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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성훈 Jun 24. 2019

여행에 미친 여자와 결혼했다

17) 배틀 드립


*다소 허무할 수 있습니다. 욕하기 없기!



 장기여행을 하다 보면 식비가 만만치 않을뿐더러, 계속 밖에서 사 먹는 것도 질린다. 그래서 둘 다 요리를 잘 못하지만, 간간이 냄비로 밥을 하고 고기도 굽고 야채도 볶아서 해 먹곤 했다.
 제법 큰 도시에는 한인마트가 있고 월마트 같은 대형마트에는 오뚜기 라면도 팔기 때문에 라면을 사서 이따금 먹기도 했다.

 그러던 중에, 친구가 휴가 날짜를 맞춰 스페인으로 왔고 육개장, 미역국, 볶음김치, 김 등 여러 한식을 챙겨 와 나와 그녀를 구원해주었다.
 스페인 여행 마지막 날, 친구는 튜브 고추장과 참치 통조림을 하사하시고 유유히 고국으로 돌아갔다.

 친구에게 받은 것들은 아껴뒀다가 물가가 비싼 독일에서 요리를 해 먹기로 한 나와 그녀는 의논을 하기 시작했다.

“독일 가서 뭐 해 먹을지 미리 생각해보자”

“우리한테 고추장이랑 참치 있나?”


“응.”

“그럼 고추참치?ㅋ”








 그녀에게 무한도전의 박명수 같다고 한 적이 있다. 평소에는 평온한 상태를 유지하지만, 컨디션 좋을 때는 텐션이 장난이 아니기 때문이다.

 옆에서 쉬지 않고 떠들고, 질문하고, 노래하고, 건드리고, 칭얼(?) 댄다. 세월의 풍파를 적잖게 겪은 나의 연륜으로 적당히 잔잔하게 대꾸해주고 있는데, 문득 그녀가 물었다.

“반응이 왜 그래? 솔직히 말해봐. 가끔은 내가 귀찮지?”

“아니~ 안 귀찮은 게 가끔이야^^!”








 텐션이 좋을 때의 그녀는 노래를 자주 부른다. 하나의 완곡을 부르는 건 아니고, 그냥 머릿속에 떠오르는 후렴구 위주로 무작위로 흥얼거린다. 음악은 맨날 팝송만 들으면서 흥얼거리는 건 다 한국 노래다. 그런데 가사를 맞게 부르는 노래가 단 하나도 없다.

 v.o.s : “눈을 감고 내게 말해요~”

 애프터스쿨 : “이렇게 둘이~ 너와 단 둘이~ ...차두리~”


 비비 : “네가 머리 긴 여자 싫어한다고 해서~ ...단발머리 했는데~”
(원곡: 네가 머리 빈 여자 싫어한다고 해서~ 그 좋은 드라마도 안 봐.)


 그래도 딴에는 생각은 하고 부르나 보다.








 <여행은 걸어보는 거야>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다. 여행을 하다 보니 그 말에 적극 공감하게 되었는데, 처음에는 단순히 교통비를 아끼려고 걸었다.

 하지만 점점 일부러 고생을 자처하게 되었다. 우버나 택시를 타고 다니는 여행에 비해 힘들고 불편한 건 맞지만, 걷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그 나라 사람들의 사는 모습을 더 천천히 오래 보고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그 도시에 대한 기억이 오래 남았다.
 
 게다가 이곳저곳 많이 다니고 비슷한 것들을 자주 보다 보니, 랜드마크만 찍고 오는 식의 여행은 별 감흥이 없어진 것도 사실이었다. 지금까지 본 성당만 30개는 족히 넘을 테니 말이다.

 우리는 대중교통 중에서도 교통체증이 없고 길을 헤맬 염려도 적은 지하철을 타는 걸 선호한다. 그리고 중남미와 유럽 등에서 지하철은 METRO라는 용어로 통용되고 있었다.

“왜 지하철이 METRO인지 알아?”

“(또 무슨 개소리를 하려고) ???”

”밑으로 다니니까ㅋ”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에 가면 올드타운이라 불리는 곳이 있고, 대부분의 관광객들이 그곳으로 운집한다. 우리 또한 그곳에 갔는데 정말 느낌이 너무 좋아서 ‘이게 유럽의 감성인가!’ 하며 감탄하고 둘러보며 다녔다.

 올드타운 중심에 가면 전체 전망을 볼 수 있는 탑이 있어서 우리는 해 질 녘에 맞춰 올라갔다. 전망대에서 본 전경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연신 셔터를 눌러대고 있던 차에, 어떤 한국인 아저씨가 있는 걸 발견했다.

 그리고 그 아저씨가 감탄하는 걸 들었다.

“와~ 파리의 센 강 이후로 최고다!”

 그러자 그녀가 작게 속삭였다.

“나는 약한 강ㅋ”








 폴란드는 역사적으로 큰 아픔을 지닌 곳이다.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면서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었고, 2백만 명 이상의 유대인들이 집단 학살을 당했던 오슈비엥침(지금의 아우슈비츠) 수용소가 폴란드에 있다.

 그리고 크라쿠프라는 폴란드의 옛 수도에는 유대인 지구가 있는데, 영화 <쉰들러 리스트>의 배경이 되었던 곳으로 유명해졌고 실제 쉰들러의 공장이자 박물관이 그곳에 있다.

 유대인 지구를 천천히 둘러본 후, 크라쿠프의 중심가로 걸어가고 있는데 익숙한 이름의 포스터가 붙어있었다. 그곳에서 ALAN WALKER의 공연이 있는 모양이었다.


 문득 궁금했다.

”그럼 저 사람은 폴란드에 걸어서 오나?”





 



 크라쿠프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곳은 바벨성에서 내려다보는 강변 공원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곳에서 산책을 하거나 잔디에 누워 휴식을 취하고 있었고, 강에는 유람선이 떠 다녔다.

 밤에 유람선을 타고 바벨 성과 강변의 야경을 보면 정말 아름다울 것 같았지만, 헝가리에서 일어난 비극이 생각나 뭔가 죄스러운 마음이 들어 타지 않기로 했다.

 그저 강가를 거닐고 있는데, 그녀가 저기 정박해 있는 배와 강을 함께 찍으면 정말 예쁠 것 같다며 배를 찍고 오겠다고 했다. 그래서 이왕 가는 김에 배를 치고 오라고 했다.

“설마 배치기...?”

 배치기 형님들 잘 지내시죠?








 이번 여행을 하면서 웬만한 중, 남미 국가는 다 가 보았고 아프리카도 발은 담가봤으며, 지금은 유럽 땅을 밟고 있다.

 지금까지 가본 곳들, 앞으로 가보고 싶은 곳들 등을 이야기하다가 이라크, 시리아 등이 있는 서남아시아 이야기가 나왔다


”다른 곳은 가도 서남아시아는 너무 무서워서 못 갈 것 같아.”


”괜찮아. 넌 전남 출신이잖아.”


”뭔 개소리야?”


나는 여행에 미친 목포 여자와 결혼했다.


목포는 항구다. 고향을 그리며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더 많은 세계여행 사진은 여기​에서 볼 수 있어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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