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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성훈 Jun 10. 2019

여행에 미친 여자와 결혼했다

15) 벤츠빛 미래


 내가 다니던 회사는 업무 특성상 여성들이 일하기 좋은 여초 회사였다. 그리고 그 안에는 흔히 우리가 ‘커리어우먼’이라고 칭하는 사람들이 여럿 있었다. 경제력과 마인드를 갖추고 있으며 충분히 인정이나 부러움을 받을 만한 그런 분들 말이다.


 4년 전쯤 사내 비밀연애를 하고 있을 때의 일이었다.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 해를 맞이할 무렵이 되어 회사에서 개인의 목표를 설정하고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다. 커리어우먼이 즐비한 회사의 분위기 속에서 그녀도 한때는 그러한 인생을 꿈꾼 건지, 아니면 그냥 주변의 분위기를 맞춰 준건지 모르겠지만


 “저는 마흔이 되기 전에 미래의 남편에게 벤츠를 사주겠습니다.”


 라며 목표 발표를 한 적이 있다.


 나에게 그건 목표 발표가 아닌 결혼 공약이었다. 그때부터 나는 그녀에게 힘이 되어주기 위해 ‘박•• 급여 올리기’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같은 직업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꽤 큰 장점으로 작용했다. 업무나 처지를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으니 정신적으로 스트레스를 주지 않도록 최대한 노력했고, 위로와 격려도 아끼지 않았다. 조언을 필요로 하면 함께 고민해주고 나의 노하우도 아낌없이 공유했다.

 그녀가 인쇄 작업이나 홍보 작업과 같은 물리적인 작업을 해야 할 때면, 나는 비서 혹은 기사 노릇을 하며 기꺼이 손과 발이 되어 주었다.


 그로부터 약 4년이 지났고, 우리는 정말로 결혼을 한 사이가 되었다. 혹시나 4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그녀가 그 공약을 잊을까 봐, 길을 지나가다 벤츠가 보일 때마다 “어! 벤츠다!” 하며 그 사실을 일깨워주었다.



 하지만 나의 이러한 피나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의 상황만 보면 이건 사기결혼과 다름없다. 이번 여행을 계기로 어떤 비전이 생기고 어떤 미래가 펼쳐질지 아직은 알 수 없지만, 현재로선 약 4개월째 소비생활만 하고 있는 실정이다. 저축은커녕 잔고가 비어 가고 있는 것이다.


 이번 장기여행이 그녀의 여행에 대한 욕구를 조금이나마 해소해주길 기대했지만, 오히려 앞으로 더 열심히 여행하며 살겠다는 원대한 꿈과 희망을 심어주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벤츠는커녕 돈이라도 모을 수 있을까? 또다시 반감이 생겨 그녀에게 물었다.


 “내 벤츠는 어떠니, 바퀴 조립은 들어간 거니???”


 벤츠 말고 벤치는 안 되겠냐며, 그 벤치에 앉아 오손도손 이야기 나누며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그녀를 보니 웃음이 났다.


 겉으로는 있는 힘껏 미소를 지으며, 속으로는 그녀를 데리고 가정법원으로 향하는 상상을 했다. 사기결혼으로 고소를 하려고 절차를 밟고 있는데, 헉!!! 큰일 났다.


 생각해보니 무소유의 삶을 사는 그녀에겐 나에게 줄 위자료 따윈 없을 것이다.



 아... 평생 이렇게 살아야 할 팔자인가 보다.


벤치가 참 편하다.







*세계여행 사진들은 여기에서​​​ 확인하실 수 있어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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