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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성훈 May 31. 2019

여행에 미친 여자와 결혼했다

14) 반성문

 

 어릴 때부터 멀게는 텔레비전 화면 안에서, 가깝게는 지인들에게서, 가장 가깝게는 부모님 두 분의 불필요한 말다툼으로 인한 감정 손실을 보면서 혼자 생각하곤 했다.


 ‘조금만 양보하면 될 텐데 왜 굳이 오기를 부리지.’

 ‘그냥 그 정도는 져주면 되지.’

 ‘톡톡 쏘듯이 말하니까 당연히 싸움이 나지.’


 그들의 다툼이나 푸념을 보고 들으며, 겉으로는 맞장구치거나 이해한다는 눈빛으로 방관했지만 속으로는 성인군자처럼 굴며 늘 혼자 결심을 해왔다.


 ‘나는 나중에 안 그래야지.’

 ‘사랑하는 사람인데 져줄 수도 있지.’

 ‘자존심이 무슨 소용이야, 마음 편한 게 낫지.’


 그렇게 이성적이고 현명하다고 믿고 살아온 나는, 결혼 5개월 만에 내가 얼마나 미개한 존재인지 깨닫고 있다.


 ‘이렇게나 이성적이고 현명한 내가 기분이 상할 정도면, 너는 정말 잘못한 거야.’


 제일 먼저 드는 생각이 이러니 대화가 될 리 없고, 먼저 굽힐 리는 더더욱 만무했다. 인간은 자기 자신에게 지나치게 관대하다는 것을 백번 되뇌어봤자, 막상 내 상황이 되니 눈과 귀가 막혀버렸다.


 가장 싫어하던 걸 내가 하고 있었다. 정말 현명하지 못하게 그녀를 대하고 있었다.



 어떤 큰 사건이나 잘못이 아닌, 표정이나 말투 등 사소한 것에서 모든 것이 비롯된다. 순간의 서운함이 사람을 감정적으로 만든다.

 감정적으로 반응하면 상대도 감정적이 된다. 감정적이 되면 하지 않아도 될 말, 평소에 담아두지도 않았던 말을 마치 참고 별러 왔던 것처럼 쏟아낸다. 쏟아져버린 말들은 서로에게 상처를 입히고 앙금을 남긴다.



 우리는 연애 기간 동안도 그랬고, 결혼 후에도 정말 큰 다툼 없이 잘 지내는 편이다. 객관적인 비교 대상은 없지만 서로 그렇게 믿고 있다. 그 점이 서로의 생활에 얼마나 큰 안정감과 시너지를 주는지 알고 있고 진심으로 감사해하고 있다.

 둘 다 ‘가화만사성’을 신조로 여기기에, 서로 노력하고 있다는 것도 너무 잘 알고 있다.


 분명 잘 알고 있지만, 마음과는 다르게 짜증이 나거나 화가 날 때가 있다. 현명하지 못할 때가 있고 굳이 일을 키울 때도 있다. 상대가 먼저 사과해주길 바라며 의미 없이 시시비비만 따지고 들 때가 있다.

 

 오늘이 그랬다.

 

 지금 우리는 칸쿤이라는 아름다운 곳에 와 있다. 아름다운 하늘과 바다를 보며 아름다운 사진도 찍고 아름다운 하루를 보냈다.

 그런데 정말 사소한 일로, 집에 돌아가는 길에 감정소비를 했다. 가장 싫어하는 게 쓸데없는 감정 소비인데, 또 그 상황을 만들어버렸다. 반성의 의미로 이 글을 쓰고 있다.


 집으로 오는 내내 우리는 말이 없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둘 다 다툴 의향이 없었고, 자연스레 녹아내린 분위기다.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고 했다. 하지만 얼어버린 물은 벨 수 있다. 그 물을 얼어붙게 만드는 가장 쉬운 방법은 ‘감정적인 반응’이다. 어쩌면 나의 감정적인 반응이 사과하려던 그녀의 입을 닫아버렸을 것이다. 현명하지 못했던 내가 부끄럽고 그녀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우리는 지금 세계를 여행 중이다. 새로운 것을 느끼고 즐기기만 하기에도 부족한 나날들이다. 오늘은 약 100일에 걸친 중, 남미 여행의 마지막 날이다.

 이제 스페인으로 떠나는데, 남아있는 약 100일의 여행을 2부라고 여기며 다시 한번 다짐을 하려고 한다.


 이 다짐의 힘으로 웃을 일만 가득한 앞으로의 여행이 되기를 바라며, 그녀에게 보내는 메시지로 이 글을 마치려 한다.


 “이제 시작될 여행 2부는 지나온 여행보다 더 행복하게 만들어가자 우리.

 미안하다 사랑한다 :-)”





p.s - 급한 마음 버리고 조금만 더 잔잔하자! 부탁이야 lol.


칸쿤 해변에서






*세계여행 사진들은 여기에서​​​ 확인하실 수 있어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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