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성훈 Apr 20. 2019

여행에 미친 여자와 결혼했다

4) 세계여행은 부자만 가는 거 아닌가요


 “그렇게 길게 여행 가는 사람이 어디 있어.”

 “아니야, 생각보다 엄청 많아.”


 다툼의 가장 큰 원인이었다. 세계여행을 꿈꾸며 계획 중인 그녀는 오랫동안 부지런히 인터넷 카페, 오픈 채팅방 등을 통해 여러 정보들을 얻어왔다.

 그 온라인 세상 안에는 지구 반대편에서 찍은 사진들을 당연한 듯 가지고 있는, 그녀의 갈망을 자극하고 용기를 북돋아 줄 많은 동지들이 있었다. 덕분에 그녀에게 세계여행은 더 이상 꿈이나 로망이 아닌 현실이 되어 있었다. 마음이 이미 그곳에 가 있으니 다른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을 터였다.


 반면 내 주변엔 신혼여행 등을 빌미로 남미를 다녀온 사람이 있긴 하나, 장기로 여행을 떠났거나 다녀왔던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있다고 해도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당연히 나에게 세계여행이란 인터넷 세상에 존재하는 것일 뿐, 현실감 제로인 단어였다.


 사실, 일하지 않고 여행 다니는 삶은 누구에게나 매력적으로 들릴 것이다. 그렇게 살 수만 있다면 마다할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더욱 그림의 떡이고 뜬구름 잡는 이야기일 뿐이었다.


 그렇게 다 던져 버리고 떠나면 당장 어떻게 살아? 갔다 와서는 어떡하고? 매달 나가는 고정비용,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저축이나 투자는? 그로 인한 타인과의 격차, 경력 단절, 재취업, 비어있게 될 집세 등은?

 

 현실적인 문제들이 계속해서 내 발목을 잡았다.


 그런 현실에 갇혀 허우적대던 내가, 결국은 세계여행을 떠났고 약 2개월이 지나 지금은 콜롬비아에 있다.


 그래서 이번 글은 나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을지 모르는, 여유 넘치는 부자들만 가는 건 줄 알았던 세계여행을 서민이 어떻게 떠나게 되었는지 현실적인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써보려 한다. 필요 없는 정보까지 말이다.






 첫째, 사람. 너무 복합적인 제약이나 사정이 있을 수 있어 가볍게 말하기는 어렵지만, 그녀의 의지가 모든 것을 말해줄 수 있을 것 같다. 이미 예매해 둔 비행기 표를 취소하지 않기 위해 부모님을 비롯 모두를 설득하고 1개월 반 만에 우리는 결혼했다.



 둘째, 돈. 사실 모든 문제의 원인이자 해결책이다.

 브라질에서 시작하여 아르헨티나, 칠레, 볼리비아, 페루, 에콰도르, 콜롬비아까지 돌면 약 2개월의 남미 여행이 완성된다. 그리고 중미인 쿠바, 멕시코를 거쳐 모로코로 가서 아프리카까지도 살짝 발을 담근다.

 그 이후가 문제인데, 현실적으로(금전적으로) 서유럽은 무리여서 동유럽을 가고 동남아에서의 ‘한달살이’까지 고려중이다.


 이런 일정에 목표는 최소 천만 원으로 정했는데, 여행의 질을 위해 오백만 원 정도의 예비비는 책정해뒀다. 도시 간, 특히 나라 간 이동의 교통비가 가장 문제인데 그 부분을 제외하면 하루에 평균 3만 원을 써야 한다는 계산이 나왔다. 호스텔이나 에어비앤비를 전전하고 30분 미만의 거리는 걸어 다니고 현지식 위주로 식사하면 불가능한 수치는 아니지만 빠듯하긴 하다.



 셋째, 직장. 사실 돈이야 빌릴 수도 있으니 직장이 가장 큰 걸림돌이었는데, 결과적으로 말하면 여행 가기엔 꽤나 적절하고 괜찮은 직업을 가지고 있는 게 되었다. 주로 학생들에게 영어와 역사 등을 가르치는 개인 교습을 했는데, 회사에 소속되지 않더라도 개인적으로 할 수 있는 기술이 되었다.

