기로 한 것을 왜 안하냐는거다. 그러면서 엄마 아빠의 공통점 1.게으르다 2. 사전준비가 치밀하지 못하다. 등등을 열거한다.. 


‘그래 너 잘났다!’


속으로 든 생각이지만 뭐라 말하지는 못하겠다. 결과적으로 옳은 말이기 때문이다. 





 이런! 아빠가 자녀한테 드는 생각이 '그래 너 잘났다'라니. 유치뽕이다. 좀 더 인자한 내용일 줄 알았는데. 하지만 당연하다. 부모도 자녀에게 잔소리 듣는 건 싫다.


 그 다음 말이 재밌다.




나를 키웠을때도 아버님, 어머님이 이런 느낌이었을까?


누리 얼굴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아기때 모습, 성장기 모습, 그리고 지금의 모습이 한꺼번에 겹쳐진다. 그러면서 어른이 다 된 모습으로 아빠를 따끔하게 지적할때는 ‘언제 이렇게 컸나?“ 라는 생각이 스친다. 기쁘면서도 섬찟하다. 애어른을 대하는 기분이다. 


아빠의 욕심일까?


누리는 영원한 피터팬으로 남아있으면 하는 모습...


그런데 욕심부릴 필요 없을 것 같다. 아빠가 뭐라건 누리는 그 모습 그대로 피터팬일 것 같으니...




 '누리는 영원한 피터팬으로 남아있으면 하는 모습'


 재밌는 건 나도 아빠에게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다소 낭만적이라고 하지만, 누구보다 먼저 난민 얘기를 꺼내고, 아무도 모르는 한강하구의 옛이름 '조강'을 외치고, 잊혀진 보리피리 시인 '한하운'을 기억하는 아빠. 그의 소년같은 모습이 늘 한결같길 바랬다. 그런데 아빠도 나와 같은 생각을 했다니!


 INFP 아빠에게 ENFJ인 내 모습은 이상적인 정치인에 가깝다. 사람 만나는 것 좋아하고, 얘기를 몇 시간씩 해도 지치지 않고, 계획적으로 일을 딱딱 해내는 모습. 당신은 얘기한다. 어쩌면 내가 더 지역 일꾼에 적합할지도 모른다고. 하루에 지역 행사를 서너번 돌고 나면 녹초가 되고, 일을 몰아서 해내고, 가끔 지나치게 낭만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자기보단 내가 더 정치인같다고.


 그럼 난 고개를 젓는다. 난 아무 의식 없이 주어진 대로 행동하지만, 아빠는 자신을 온몸으로 변화시킨다. 하루종일 의정영상을 찍고, 시청 본회의 때마다 거침없이 자유발언하고, 하루종일 시민들의 얘기를 들어준다. 그건 아빠에게 분명 쉬운 일이 아니다. 모두들 "의원님 내향형(I)이에요?" 하고 놀란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 자신 스스로를 바꿀 줄 아는 사람. 그에겐 세상을 바꿀 힘이 있다. 그래서 난 기꺼이 네버랜드를 그리는 아빠의 꿈을 뒷받침해주고 싶다. 우린 같은 꿈을 꾸고 있다.


ISTJ인 엄마에겐 외계어로 들리겠지만


 참고로 엄마는 ISTJ다. 그래서 'NF' 형인 아빠와 내 말이 외계어처럼 들릴 때가 있단다. 어쩌겠는가. 우린 가깝고도 먼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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