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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누리 Aug 05. 2022

정치하는 건 아빤데 왜 내가 바빠요?

2011년 6월 12일 국민참여당 이동당사 앞에서

정치하는 건 아빤데 왜 내가 바빠요?


 어릴 땐 아빠가 시의원인 게 꽤 귀찮았다. 무슨 행사라도 있으면 고구마 줄기처럼 가족까지 줄줄이 따라가야했기 때문이다. 와중에 엄마는 상당히 내향적인 사람이었다. 행사는커녕 친구 모임도 안 나가는 사람이 아빠를 따라다닐 수 있을리 만무했다. 카메라 앞에 서고 나면 엄마는 스트레스로 며칠을 앓아누웠다. 이런, 할 수 없지. 조금 더 외향적인 내가 돌아다니는 수 밖에.


 안 해. 연설 안 해!


 2011년 6월 12일. 중학교 2학년이었던 나는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민속장터까지 걸어갔다. 가다가 다시 걸음을 돌렸다. 난 폴더폰을 열어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 연설 안 해! 창피해!

 엄마는 수화기 너머로 호통쳤다. 갔다와! 할 수 있어!


맨 왼쪽이 아빠. 국민참여 이동당사 기자 간담회.

 


그날은 아빠가 담당하는 국민참여당 이동당사 행사가 있는 날이었다. '마이크를 빌려드립니다' 트럭이 오면, 시민 누구나 자유롭게 발언할 수 있었다. 다른 연령대의 사람들은 많은데, 청소년이 없다며 아빠가 날 호출했다. 창피하다며 질질 우는 날 보고 아빠는 하기 싫으면 안 해도 된다고 했다. 하지만 엄마는 강경했다.

 할 수 없이 코가 팅팅 부은 채로 마이크를 잡았다. 학교에 대한 평소 아이들의 불만을 대표해서 말했다. 급식이 너무 부실합니다. 밥을 먹고 나면 친구들은 몰래 담을 넘어 불량식품을 사먹습니다. 같은 메뉴가 매일 똑같이 나올 때도 있습니다. 학교 급식을 개선해주세요.

 천막 밑에서 유시민 (당시 국민참여당 대표) 씨가 연설을 듣고 있었다. 아빠가 말했다. "저희 딸입니다." "오, 정 센터장 따님이에요? 똘똘하네." 그분은 몰랐을 거다. 여기 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눈물 콧물을 흘렸는지.


왜 엄마는 날 돌려보냈을까


 엄마는 얘기했다. "그때 네가 집으로 돌아오면, 이후에도 그 벽을 못 넘을 거라 생각했어. 엄마는 지금도 발표 못 하고 단상에서 내려오는 꿈을 꾸거든." 엄마 말대로 난 이 날을 기점으로 발표를 즐기기 시작했다. 남들 앞에 서는 걸로 눈물을 쏙 뺀 건 이때가 끝이다.


 그때의 나는 몰랐다! 정치인의 딸로서 넘어야 할 산은, 따로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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