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반장이 아니라 부반장을 나간 이유
아버지가 정치인이니 딸도 리더답겠지?
아버지가 정치인이면 딸도 리더다울까? 난 아니었다. 학창 시절에 전교 회장은커녕 부반장만 딱 두 번 해봤다. 몇 년 간 마음만 먹다 반장은 무리고, 부반장이라도 도전해본 것이다. 그것도 너무 스트레스받아 임기 도중 임파선이 팅팅 부었다. 차라리 아무것도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개인 활동은 열심히 했다. 교외의 정치 토론이나 연설 등. 그땐 왜 그렇게 직책을 맡는 걸 꺼려했을까?
그 이유를 찾기 위해 아버지 블로그에 들어갔다. 17년도에 그렸던 부반장 포스터를 찾았다.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그 밑에 쓰여있는 아빠의 일기였다.
물음표의 법칙 ㅡ 고2에 올라온 딸아이가 일전에 부반장 출마 포스터였다며 보여준 그림이다. 쉬는 시간을 이용해 5분 만에 급조한 것이지만 제법 콘셉트가 괜찮지 않냐며 어깨를 으쓱거린다. 4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당선되는데 한몫했다 한다.
반장 나가지 않고 왜 부반장을 나갔어?라고 물으니 예기치 않은 뜻밖의 대답이 돌아온다.
아빠처럼 실패하는 선거는 하고 싶지 않아서 !!!
순간 말문이 막혔다. 녀석에게 어느 사이 아빠의 실패가 가슴속에 깊은 이미지로 자리 잡았나 보다. 선거엔 거듭 실패했지만 삶에는 성공하는 아빠로 남는 길이 무엇일까? 사진첩을 들추어보며 곰곰이 생각에 잠기는 4월의 아침이다.
2013.04.08
아빠처럼 실패하는 선거는 하고 싶지 않아서!
내가 이렇게 되바라진 말을! 기억도 안 난다. 왜 그랬을까? 곰곰이 생각해본다.
우리 아빠는 성공보다 실패를 많이 한 정치인이었다. 비단 아빠뿐이 아니다. 정치인들은 대부분 낙선을 더 많이 한다. 본선거에 나가기 전에도 수많은 경선과 단일화에서 탈락한다. 그 과정에서 얻는 데미지는 말로 할 수 없다. 후보 본인도 힘들지만, 도와준 주변 사람들에게 미안한 것이 가장 크다.
그럼에도 아빠는 포기하지 않았다. 국민참여당에서 국회의원 후보로 나갈 때도, 시장선거에 3번 낙선할 때도, '이번에는 될 거야!'라고 했다. 밤새 지역을 바꿀 계획을 늘어놓았다. 난 이해할 수 없었다. '아빠! 정말 될 거라 생각해? 아빠는 돈도 빽도 없잖아.' 그래서 나는 학급 임원을 나가지 않았다.
학교 안에서 조용히 살았던 이유가 이것이었다. 나가서 떨어지면 쪽팔리니까!
아냐, 아빠도 엄청 쑥스러워.
하루 종일 모르는 사람에게 명함을 나눠주는 아빠가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어찌 저리 쉽게 말을 걸지? 아빤 정말 정치가 하고 싶은가 보다. 한날은 물었더니 당신이 머리를 긁적이며 얘기했다. 아냐. 아빠도 엄청 쑥스러워.
세상엔 쪽팔린 게 너무 많다. 대표에게 사직서 내는 것도 쪽팔리고, 애인이랑 헤어진 것도 쪽팔리고, 시험에 떨어진 것도 쪽팔리고, 얼굴 나온 영상 올리는 것도 쪽팔리고...
하지만 쪽팔림이야말로 달콤하다. 얻는 게 많은 노다지다. 난 어찌 됐건 부반장이 되어 한 학기 동안 40명을 조율했다. 임파선까지 부어가며 반티를 맞춘 경험은 회사에 있는 지금도 두고두고 쓰인다. 정치인도 그렇다. 세상 모든 일꾼이 떨어지는 게 부끄러워서 선거를 나오지 않는다면 사회는 좀 더 빨리 부패할 것이다.
2전 2승 0패보다, 200전 10승 190패가 더 멋져
우리 아빤 바둑을 좋아한다. 온라인 바둑을 두는 걸 옆에서 보면, 프로필에 승률이 나온다. "에게. 아빠. 승률 40퍼가 뭐야?" 난 어릴 적 승률 100퍼인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함부로 도전하지 않았다. 하지만 사회에 나와보니 그것이 중요한 게 아니다. 2전 2승 0패보다, 200전 10승 190패가 더 멋지다. 200전과 2전은 내공이 하늘과 땅 차이다.
10년 전 쓴 아빠의 일기 끝 문장이 맘을 떠나지 않는다.
선거엔 거듭 실패했지만, 삶엔 성공한 아빠로 남는 길이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