 게다가 다행히 상사가 잘 봐주어서 복직도 가능하도록 이야기가 되었다. 원래 준비했던 게 잘 되어 공무원이나 공기업에 취직했다면 장기여행은 엄두도 내지 못했을 테니 새옹지마(합리화)라고 볼 수도 있겠다.


 

 넷째, 집과 자동차. 위에 언급했듯 나의 직장은 비교적 덜 폐쇄적이고 자유로운 점은 좋으나, 사대보험이 되지 않아 소득증빙이 되지 않는 것이 약점으로 드러났다.

 그리하여 다소 높은 금리로 대출을 받게 되어(대출금이 많기도 하고...) 전셋집임에도 불구하고 매달 30만 원 정도의 비용이 들어간다. 관리비 약 10만 원을 포함해서 6개월이면 240만 원 정도의 눈먼 돈이 비어있는 집에 들어갈터였다.


 하지만 다행히 수소문 끝에 6개월 정도 우리 집에서 지낼 사람을 구했고(후배의 아는 언니), 30만 원의 월세를 받기로 하여(관리비도 그분이 부담) 빈집에 들어가는 비용을 없앨 수 있었다. 시세대로라면 월세가 60만 원 정도인 집이니 그분도 이득이고, 나는 집에 들어가는 돈이 0원이 되었으니 win-win으로 갈무리했다.

 십만 원만 더 달라할 걸...


 그리고 자동차 할부는 다 갚은 상태였고 원래 팔고 갈 생각이었는데, 여행 다녀와서 일을 하려면 다시 차를 구매해야 했다.

 감가상각이 커서 큰 손해를 각오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6개월이나 차를 방치해 둘 수도 없는 상황이라 난감해하고 있었다.


 그러다 다행히 부모님의 배려로 아버지가 기존에 타던 차를 팔고 당분간 내 차를 아버지가 타기로 했다.

 그리고 6개월 후 여행을 다녀오면, 나는 그대로 내 차를 타고 아버지가 새 차를 사기로 했다. 원래 새 차를 사려고 계획 중이셨는데 나 때문에 6개월을 유예하신 거다.

 6개월이라는 행복한 고민을 할 시간을 드렸다.



 다섯째, 그 외 자잘한 것들. 일단 수입이 없으니 저축은 무리였다. 마지노선으로 청약저축, 재형저축 각각 10만 원씩만 남겨두었다.

 국민연금과 건강보험은 퇴사와 국외 출타를 증빙하면 해지 혹은 휴면이 가능하다.

 휴대폰은 아직 약정이 남아있어서(징글징글하다.) 단말기 값은 매달 내야 했고, 통신사는 SKT를 쓰고 있었는데 ‘미주 패스’라는 좋은 로밍 제도가 있어서 신청하고 요금제는 최저 요금제로 바꿨다. 그랬더니 매달 8만 원 정도의 요금이 됐다.

 번호를 유지할 필요가 없는 사람은 로밍할 필요 없이 현지에서 유심을 구매해가며 핸드폰을 사용할 수 있다.






 현재 약 두 달 정도 여행 중이고, 지금까지 여행 중에 썼던 비용만 계산해보니 400만 원 정도 되었다. 나름대로 아끼며 여행했지만 ‘투어 비용’이라는 변수가 있었다. 예를 들면, 페루에 있는 마추픽추는 꼭 가야 했는데 기차와 입장료만 20만 원 가까이 되었다.


 그리고 둘이서 여행하는 것은 금전적으로 확실히 이득이 되었다. 예를 들자면, 택시비나 숙박비를 1/2로 나눌 수 있으니 말이다. 물론 정신적으로도 의지가 된다.

 

 여기까지가 누구나 여행을 떠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한 나의 살아있는 정보였고, 이제 여행을 찬양하며 마무리하려고 한다.


 안 되는 이유만 백가지 정도 늘어놓던 내가 결국은 여행을 떠났고 지금은 여행을 즐기고 있다. 힘든 점도 많았고 앞으로도 있을 테지만, 나는 이번 여행으로 이미 중요한 것을 얻은 것 같다.



 하기 싫을 뿐이지 진정 하고자 하면 어떻게든  된다!!








*세계여행 사진들은 여기에서​​ 확인하실 수 있어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이전 03화 여행에 미친 여자와 결혼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