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빠는 정동영도 이명박도 아니야
초등학교 4학년 때다. 남자애 둘이 헐레벌떡 달려온다.
"야! 너희 아빠 대통령이라며? 이명박이야?"
속으로 한숨을 쉰다. 옆의 남자애가 어깨를 툭 친다.
"바보야. 얘 '정'씨잖아. 정동영이겠지!"
난 잔뜩 인상을 찌푸리고 팔을 휘젓는다.
"아니야! 우리 아빠 이명박도 정동영도 아니라고."
남자애들은 '조폭 마누라'라고 놀리며 도망친다. 웃기다. 아버지는 공직자인데 딸내미는 조폭이다.
아이들에게 정치인은 곧 대통령이다. 더 나가봤자 국회의원이다. 비단 아이들만 그런 것이 아니다. 우리는 '정치인' 하면 자연스레 중앙정계를 떠올린다. 하지만 그 평행한 세계에 지방정계가 있다. 어쩌면 나와 더 가까이 살을 맞대고 있는 사람들은 이들일지도 모른다. 시의원, 도의원, 구의원, 군의원… 그 이름이 많기도 하다.
아버지는 시의원이었다. 동대표로 초등학교 신설을 주장하다 당선됐다. 당시 나와 아이들은 가까운 곳에 학교가 없어 매일 으슥한 산길을 30분씩 걸어다녀야 했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아빠는 내가 졸업한 초등학교를 보며 뿌듯해한다. 자기의 첫번째 업적이란다.
결국 '정치인의 딸'이 먼저가 아니라, '딸을 위한 정치'가 시초였다. 그래서 난 지금도 아빠에게 왜 정치를 하냐며 불평할 수가 없다. 애초에 난 객체가 아니라 주체였으니까.
딸은 아빠를 닮는다더니, 변두리 지방정계를 사랑하는 아버지 때문에 나도 변두리 인생을 산다. 정도(正道)가 아닌 사도(私道)를 걷는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혼자 방통대로 가버렸고, 뜬금없이 작은 3D 프린팅 회사에 들어가고, 한쪽 발은 지역 정치에 걸쳐놓는다. 핵심에는 없지만 더 멀찍이서 사회를 바라볼 수 있는 지금을 사랑한다.
어느새부터 정치인 입에서 '가족'은 꺼내지 말아야할 단어가 돼버렸다. 그 뒤엔 꼭 비리, 청문회, 구설수가 뒤따르니 말이다. 그러나 정치는 원맨쇼가 아니다. 한 사람의 정치관은 개인에서 가정으로 퍼져 사회로 나온다. 난 이번 연재에서 다각도의 모습으로 '정치인 아버지'를 담아보고자 한다. 딸로서, 선거 캠프원으로서, 20대 청년으로서, 사회 초년생으로서 그를 비춰본다. 그 속에 우리가 풀어나가야 할 과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