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5월 23일, 우리집이 뒤집혔다
2009년 5월 23일.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했다. 이날을 기점으로 우리 집은 완전히 뒤집힌다.
당시 난 13살이었다. 컴퓨터 앞에 앉아있다. 현관문이 열린다. 아빠에게 뛰어간다. 시의원으로서 지역행사를 다녀온 그의 얼굴이 새빨갛다. "아빠! 지금 노무현 아저씨 검색어 1위다." 당신의 얼굴이 새빨갛다 못해 검붉어진다. 고개를 끄덕인다. "응. 아빠도 봤어." 그가 불과 18일 전 블로그에 스크랩한 칼럼 제목은 다음과 같았다. '왜 노무현은 죽지 않는가?'
우리 아빠는 '개혁당-열린우리당-국민참여당'이라는 대표적인 친노 계보를 따른 의원이었다. 충격이 이만저만 아닐 수 없다. 그렇지만 아빠에겐 같이 슬퍼할 사람이 있었다. 그것도 꽤나 많았다. 내가 걱정한 건 아빠가 아니라 엄마였다.
엄마의 눈물은 그를 향한 것이 아니었다
엄마의 눈물은 노무현 전 대통령을 향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홀로 남은 권양숙 여사를 위한 것이었다. 영부인을 향한 것이 아니라, 남편을 잃은 한 부인을 걱정하는 눈물이었다. 자기 미래가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었다. 남의 일이 아니다. 정치인 배우자를 둔 사람의 숙명이었다. 엄마는 추모 행사도 나가지 못하고 혼자 삭혔다. 결국 공황에 걸렸다. 이는 13년 째 진행 중이다. 정치가 끝나지 않는 한 불안도 끝나지 않는다.
노무현 전 대통령! 이젠 입에 얹기도 부담스러운 이름이 됐다. 아빠에겐 떠올리기만 해도 눈물을 터트릴 이름이고, 엄마에겐 끝나지 않는 공황의 시발점이 된 이름이다. 누군가에겐 희화화의 대상이고, 누군가에겐 정치적 무기다. 누군가에겐 건드리기 쉬운 이름이고, 누군가에겐 건드려선 안될 이름이다. 정치인들은 맘대로 나타날 수도, 떠날 수도 없다. 애초에 이름 석 자를 내놓는 일이다. 어떻게 쓰이건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난 가끔 그가 살아있다는 착각을 한다.
아빠는 정치, 엄마는 공황, 그리고 나는…
다시 돌아가서, 2009년 5월 23일. 아빠는 슬퍼했고, 엄마는 불안해했다. 둘이 흘린 눈물의 이유는 조금 다르지만, 결과는 같다. 그럼 난? '서거' 단어 뜻도 몰라 눈만 멀뚱멀뚱 뜨던 어린 난 어떻게 변했나?
유감이게도 난 어릴 때나 지금이나 '멀뚱멀뚱' 상태다. 아빠처럼 슬퍼하지도, 엄마처럼 불안해하지도 않는다. 그저 담담하게 걸을 뿐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분명 내 관념을 형성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정확히는 그를 거쳐간 아빠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러나 그것은 골조 시공까지다. 인테리어는 전적으로 내 몫이다. 무엇을 채울지는 내게 달렸다. (이자크 디네센처럼) 희망도 절망도 없이 매일매일 걸을 뿐이다. 더 멀리 가기 위해.
난 지금도 엄마에게 심심한 위로를 한다. "엄마! 공황은 이 사건 때문이 아냐. 우리 마음에 달린 거야." 2016년 촛불집회 이후 문재인 대통령 정부가 출범한 뒤, 잔뜩 상기된 아빠에게도 얘기했다. "아빠! 뒤집히는 거 한 순간이야. 국민들은 냉정해. 정신 똑바로 차려야 돼." 손사레를 치던 아빠는 제20대 대통령 선거 결과를 보고 "네 말이 맞았다"며 고개를 숙였다. 그 다음 날, 난 아빠의 등을 치며 얘기했다. "아빠! 그래도 밥은 먹어야지. 잘 먹고 잘 자야 또 싸우지." 어쩔 수 없다. 이제 'OOO의 정신으로'라는 말로는 진보도 보수도 끌고 갈 수 없다. 그 전에 '나'의 정신은 무엇인가를 물어야 할 때다. 그들이 없는 세상도 우린 살아야하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