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성훈 Jul 04. 2019

여행에 미친 여자와 결혼했다

18) 답정녀


 그녀는 언제나 나에게 선택지를 제시하고 의견을 묻는다. 꽤나 배려심 있는 자세다. 나는 언제나 그녀가 원하는 대로 하겠다고 한다. 나 또한 배려심에서 나온 답변이지만, 그녀가 원하는 답은 아니다.


 나는 그렇게 리더십이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남자가 되었다. 하지만 이 글을 통해 항변하고 싶다.


 나에겐 선택권이 없다.










 나는 스타벅스를 정말 좋아한다. 지금도 스타벅스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사실 특정 브랜드를 좋아한다기보다는 널찍하고 와이파이가 잘 되는 곳이 좋다. 혼자 앉아 인터넷 하는 사람들이 많아 눈치가 안 보이며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할 수 있는 그런 카페를 좋아한다. 한국에 비해 외국엔 위 조건을 충족하는 카페를 찾기가 쉽지 않다. 그나마 있다면 유럽에 와서야 보이는 코스타 커피 정도?


 그러나 그녀는 사진 찍기 좋은 예쁘고 특색 있는 카페를 좋아한다. 나는 익숙함 때문에 스타벅스를 선호하지만, 그녀는 그 익숙함 때문에 스타벅스를 기피한다.


 그녀와 카페를 가기로 한다. 우리는 자연스레 스타벅스를 검색하여 그 거리나 쇼핑몰로 향한다. 난 기대감에 가득 차 발걸음을 재촉한다. 그녀는 조용히 가는 길에, 혹은 쇼핑몰 내에 있는 다른 카페를 물색한다.

 스벅에 도착할 즈음, 그녀도 물색을 마친다. 그리고 나에게 선택지를 제시한다.


 “모던한 느낌의 A 카페가 나아, 아기자기한 느낌의  B카페가 나아?”


 “(나는 스벅이 가고 싶은데!!!) 네가 더 끌리는 곳으로 갈게~ 난 둘 다 상관없어 ㅎㅎ”


 “오빠는 왜 의견이 없어?”










 우리는 여행의 추억 및 기록을 간직하고자 마그넷 기념품을 사고 있다. 도시별로 사기에는 너무 욕심 같아서 나라마다 하나씩 구매 중이다.


 기념품을 사 보면 공감하겠지만, 고르는 게 보통 일은 아니다. 가게도 많고 가짓수도 많다. 게다가 취향이 갈린다. 디자인과 색감이 예뻤으면 좋겠고, 상징적인 조형물이나 건축물이 잘 표현되었으면 좋겠고, 나라명이 새겨져 있으면 좋겠고, 국기가 들어가 있으면 좋겠고, 가격이 착하면 가장 좋겠다.


 그녀가 나에게 어떤 게 마음에 드는지 묻는다. 나는 상징물이 잘 표현되어 있고, 뭔가 세련됐다는 느낌을 주는 걸 가리킨다.


 “오~ 그것도 좋은데, 조금 투박하지 않아? (심할 때는 촌스럽다고 쳐다도 안 본다.) 그거 말고 이거랑 이거 둘 중엔 어떤 게 나아 보여?”


 “(이미 말했는데...) 네가 마음에 드는 걸로 골라~ 둘 다 예쁘네 ㅎㅎ”


 “오빠는 왜 의견이 없어?”










 유럽으로 온 뒤로 생활 패턴이 완전히 바뀌어버렸다. 서유럽은 폭염으로 인해 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던데, 그 정도는 아니지만 동유럽도 덥긴 덥다. 게다가 해가 지지 않는다. 대부분 밤 9시는 되어야 해가 지고, 해가 져도 한 시간은 더 있어야 어두워진다. 야경을 즐기기 위해선 무조건 밤 10시는 넘어야 한다.


 그러다 보니,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며 낮엔 외출을 삼가고 저녁 시간쯤에야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경우가 잦다. 그렇게 늦게 나와서 겨우 구경을 하다가 밤 11시 정도 되어 집으로 돌아가려고 하면 다소 허무할 때가 있다. 그녀가 망설이는 모습을 보이면 나는 묻는다.


 “시간이 늦었으니 집에 갈까 그냥?”


 “이대로 집에 가기엔 하루가 너무 아깝지 않아?ㅠ”


 “그럼 바에 가서 맥주 한 잔 할까?”


 “안 돼. 돈 아껴야지ㅠ”


 “그럼 맥주를 사서 집에서 한 잔 할까?”


 “안 돼. 살찌잖아ㅠ”


 “(어쩌라는 거지?) 그럼 어떻게 할까? 너 하고 싶은 거 할게 ㅎㅎ”


 “오빠는 왜 의견이 없어?”










 멕시코시티였던가. 뭘 먹을지 고민하면서 도미노 피자 가자고 다섯 번쯤은 말한 것 같다. 그리고 우리는 서브웨이 가서 빵을 먹었다.



  한국 가면 꼭 스벅 아메리카노를 테이크 아웃하여 마시면서 도미노 피자를 들러 피자를 주문한 뒤, 집에 오는 길에 맥주를 사들고 와 피자와 맥주를 먹고 마시며 내가 사고 싶은 것을 마음껏 온라인 쇼핑하리라.



이게 뭐라고...







*세계여행 사진들은 여기​에서 확인하실 수 있어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이전 17화 여행에 미친 여자와 결혼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