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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성훈 Apr 23. 2019

여행에 미친 여자와 결혼했다

5) 퇴사가 자랑할 일인가?

 

브라질 해변에서 축구하는 소원을 성취했다 :-)


 여행 초반 2월부터 3월 즈음 브라질, 아르헨티나, 칠레, 볼리비아의 일정에서 정말 많은 한국 분들을 만났다. 시기상 방학이라 짬을 내서 왔거나 휴학하고 온 학생들이 대부분이었고, 나처럼 모든 것을 내팽개치고(?) 온 직장인들도 적지 않았다.

 

 숙소나 택시 등을 셰어 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동행이 되거나 여행지에서 우연히 만나기도 하는데, 첫 대화는 보통


 “어디 어디 여행하세요?”

 “브라질 리우부터 시작해서 시계방향으로 돌고 있어요!”


대부분의 남미 장기 여행자들은 크게 브라질 > 아르헨티나 > 칠레 순의 시계 방향이나, 페루 > 볼리비아 > 칠레 순의 반시계 방향으로 루트를 정하고 여행을 한다.


 그러면 보통 다음 질문은 ”어떻게 여행하세요?”인데 누구와 얼마 동안을 묻는 것이다.

 ”아내와 함께 여행 중이고 6개월 정도 계획하고 있어요.”라고 녹음기를 틀어놓은 마냥 답을 하면


 “퇴사하고요? 와 멋있다!”


  십중팔구 이런 반응이 오는데, 여기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퇴사가 자랑할 거리인가?






 보통 우리는 고등학교 졸업까지 19년의 학창 시절을 보낸 후 곧바로 취업을 하거나, 대학 생활 후 취업을 하는데 이 과정이 쉽지만은 않다. 우여곡절 끝에 취업에 성공하더라도, 직장 내에서의 또 다른 도전이나 과정이 기다리고 있다.

 취업 후엔 결혼을 계획하고 내 집 마련을 꿈꾼다. 요즘엔 딩크족이 늘어나고 있다지만 어쨌든 결혼 후엔 아이를 가지게 된다. 그러므로 지금보다 더욱 열심히 일하고 돈을 벌어야 한다. 한 집안의 가장이 된 것이다. 책임의 무게가 늘어났다.


 뻔해 보이는 프로세스지만 꽤나 힘든 여정이다. 그러나 마땅히 해야 하는 인간사의 수순이다. 적어도 나의 사회화는 그러했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약 30여 년을 이렇게 생각하고 살아온 나인데, 그런 내가 그 필사적이었던 직장을 내 발로 걸어 나와 여행을 떠났다. 부모님의 걱정, 주변 사람들의 우려도 모두 뒤로 하고 여행을 떠났다.

 큰 결심이었던 만큼 확고한 신념으로 행했어야 하는 일이지만, 오히려 나는 크게 흔들리는 상태였다. 나 자신을 부정하는 것 같았고 해야 할 도리와 책임을 회피하는 것 같았다. 부러워하는 주변의 시선과 반응에도 밝게 화답하지 못했다. 그렇게 죄스러운 마음으로 여행을 떠났다.

 

 여행 중에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았는데, 누군가 퇴사에 대한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나는 멋쩍게 웃으며 괜스레 목소리에 힘이 빠졌다. 상대방도 이내 무언가 불편함을 느꼈는지 화제를 돌리곤 했다. 태연하려 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결코 퇴사는 자랑거리가 아니다.






 여행을 시작한 지 한 달이나 지났을까... 또다시 문제가 생겼다.


 “퇴사하고요? 와 멋있다!”


 이 말을 자꾸 듣다 보니 최면에 걸린 것일까. 그 횟수에 비례하여 굽었던 내 어깨가 점점 펴졌다. 나의 세계여행 소식을 듣거나 사진을 보고 부러워하는 지인들의 반응이 좋았다. 은근 내가 먼저 여행 중이라는 것을 뽐내기도 했다. 여행 약 한 달 만에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고 퇴사는 자랑거리가 되고 있었다.


 하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는 우유부단하다. 덕분에 한쪽으로 잘 치우치지 않으며, 상대의 입장이 되어 보는 좋은 버릇이 있다. 그래서 그들의 부러움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이 글을 읽는 누군가는 ‘퇴사하고 싶다.’ 를 입버릇처럼 내뱉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직장이 있다는 안정감과 급여에 대한 기대가 그에겐 삶의 원동력일 수 있다.

 이 글을 읽는 누군가는 아이를 낳고 자유를 잃었다며 우울해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가 주는 행복과 그에 따른 책임감이 그에겐 삶의 이유이고 전부일 수 있다.


 퇴사 후 세계여행이라는 타이틀은 충분히 달콤한 유혹이지만, 여행 자체가 삶과 행복을 가늠하는 잣대가 될 수는 없다

 행복이란 미래에 대한 기대에 의해 만들어지는 거라고 생각한다. 기대에 가득 차 여행을 하고 있는 지금의 나는 행복함이 틀림없지만, 아이러닉 하게도 브런치에 도전하여 이 글을 쓰고 있는 자체가 미래에 대한 불안감의 발현이기도 하다.


 여전히 나조차도 이 여행이 잘한 건지 아닌 건지 알지 못하며, 오히려 일상 속에 있는 그들이 부러울 때도 있다. 분명 일하지 않는 게 좋으면서도, 생산 없이 소비만 하고 있는 나 자신이 가끔 쓸모없이 여겨지고 때론 무기력해진다.

 내가 더 나은 삶을 살고 있는 것도 아니고 그들이 더 불행한 것도 아니다. 누가 누굴 부러워할 필요는 없다. 우리는 단지 우리의 위치에서 우리의 삶을 살고 있다.


 여기까지 생각이 이르면서, 한 가지는 명확해졌다.


 분명한 건 퇴사는 자랑거리가 아니다. 그러나 잘한 결정이 될 수는 있다. 그리고 그렇게 만드는 것이 내가 해야 할 일이다.


 그러므로 나는 더욱 열심히 글을 쓸 것이고, 이 여행이 내 미래의 한 축을 담당해주길 기대한다.






*세계여행 사진들은 여기에서​​ 확인하실 수 있어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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